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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div><span>20211121m</span></div>

<!-- paragraph:p0002 -->
<div><span>민 11:1-9</span></div>

<!-- paragraph:p0003 -->
<div><span>왜 감사하지 않고 원망하게 될까?</span></div>

<!-- paragraph:p0004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05 -->
<div><span>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그 곳 이름을 다베라라 불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은 까닭이었더라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 밤에 이슬이 진영에 내릴 때에 만나도 함께 내렸더라</span></div>

<!-- paragraph:p0006 -->
<div><span><br></span></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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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08 -->
<div><span>오늘이 코로나 상황에서 맞은 두 번째 추수감사절입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들의 마음은 감사로 충만합니까? 여러분들 마음에 진심어린 감사가 있으십니까? 오히려 아쉬움이나 원망 같은 게 더 많은 것은 아닙니까? </span></div>

<!-- paragraph:p0009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10 -->
<div><span>과거 이스라엘은 그랬습니다. 툴툴거리고 불편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또 남을 선동했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광야에서 고생스럽게 살 바에는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면서 작당했습니다. 오죽하면 바울이 고린도전서 10장 10절에서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원망하다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 그랬겠습니까?</span></div>

<!-- paragraph:p0011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12 -->
<div><span>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간의 광야 여정은 그야말로 기적 그 자체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좀처럼 감사할 줄을 몰랐습니다. 하여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가장 많이 범한 죄가 바로 원망이었습니다. 가장 많은 징계를 받은 게 바로 원망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절과 2절도 보십시오. 백성들이 악한 말로 하나님을 원망함으로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 진영에 불을 붙이셨다고 합니다. 화들짝 놀란 백성들이 우리가 다 불에 타죽게 됐다며 부르짖자 모세가 급히 하나님께 사죄를 빌어 그 진노의 불, 하나님의 심판의 불을 겨우 진화했습니다. </span></div>

<!-- paragraph:p0013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14 -->
<div><span>그런데 이 사건 직후인 본문 4절 이하를 보면 그들이 또다시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고기가 먹고 싶다는 겁니다. 생선이 먹고 싶다는 거예요. 애굽에서 먹던 오이, 참외, 파, 마늘, 부추 같은 게 그립다며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전 타올랐던 여호와의 진노의 잔불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그게 아직 다 꺼지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이렇게 원망과 불평을 터뜨린 겁니다.</span></div>

<!-- paragraph:p0015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16 -->
<div><span>모세가 너무 기가 막혀서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이 민수기 11장 11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 이렇게 하소연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책임이 심히 중하니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 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서 내가 고난당함을 보지 않게 하고” 더는 이런 꼴을 보지 않게 제발 나를 죽여 달라고 합니다.</span></div>

<!-- paragraph:p0017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18 -->
<div><span>자 그렇다면 현실에 자족하거나 받은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람들이 도리어 이렇게 자주 불평하고 원망하고 투덜대는 이유는 뭘까요? 이건 대체 어디서 오는 현상일까요? 그 원망의 실체가 뭘까요?</span></div>

<!-- paragraph:p0019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20 -->
<div><span>오늘 본문 4절은 이 점에 대해 아주 명확한 답을 제시합니다. 본문 4절을 보십시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며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면서 불평과 원망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불평과 원망은 다 인간의 탐욕에서 온다는 것,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죠. 누구든 욕심을 내려놓지 않는 한 절대 현실에 자족하거나 감사할 수 없습니다. 탐욕을 발동하면 누구나 모든 게 성에 안 차고 매사에 불평이고 불만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욕심과 탐욕은 한도 끝도 없잖아요. 따라서 자신의 탐욕을 제어하지 않고, 자제하지 않는 한 그 사람에게는 결코 감사란 없고 오직 불평과 불만과 원망만 있을 뿐이라는 겁니다. 자족할 줄 알아야 감사가 성립됩니다. 자족하고 겸허하면 정말 모든 게 다 감사죠.</span></div>

<!-- paragraph:p0021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22 -->
<div><span>그런데 4절 말씀이 밝히는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 불평과 원망의 진원지가 구체적으로 어디냐 하는 것인데, 보십시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면”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다른 인종들은 누굽니까? 우리는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만 출애굽한 줄로 알죠. 그런데 그렇지 않고 실은 다른 인종들도 많이 섞여 있었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대열에 당시 애굽에는 각 나라에서 잡혀온 전쟁 포로들이 함께 섞여서 노예살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애굽 내 이스라엘 노예들 사회에도 다른 인종들이 섞여서 함께 살고 있었는데, 출애굽할 때 그들도 같이 애굽을 탈출했다는 겁니다. </span></div>

<!-- paragraph:p0023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24 -->
<div><span>출애굽기 12장 37절 이하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수꼿에 이르니 장이 장정이 60만 가량이요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더라” 유대인 장정이 60만이었고, 그 외에도 수많은 잡족들, 다른 인종들이 애굽 라암셋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탈출했다는 거예요.</span></div>

