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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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절없는 세월이 연말을 손짓하고, 여전히 기세등등한 팬데믹 상황은 오미크론 변이로 더욱 불안하기만 한데 어느덧 12월을 맞았습니다.
한 해를 보내는 세밑 풍경이 을씨년스럽다 못해 어둠으로 가득하지만 애써 여유를 가집시다.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자기 이해에 가장 투철하고 치열했던 사람은 역시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은 두 가지 관점에서 자신을 봅니다. 하나는 과거 속의 자기요 또 다른 하나는 미래 속의 자신의 모습입니다. 과거로 말하면 그는 참 내세울 게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그 화려한 모든 이력과 스펙을 다 똥오줌처럼 내버린다고 했습니다(빌 3:8). 노자는 <공을 이루었으면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功成以不居)고 했고, 그 말의 참뜻은 자기가 세운 공에 머물지 않을 때만 실은 거기에 오래 머물 수 있다는 역설의 지혜를 의미한 것인데 반해 바울은 과거 혹은 뒤엣것으로부터의 철저한 탈출을 말합니다.
따라서 그것은 노자처럼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달리기 위해섭니다. 오직 <앞엣것을 잡기 위해 뒤엣것을 버린다>(빌 3:13)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많이 가진 것을 자랑함으로 삶의 보람을 느꼈을 뿐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이 자기 삶의 든든한 보장이라고 믿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그 모든 것, 즉 뼈대 있는 가문, 바리새파라는 귀족, 석학 가말리엘의 문하생이라는 학벌 등이 실은 참된 자기와는 전혀 별개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그런 것들과의 결별을 선언하게 된 것입니다.
존재란 소유 이전의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가진 것이 자기 삶의 보장이라고 착각하며 거기에 안주하는 동안 한 번도 자기의 존재를 묻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상실해온 것입니다. 사람은 본래 부단히 자기의 존재를 물음으로써 실존합니다. 물론 자명하다고 생각해온 것들을 새삼 그렇게 물을 때 오히려 혼란에 빠지고 더 비참해질 수도 있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가? 어디로 가는가? 결국 죽음에로의 존재가 아닌가? 하고 묻는 데서 불안이 오고, 고뇌가 따르고, 또 절망에 사로잡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물을 때만 고민 없이 살아가는 한 마리의 짐승과는 구별되는 인간으로 존재하게 되며 자연의 법칙 아래서 살고, 전체 속에서 살면서도 그것에 예속되거나 매몰되지 않고 책임적인 <나>로, 주체적인 <실존>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습니까? 과거를 그렇게 내버린 대신 참된 자기를 찾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분명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며 <단지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12)고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바울이 이해한 성서적 실존이란 뒤엣것을 잊어버리고 오직 앞엣것을 잡기 위해 달려가는 <도상의 존재>일 뿐 아직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실존일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서적 실존은 아무런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늘 가난하고 불안합니다. 그러나 <가진 것으로 사느냐? 나로서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언제나 <나로 살겠다>고 결단함으로써 잃었던 자기를 되찾는 자들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앞엣것을 붙잡기 위해 달려간다는 것은 곧 익숙한 것들을 떠나겠다는 다짐이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부디 하나님에 대한 불편한 마음, 억울한 마음, 피해의식과 공치사 같은 누추한 심기들을 다 내려놓고 오직 가난한 마음, 앞엣것을 붙잡겠다는 절실한 마음 하나로 주님의 성탄을 준비합시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니라>(마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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