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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span>20211107m</span></p>
<!-- paragraph:p0002 -->
<p class="p1"><span>마 25:14-30</span></p>
<!-- paragraph:p0003 -->
<p class="p1"><span>한 달란트 받은 자를 위한 변명</span></p>
<!-- paragraph:p0004 -->
<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3"><span>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span></p>
<!-- paragraph:p0006 -->
<p class="p3"><span>20 </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1)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span></p>
<!-- paragraph:p0007 -->
<p class="p4"><br></p>
<!-- paragraph:p0008 -->
<p class="p4"><br></p>
<!-- paragraph:p0009 -->
<p class="p4"><br></p>
<!-- paragraph:p0010 -->
<p class="p3"><span>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주님의 대표적인 비유 가운데 하나죠. 어거스틴은 이 비유를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주인은 주님이시고, 주인으로부터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우리 모든 믿는 자들이고, 또 주인이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났다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의 승천을 의미하고, 오랜 세월 후 주인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은 주님의 재림을 가리키고, 돌아온 주인이 종들과 결산했다는 것은 세상 마지막 날에 있을 최후의 심판을 뜻하고, 주인이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남긴 종들을 칭찬하며 잔치에 참여하라고 한 것은 천국을 의미하고, 또 한 달란트 받은 자를 내쫓은 바깥 어두운 곳이란 지옥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span></p>
<!-- paragraph:p0011 -->
<p class="p4"><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12 -->
<p class="p3"><span>어떻습니까? 우리도 대개는 그렇게 이해를 하고 그렇게 해석하죠. 그런데 이 유명한 주님의 비유가 뜻밖에도 그동안 많은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현대에 와서 그게 더 심한데, 왜 그럴까요? 왜 이 말씀이 비판을 받았을까요?</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13 -->
<p class="p4"><br></p>
<!-- paragraph:p0014 -->
<p class="p3"><span>우선 주인이 세 사람에게 달란트를 공평하게 배분하지 않고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줌으로써 분배 균등의 원칙을 범했다는 겁니다. 기회 균등의 원칙을 해쳤다는 거예요. 여기에는 이미 불합리한 인간 차별, 인권 문제가 전제돼 있다고 합니다. 공정하지 못하고 왜 누구는 더 주고 누구는 덜 주느냐는 거예요. 근본적으로 그게 사회 정의라는 시대정신에 위배된다는 겁니다.</span></p>
<!-- paragraph:p0015 -->
<p class="p4"><br></p>
<!-- paragraph:p0016 -->
<p class="p3"><span>더구나 28절 이하를 보십시오. “그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어떻게 한 달란트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이미 많이 가진 열 달란트나 가진 자에게 줄 수 있느냐는 거예요. 무릇 있는 자는 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이거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의 대표적인 모순인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학을 조장하는 아주 잘못된 처사라는 겁니다. 그래서 특히 칼 막스나 엥겔스 같은 사회주의자들의 비판이 거셌고 또 신랄했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17 -->
<p class="p4"><br></p>
<!-- paragraph:p0018 -->
<p class="p3"><span>어떻습니까?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다 오해입니다. 넌센스입니다. 우선 이 25장에 나오는 비유들은 다 하나님 나라 비유입니다. 25장 1절을 보십시오. 천국은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는 그렇게 시작을 하잖아요. 따라서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 나라의 새 질서를 말하는 것이지, 세상 나라의 경제 질서나 이 세상의 정의를 가르치려고 하는 교훈이 아니라는 거예요.</span></p>
<!-- paragraph:p0019 -->
<p class="p4"><br></p>
<!-- paragraph:p0020 -->
<p class="p3"><span>그리고 여기 나오는 주인이 이 인간 차별을 했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세 사람에게 달란트를 똑같이 주지 않음으로써 분배균등이나 무슨 공정의 원칙, 기회균등의 원칙을 깼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습니까? 그래서 주인이 정의롭지 못하고 공평하지 못한 악덕 기업주라고 하는데 그 말이 옳습니까?</span></p>
<!-- paragraph:p0021 -->
