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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의 죄 (왕상 14:11-20)

여로보암의 죄
왕상 14:11-20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그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하였음이니라 하니라>(16절).
여로보암의 아내는 병든 아이의 생사 여부를 묻기 위해 실로의 아히야 선지자를 찾았으나 돌아갈 때는 여로보암의 집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의 증거로서 자신의 아이가 죽게 될 것이라는 것과 또 그 사실을 여로보암에게 전해야 할 입장이 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이 아내를 이용해 아히야 선지자를 속이려 한 것이 이제는 거꾸로 아히야가 그녀를 통해 여로보암을 꾸짖게 된 셈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의 특징은 등장인물과 사건의 의미 변환에 있습니다. 즉 여로보암의 병든 아들 아비야의 운명은 단순한 가정사에서 하나님이 그 배후에서 주관하시고 역사하신 구속사로 그 의미가 바뀌고, 여로보암의 아내 역시 속이는 자의 심부름꾼에서 진실을 전달하는 자로 그 역할이 바뀝니다. 
또한 아히야는 늙고 눈 먼 사람이지만 젊고 영악한 자보다 더 먼 미래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선지자였음이 드러났습니다. 더욱이 여로보암은 자신을 숨기고 감추기에 급급했지만 결국은 자신이 모르던 운명까지도 낱낱이 폭로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환>과 <폭로>가 다 본래는 그럴 수 없는 것들이 그렇게 바뀐, 즉 불가능한 것들이 가능해진 것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 못 보는 노인이 젊은 권력가의 술책을 뛰어넘어 오히려 그가 모르던 사실까지도 일러주는 기막힌 반전이 바로 그 단적인 예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을 뜻하며, 바로 이런 점들이 무신론적 풍토 속에서 오로지 인간적인 계산에만 능한 현대인들에게도 큰 경고와 도전이 될 것입니다. 

욕망과 권력과 본능을 충족시키는 인생이 아니라 자기에게 맡겨진 거룩한 사명을 깨닫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참다운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그 가치의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하고 평가받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결코 그렇게 못하고 그의 죄로 인해 도리어 아들이 죽고, 이스라엘이 여호와께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적용>
-본문 13절은 읽고 아이의 죽음이 역설적으로 그 자신에게 행운이 된 이유를 적어 보십시오.
-당시 북이스라엘이 만들었다는 <아세라 상>(15절)에 관해 아는대로 적어보십시오(18:19).
-북이스라엘의 수도가 된 <디르사>(17절)는 어디에 위치한 성읍이었습니까?

<기도>
주님, 여로보암의 죄가 결국은 자신과 자식과 나라에 파국을 불렀습니다.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버리셨다고 했고, 여로보암의 집을 끊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로보암은 자신은 물론이고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하여 마침내는 그의 집도 이스라엘도 다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면치 못했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특히 우상 숭배의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늘 성령으로 깨우쳐주시옵소서. 나로 인해 내 집과 공동체가 하나님의 복을 누릴지언정 저주를 받거나 심판을 당하는 불행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켜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