<!-- paragraph:p0025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26 -->
<div><span>그런데 결국은 그들이 문제였습니다. 그들이 화근이었습니다. 바로 그 이방인들에게서 탐욕이 시작이 됐고 원망이 싹터서 그게 다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로 전염이 되어 마침내는 온 백성이 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대적하게 됐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 꼭 기억하십시오 원망이란 근본적으로 이방인들, 세상 사람들, 잡족들, 불신자들의 정서고 행태라는 것이고, 원망과 불평과 불만은 언제나 택하신 백성들 속에 섞여 사는 인종들, 저 세상 사람들의 탐욕에서 비롯된 습성이지 결코 우리 하나님 백성들의 본래의 모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span></div>

<!-- paragraph:p0027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28 -->
<div><span>그럼에도 믿는 자들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그들의 나쁜 영향을 받아서 그렇습니다. 그들의 부정적인 문화와 정서가 우리에게 전이되고 또 학습이 돼서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에게 감염이 돼서 그렇습니다. </span></div>

<!-- paragraph:p0029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30 -->
<div><span>자 그렇다면 우리 믿는 자들, 택하신 백성들은 왜 세상 사람들, 잡족들, 섞여 사는 인종들에게 그렇게 쉽게 미혹이 되고 동화되어 그들과 똑같이 남을 원망하고 하나님께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는 죄를 범하게 될까요?</span></div>

<!-- paragraph:p0031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32 -->
<div><span>우선 출애굽의 은혜를 망각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평생 절대 잊어서는 안 되고 날마다 순간마다 꼭 기억하며 고백해야 할 감사 품목 제1호가 있다고 했죠. 그게 뭐라구요? 출애굽 아닙니까. 출애굽의 은혜, 하나님이 우리를 저 애굽, 저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사 이렇게 가나안을 향해, 천국을 향해 가는 하나님 백성의 대열 반열에 세워주신 것, 이 사실, 이 은혜에 대해 늘 감사하며 살아야 옳고 마땅하다는 겁니다. </span></div>

<!-- paragraph:p0033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34 -->
<div><span>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려 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보낸 모세를 통해 마침내 애굽을 탈출했잖아요.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오늘 우리도 똑같잖아요. 만약 우리가 지금 예수를 안 믿는다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당연히 저 애굽에서, 저 세상에서 여전히 종살이 하며 죄의 노예로 온갖 짓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겠죠.</span></div>

<!-- paragraph:p0035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36 -->
<div><span>그런데 주님이 우리를 애굽에서 불러내서 더 이상 세상의 노예나 마귀의 종이 아닌 자유인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평생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스라엘도 보면 그렇습니다. 출애굽의 은총을 망각할 때는 반드시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사 너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여호와를 기억하라고 하면서 회개를 촉구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습니다. 이 출애굽에 대한 원초적인 감격을 상실하는 그때부터는 신앙의 침체가 오고 매사에 짜증과 원망이 시작됩니다. </span></div>

<!-- paragraph:p0037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38 -->
<div><span>그러나 우리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왜요? 우리가 절대 출애굽을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 뭘까요? 우리를 애굽에서 구출하기 위해 주님이 유월절 어린 양으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칠함으로 죽음의 신을 따돌리고 바로의 항복을 받아내 출애굽할 수 있었듯이 우리도 다 주님이 유월절 희생양으로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셨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은혜 하나만 잊지 않고 살아도 우리는 정말 평생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span></div>

<!-- paragraph:p0039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40 -->
<div><span>그러나 반대로 그 출애굽 사건을 망각하면 그때부터는 필연적으로 불평과 원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부디 올해도 그 어떤 축복보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애굽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구속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가장 먼저 감사하십시오. 그게 바로 우리 믿는 자들의 원초적인 감사의 근거고 또 감사 생활의 기본이자 핵심이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span></div>

<!-- paragraph:p0041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42 -->
<div><span>다음으로 원망은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만나의 축복을 제대로 감사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결과라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축복과 은혜에 너무 쉽게 익숙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당연시하고 자명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누구나 감격을 상실하고 감사를 잃어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용할 양식인 만나를 보십시오. 그들이 처음 만나를 먹을 때 그 감격과 기쁨이 얼마나 컸습니까? 출애굽기 16장을 보면 만나를 꿀맛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그 감격을 상실했습니다. 오늘 본문인 8절을 보면, 이제는 만나를 기름 섞은 과자 맛이라고 합니다. 꿀맛이던 만나가 이제는 기름 맛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 민수기 21장 5절에 가면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며 만나에 대해 “우리가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그러면서 이제는 만나가 하찮은 음식, 싫어하는 음식이 됐습니다.</span></div>

<!-- paragraph:p0043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44 -->
<div><span>그래서 하나님이 진노하사 불뱀을 보내셨는데 거기에 희생된 백성의 수가 심히 많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불뱀은 사막에 사는 코브라 같은 독사를 말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도 그들은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의 보호와 인도를 받고 있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있고 반석에서 솟아나는 생수를 마시고 하나님이 그들의 발도 부르트지 않게 하시고 옷도 해어지지 않게 해주셨다고 했습니다.</span></div>