<p class="p4"><br></p>
<!-- paragraph:p0022 -->
<p class="p3"><span>결코 그렇지 않죠. 오히려 이 주인이야말로 각 개인의 능력차를 인정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재능에 맞게 달란트를 맡긴 지극히 공평하고 상식적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이 본문 15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사람은 능력이 다 다르잖아요? 사람은 그릇이 다 다릅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개인차를 무시하고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같은 양을 맡긴다면 그거야말로 불합리한 역차별 아닙니까?</span></p>
<!-- paragraph:p0023 -->
<p class="p4"><br></p>
<!-- paragraph:p0024 -->
<p class="p3"><span>그런데 이 주인을 보십시오. 각자의 능력에 맞게 달란트를 차등 배분합니다. 각 개인에게 맞춤형으로 맡긴 겁니다. 얼마나 종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깊습니까? 훗날 여행에서 돌아와 종들과 결산하는 대목도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라는 산술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두 종을 똑같이 칭찬하며 거의 문자적으로 완벽하게 같이 칭찬하고, 동일한 칭찬을 합니다. 비록 자기 능력에 따라, 그 사람의 그릇에 따라 다섯 달란트 혹은 두 달란트를 맡기긴 했지만, 그 두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달란트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칭찬은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몇 달란트냐가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달란트에 어떤 자세로 임했느냐 그게 결정적이라는 것, 주인은 그 대목을 봅니다. 그 대목을 평가합니다.</span></p>
<!-- paragraph:p0025 -->
<p class="p4"><br></p>
<!-- paragraph:p0026 -->
<p class="p3"><span>여러분, 고대 헬라 문화권에서 널리 사용되던 달란트라는 화폐 단위의 가치를 아십니까? 순금 33kg이 한 달란트입니다. 장난이 아닙니다. 요즘 가치로도 엄청납니다. 그래서 본문 16-17절을 보면 큰 손으로부터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투자받은 사람들은 당장에 가서 그 막대한 자금으로 사업을 해 많은 이익을 냈다고 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가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가 달란트를 남겼다는 얘기는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다섯 달란트 받은 자에 걸맞은 이익을 냈다는 뜻이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두 달란트 받은 자의 합당한 이익을 창출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두 사람은 다 투자자의 기대에 100% 부응한 겁니다. 그래서 착하고 신실한 종이라는 칭찬과 함께 주인의 잔치에 참여하는 보상까지 받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7 -->
<p class="p4"><br></p>
<!-- paragraph:p0028 -->
<p class="p3"><span>문제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그 받은 달란트를 어떻게 했다고 했죠? 그걸 밑천 삼아 열심히 가서 사업할 생각은 않고 그냥 은행 비밀금고에다 갖다 놓고 자물쇠를 채웠다는 겁니다. 본문 18절을 보십시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주인은 열심히 장사해서 이익을 내라고 투자한 건데 이 사람은 그걸 가지고 가서 그냥 마늘밭에 묻었다는 거예요.</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9 -->
<p class="p4"><br></p>
<!-- paragraph:p0030 -->
<p class="p3"><span>오랜 시간 후에 드디어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오랜 후란 종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주인이 늦게 왔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주님의 재림이 늦다는 뜻입니다. 실제 그렇잖아요. 주님이 먼 나라로, 하늘나라로 떠나신 지 벌써 2,000년이 넘었습니다. 주님이 승천하신 지 2,000년이 지났잖아요. 성경은 이미 그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오랜 후에 오신다. 그래서 지금 많은 사람들이 마치 여기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완전히 긴장을 풀고 무장을 다 해제한 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다 종말에 대한 내성이 생겨서 정말 불감증에 빠져서 아무런 위기의식도, 아무런 고민도 없이 삽니다.</span></p>
<!-- paragraph:p0031 -->
<p class="p4"><br></p>
<!-- paragraph:p0032 -->
<p class="p3"><span>그러나 여러분, 주님은 결국 돌아옵니다. 돌아왔습니다. 오랜 후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했다구요? 19절 하반절, “그들과 결산할새” 이 대목, 이것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종말은 반드시 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세상 끝이 아닙니다. 그냥 역사의 시간에 종지부를 찍는 사건이 아닙니다.</span></p>
