푸른교회 아카이브

악인의 형통(잠 24:1-11)

악인의 형통
잠24:1-11
2011.08.11

뜻밖에도 성경은 악인들이 형통하다고 합니다.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1절).
<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19절).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3:11).
맞습니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믿는 자의 삶보다 차라리 악인들의 삶이 더 형통하고 순탄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12:5-8). 징계가 없고 형통한 것은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강포를, 입술은 재앙을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들의 입술은 재앙을 말 함이니라>(2절).
악인들의 마음은 항상 강포하고, 입술은 축복이 아니라 늘 재앙과 저주를 말합니다. 말은 곧 씨가 됩니다. 은혜로운 말, 축복의 말, 감사의 말을 하는 사람은 결국 그 삶이, 그 인생이 은혜롭고, 복되고, 풍성해지지만 날마다 재앙을 뱉고 저주를 일삼는 사람은 결국 재앙으로 망하고 저주로 패합니다. 
그런데 말이란 사실 입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마음이 강포하면 절대 복된 말, 건강하고 아름다운 말을 할 수 없고, 마음이 부드럽고 따뜻하면 그 입에서 결코 재앙과 저주가 나올 수 없습니다. 자신의 언어생활을 살펴보시고 다시 한번 마음을 점검해 보십시오.

행위는 사악하고 생각은 미련하고
<악행하기를 꽤하는 자를 일컬어 사악한 자라 하느니라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 거만한 자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느니라>(8-9절). 악인의 행위는 사악합니다. 오로지 악한 일을 궁리하고 모의하므로 매사가 다 선하지 않습니다. 생각 자체가 미련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건강하고 건전해야 삶이 경건하고 반듯합니다. 생각이 은혜로워야 행위가 바르고 덕스럽습니다. 주님이 행위 이전에 생각을 보시고 판단하시는 것도 다 행위가 곧 생각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 하였느니라>(마5:28). 세상 법은 행위로 판단하지만 주님은 항상 마음을 보시고 판단하십니다. 
행위의 동기인 생각을 잘 관리하셔서 결코 미련함이나 어리석음에 빠지지 마십시오. 
당신의 행위가 사악한 악인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더욱 믿음에 정진하십시오.

사망에서 건져주며 살육에서 구원하며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육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11절). 이제 여기서 믿는 자의 정체성이 보다 분명해집니다. 의인은 결코 자신의 입과 마음, 행위와 생각을 단속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더 능동적으로 악인을 건지고 사망에 처한 자를 구원해 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가 건져내고 구원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진면목은 자신의 구원 뿐 아니라 남의 구원, 자신을 위한 기도 뿐 아니라 남을 위한 기도, 자신의 문제 뿐 아니라 남의 문제에도 관심하며 그들을 돕는데 있습니다.
<물 위에 생명줄 던지어라 누가 저 형제를 구원하랴 우리의 가까운 형제이니 이 생명줄 그 누가 던지려나 생명줄 던져 생명줄 던져 물속에 빠져간다. 생명줄 던져 생명줄 던져 지금 곧 건지어라>(새찬송가 500). 의인의 참 모습은 죽어가는 생명을 구하는 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