<!-- paragraph:p0045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46 -->
<div><span>그럼에도 그들이 지금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애굽에서 먹던 생선, 오이, 참외, 부추, 파, 마늘 타령을 하며 감사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본문 6절을 보면, 우리의 기력이 다 했음에도 아침 점심 저녁 오직 만나만 준다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예전 개역성경에서는 이 기력이 다했다를 정력이 다했다로 번역을 했는데, 원래 이 말은 성적 능력이 바닥났다는 뜻이기 때문에 기력보다는 정력이라는 말이 더 맞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들의 정력이 바닥났는데도 하나님이 마늘이며 부추 같은 건 안 주시고 여전히 만나만 준다는 불평입니다. </span></div>

<!-- paragraph:p0047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48 -->
<div><span>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중에도 올해 역시 우리는 많은 것을 받았고 또 많은 것을 누렸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다 하나님이 주신 만나로 굶지 않고 먹고 마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헐벗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파산하지 않고 실직하지 않고 버림받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뇌출혈이나 심장마비로 쓰러지지 않고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하나님 원망이란 절대 가당치가 않습니다. 모든 탐욕을 내려놓고 정직하게 짚어보고 세어보시면 올해도 우리에게는 너무도 감사할 것들이 많습니다.</span></div>

<!-- paragraph:p0049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50 -->
<div><span>또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장차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주실 가나안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흔들리거나 약화될 때 반드시 발생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릴 최상의 축복은 미래에 있습니다. 장차 우리가 누릴 영광은 과거에 받은 출애굽의 축복보다 현재 누리고 있는 만나의 은혜보다 훨씬 더 크고 아름답고 궁극적인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이 부분에 대한 기대와 바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소망이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출애굽의 은혜가 있었고, 현재는 만나와 메추라기의 축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장차 우리가 누릴 영광은 그보다 훨씬 더 큰 겁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span></div>

<!-- paragraph:p0051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52 -->
<div><span>여러분, 기독교는 천국 종교고 천국 신앙입니다. 주님이 전하신 복음은 천국 복음입니다. 천국이야말로 우리에게 보장된 최대의 축복이자 최종적인 은혜입니다. 그럼에도 의외로 이 천국의 소망에 무덤덤한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무런 기대도 아무런 감동도 없습니다. 실은 그래서 우리의 감사 생활이 늘 소극적이고 허약한 겁니다. 천국의 소망이 없는 사람은 신앙생활에 힘이 없습니다. 희망이 없는데, 꿈이 없는데, 기대와 바람이 없는데 거기에 무슨 힘이 있고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고 보람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현실이 고되고 힘들어도 소망이 있으면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게 돼있습니다.</span></div>

<!-- paragraph:p0053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54 -->
<div><span>감사는 결코 억지로 되지 않습니다. 누가 하라고 해서, 목사가 윽박지르고 강요한다고 해서 감사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근본적으로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어야, 가나안에 대한 기대와 확신이 있어야, 그래야 자발적인 감사 생활이 가능해집니다. 여러분,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천국에 대한 관심이 없으시면, 천국에 대한 소망이 필요 없다고 생각이 되시면 이쯤에서 깨끗이 신앙생활을 제고해보십시오 괜히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처럼 날마다 불평하고 원망하며 억지로 끌려가느니 차라리 지금이라도 가나안 행을 포기하면 그만큼 손해를 덜 봅니다.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애굽으로 돌아가서 다시 옛날처럼 사는 게 훨씬 났습니다. </span></div>

<!-- paragraph:p0055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56 -->
<div><span>그러나 그럴 뜻이 없으시다면, 그건 아니라면, 부디 천국에 대한 희망, 늘 종말론적 기대를 가지고 사십시오. 그래야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내 삶이 감사해집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좋은 것, 가장 아름다운 것, 가장 소중한 축복은 맨 나중에 주십니다. 그것은 자연의 순리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자연도 맨 나중에 열매를 맺잖아요. 싹이 나고 꽃이 피는 것도 감사할 일이지만 역시 열매가 가장 큰 축복 아닙니까. 내게 베풀어주실 하나님의 가장 좋은 마지막 축복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그 희망을 바라보시며 진심으로 감사하십시오 우리 믿는 자들의 궁극적인 소망은 가나안입니다. 천국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오직 하나, 그 가나안을 목표로 이 고단한 광야를 유랑하고 있습니다.</span></div>

<!-- paragraph:p0057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58 -->
<div><span>하나님이 내 인생 여정의 마지막 종착점을 천국으로 확정해주시고 보장해 주신 은혜에 깊이 감사하십시오. 천국에 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기뻐하시며 늘 밝은 표정으로 환한 모습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마치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람들처럼 늘 불평하고 원망하며 어두운 표정으로, 짜증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가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그것은 다 잡족들이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의 모습이지 결코 우리 하나님 백성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아닙니다. </span></div>

<!-- paragraph:p0059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60 -->
<div><span>그래서 불평이나 원망보다는 오직 감사와 기쁨으로 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span></div>

<!-- paragraph:p0061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62 -->
<div><span><br></span></div>
<!-- paragraph:p0063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lBVrrPbxins"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