<!-- paragraph:p0033 -->
<p class="p4"><br></p>
<!-- paragraph:p0034 -->
<p class="p3"><span>무엇보다도 그것은 심판의 날입니다. 세상 종말은, 주님의 재림은 먼 나라로 떠나셨던 주인이 다시 돌아오시는 날은 심판의 날입니다. 결산하는 날입니다. 그간의 내 모든 삶의 진상이 낱낱이 폭로되면서 칼 같이 엄정한 결산이 이루어지는 날, 그래서 무섭다는 겁니다. 그 안에 내 삶의 모든 내용이 다 드러나면서 선악 간, 신불신 간에 가장 공정하고도 공평한 심판이 이루어지는 날, 그게 주인이 돌아오는 날입니다. 그게 주인이 돌아오는 날 이루어질 최후의 심판입니다.</span></p>
<!-- paragraph:p0035 -->
<p class="p4"><br></p>
<!-- paragraph:p0036 -->
<p class="p3"><span>본문도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으로부터 그간의 수고와 희생과 충성에 대한 칭찬과 상급과 보상을 받습니다. 21절은 다섯 달란트 받은 종에 대한 주인의 칭찬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23절은 두 달란트 남긴 종에게 주인이 한 칭찬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span></p>
<!-- paragraph:p0037 -->
<p class="p4"><br></p>
<!-- paragraph:p0038 -->
<p class="p3"><span>그런데 문제는 한 달란트 받은 자입니다. 그가 받은 한 달란트를 그대로 내 놓자 주인이 뭐라고 했습니까? 26절입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도 않은 데서 거두고 해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8절,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또 30절,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span></p>
<!-- paragraph:p0039 -->
<p class="p4"><br></p>
<!-- paragraph:p0040 -->
<p class="p3"><span>왜 주인이 이렇게 한 달란트 받은 자에게 진노했을까요? 왜 그를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고 했을까요? 아니 막말로 사업을 하다가 뭐 실패를 해서 빈털터리일 수도 있고, 또 뭐 카지노에 가서 도박을 하다가 그 한 달란트마저도 다 날릴 수도 있잖아요. 그러나 더 키우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원금은 살아있지 않습니까? 25절을 보십시오. 한 달란트 받은 종도 주인에게 바로 그 점을 강조합니다. “보십시오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당신이 나에게 한 달란트를 맡겼는데 그 한 달란트를 지금 당신이 회수하셨습니다. 최소한 본전은 받으셨지 않습니까? 이 어려운 때 손해를 볼 수도 있었는데 그래도 원금은 되돌려 받지 않으셨습니까: 뭘 더 바라십니까?</span></p>
<!-- paragraph:p0041 -->
<p class="p4"><br></p>
<!-- paragraph:p0042 -->
<p class="p3"><span>그럼에도 주인은 그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며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 내쫓으라고 선고했습니다. 손해를 끼쳤기 때문이 아니라 주인에게 불충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오늘 이 달란트 비유의 주제는 손해냐 이익이냐가 아니라 충성입니다. 헌신입니다. 주인이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을 칭찬하는 말로 다시 한 번 보십시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겠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43 -->
<p class="p4"><br></p>
<!-- paragraph:p0044 -->
<p class="p3"><span>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기만 했을 뿐 주인이 기대한 충성이 없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그가 원금 보존이 아니라 그걸로 열심히 사업을 하다가 그 한 달란트마저도 몽땅 날려버렸다 혹은 그 한 달란트로 사업을 열심히 하다가 더 많은 빚을 졌다. 그랬다면 과연 주인이 어떻게 했을까요? 당연히 격려하고 위로하고 축복했을 겁니다. 왜요? 그건 충성을 하다가 본의 아니게 손해를 보고, 빚진 것이기 때문에 결코 그것을 책망하거나 책임을 묻지 않았을 겁니다. 잘하려고 하다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선의를 가지고 열심히 사업을 했는데 뭐가 맞지를 않아서 큰 빚을 질 수도 있으니까요.</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45 -->
<p class="p4"><br></p>
<!-- paragraph:p0046 -->
<p class="p3"><span>그러니까 얼마나 손해를 봤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그 종이 얼마나 충성을 했느냐, 그 받은 달란트로 최선을 다했느냐, 그 내용을 보고 그 과정을 중시한다는 겁니다. 한 달란트를 받았는데 그걸로 제가 열심히 사업을 했지만 이렇게 참패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빚을 졌습니다. 원금도 못 돌려드리게 됐습니다. 그러면 주인은 아마 누구보다도 많이 위로를 할 겁니다. 수고했다. 다음에 더 열심히 하면 된다. 더 잘하면 된다. 그럼에도 그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는 그런 수고나 희생이나 헌신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주인이 책망하고 저주한 겁니다.</span></p>
<!-- paragraph:p0047 -->
<p class="p4"><br></p>
<!-- paragraph:p0048 -->
<p class="p3"><span>그렇다면 궁금한 게 있습니다. 여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왜 그 받은 달란트를 그냥 땅에 묻었을까요? 왜 마늘밭에 묻었을까요? 여러분들은 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한 달란트라는 게 함정이었을 겁니다. 한 달란트라는 사실 때문에 우습게 여기고 하찮게 생각한 겁니다. 한 달란트라고 무시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차라리 어디 잘 뒀다가 나중에 본전이라도 돌려줘야겠다. 주인의 뜻은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저 제 판단대로, 제 편리한 대로만 생각한 겁니다.</span></p>
<!-- paragraph:p0049 -->
<p class="p4"><br></p>
<!-- paragraph:p0050 -->
<p class="p3"><span>사실 이런 사람들 생각보다 많습니다. 자기가 받은 달란트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겁니다. 전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과소평가하는 겁니다. 코로나 정국인 올해도 우리는 굳이 말하자면 두 달란트나 다섯 달란트보다는 다 한 달란트 받은 종들에게 가까울 텐데, 여러분은 올해 받은 그 한 달란트를 어떻게 관리하셨습니까? 아무런 의식도 없이, 아무런 개념도 없이 그냥 그 받은 달란트를 방치한 채 여기까지 오신 건 아닙니까? 핑계거리도 많은데 이 코로나 정국에 나가서 뭘 합니까? 무슨 사업을 합니까? 그 한 달란트를 어디다 붙이겠습니까? 이런 때는 자칫하다가 망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냥 묻어둔 겁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51 -->
<p class="p4"><br></p>
<!-- paragraph:p0052 -->
<p class="p3"><span>주인이 달란트를 안 맡긴 종은 없습니다. 주인은 모든 종에게 달란트를 맡깁니다. 매년 맡깁니다. 몇 달란트냐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달란트를 안 맡긴 종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받은 한 달란트를 늘 까마득히 잊고 삽니다. 주인은 오히려 작은 일에 충성해야 큰일을 맡기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한 달란트에 충실해야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에도 충성할 수 있다고 하시는데, 우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다 한 달란트 알기를 우습게 압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53 -->
<p class="p4"><br></p>
<!-- paragraph:p0054 -->
<p class="p3"><span>여러분, 부디 작은 일에 충성하십시오. 큰일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사소한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한 달란트에 헌신하십시오. 디테일에 악마가 있고, 디테일에 함정이 있습니다. 우리눈 디테일에 너무 약합니다. 사소한 일을 소중하게 여기셔야 복 받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55 -->
<p class="p4"><br></p>
<!-- paragraph:p0056 -->
<p class="p3"><span>올해도 주님은 우리에게 큰 일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일을 맡기셨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한 달란트를 맡기셨습니다. 이 와중에 무슨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맡기셨겠습니까? 그 한 달란트를 우리가 어떻게 다루는지, 어떻게 관리하는지 예의 주시하고 계십니다.</span></p>
<!-- paragraph:p0057 -->
<p class="p4"><br></p>
<!-- paragraph:p0058 -->
<p class="p3"><span>자, 보십시오. 드디어 주인의 추상같은 심판이 선고됩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여러분, 이게 바로 악하고 게으르고 무심하고 무책임한 종의 최후입니다. 변명이나 핑계는 통하지 않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59 -->
<p class="p4"><br></p>
<!-- paragraph:p0060 -->
<p class="p3"><span>우리에게는 가까이는 올 연말결산이 있고, 훗날 주님 재림하실 때는 최후 결산, 내 인생 최후 청산이 있습니다. 그런데 연말 결산과 최후 결산이 서로 다를 것이라고 생각을 하시면 오산입니다. 매년 반복되는 연말결산의 연장이 바로 최후 결산이고 최후 심판입니다. 따라서 연말결산이 악하고 게으르고 무익하면 최후 심판도 어쩔 수 없이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61 -->
<p class="p4"><br></p>
<!-- paragraph:p0062 -->
<p class="p3"><span>그것이 아무리 작고 하찮아도 언제나 한 달란트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것이 올해도 우리가 주인의 칭찬을 듣고 복 받고 또 풍성한 주인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비결이라는 사실을 바르게 깨닫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span></p>
<!-- paragraph:p0063 -->
<p class="p3"><span><br></span></p>
<!-- paragraph:p0064 -->
<p class="p3"><span><br></span></p>
<!-- paragraph:p0065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77PNAzN9wc"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