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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31m] 주님의 개혁 행보 (막 1:14-15, 요 2: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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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기도문


주님, 

10월의 마지막 날이자 마지막 주일 아침, 다시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들 오늘로서 지난 7월 중순부터 시작된 4개월간의 주일 가정예배를 종료하고, 이제 다음 주일부터는 교회로 돌아가 대면예배를 드리고자 하오니 끝까지 저희를 지키사 교회 복귀가 차질 없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옵소서. 


주님,

오늘도 환자들을 찾아 가사 안수해주시옵소서.

또 이런저런 사정으로 주일 가정예배조차 쉽지 않은 성도들을 기억하사 주일예배만큼은 꼭 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큰 믿음을 주시므로 주일 성수의 소중함을 깊이 체험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저희 가정을 기억해주셔서 온 식구가 믿음으로 살며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고 성령으로 늘 세상을 이길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벌써 10월이 다 가고 내일부터는 다시 11월이 시작됩니다. 

여러 가지로 혼란스런 중에도 올 역시 아름다운 열매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저희들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기온이 더욱 떨어져 일교차가 10도 이상이나 크게 벌어졌사오니 저희 가족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져주시고, 이 시간도 말씀을 상고할 때 주님 주시는 개혁의 메시지 앞에서 큰 깨달음을 얻고 결단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11031m

막 1:14-15, 요 2:13-19

주님의 개혁 행보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4-15)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1)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3-19)



오늘이 종교개혁 504주년이 되는 날인데 이것은 가톨릭의 사제였던 마르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그 대학 교회 정문에 가톨릭의 잘못된 교리를 고발하는 95개 조항의 대자보를 붙였던 1517년 10월 31일을 개혁의 원년으로 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1517년에 마르틴 루터가 아니라 이미 2,000년 전 주님이 바로 개혁의 진정한 원조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굳이 종교개혁만이 아니라 권력개혁, 정치개혁, 사회개혁의 원조이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실 누구도 주님을 개혁가나 혁명가로 보지는 않습니다. 그건 사실이고, 성경이 말씀하는 주님의 이미지도 우리가 흔히 성화에서 보는 것처럼 부드럽고 자비롭고 온화한 모습이지, 결코 정치개혁, 사회개혁, 종교개혁을 외치며 시위하고 투쟁하는 그런 캐릭터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주님으로 인해 실제 정치개혁, 사회개혁, 종교개혁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그건 어째서 그럴까요? 

우선 주님이 언제 공생을 시작하셨습니까? 30년간은 사적인 생활을 하시다가 31세가 되시던 해에 비로소 공적인 삶에 들어가셨는데, 그 구체적인 시점이 언제였습니까?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 1장 14절을 보십시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는 주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게 된 동기와 그 구체적인 시점, 또 장소까지도 다 소개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세례 요한이 당국에 체포된 사건이 바로 주님이 공적인 삶을 시작하시게 된 직접적인 계기였고, 또 그 시점도 세례 요한이 잡힌 직후였다고 합니다. 또 처음 공생애를 시작하신 장소들 역시 세레 요한이 활동하다가 체포된 바로 그 갈릴리였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이런 정보보다 더 중요한 게 있죠. 공생애를 시작하신 주님이 제일 먼저 선포하신 말씀이 뭡니까? 제일 먼저 외치신 복음, 본문 1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그러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 공생의 제1성인 그 하나님 나라란 뭘까요? 우리는 하나님 나라라고 하면 항상 공간적인 개념, 지리적 개념으로 생각하죠. 한반도, 일본 열도, 중국 대륙 같은 영토 개념, 지정학적 개념으로 이해를 해서 죽으면 가는 저 세상 천당, 천국, 내세, 이런 쪽으로만 이해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여기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 바실레이아 투 데우(Basileia tou Theou)는 그런 영토 개념이 아니라, 주권 개념이라고 했죠. 그래서 엄밀하게 말하면, 바실레이아 투 데우,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지배, 하나님의 정치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거기가 어디든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되고 관철되는 곳이면 그곳이 바로 바실레이아 투 데우, 하나님의 나라라는 겁니다. 굳이 죽어서 가는 저 세상 천국이 아니어도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면 이미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을 외울 때도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그러지 않습니까? 그것은 곧 이 땅에 하루 속히 하나님의 의로우신 통치가 실현되게 해달라는 기원입니다. 따라서 내 심령이 지금 하나님의 온전한 지배를 받고 있다면 이미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겁니다. 우리 가정이 지금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다면, 우리 가정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겁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늘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면, 그곳이 곧 하나님 나라라는 겁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도 이미 내 안에 내 삶에 실현된 그 하나님 나라의 연장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당시 세례 요한이 왜 공안에 잡혀갔습니까? 헤롯의 폭정과 죄악을 비판하며 성토해서, 요즘 말로 하면 국가원수 모독죄, 내란 선동죄, 뭐 그런 것으로 체포된 겁니다. 그러니까 보십시오. 세례 요한이 헤롯의 잘못을 고발하다 정치범으로 붙잡힌 직후에 아직도 분위기가 살벌함에도 주님이 굳이 그 사건 현장으로 직행하셔서 공생애의 첫 발을 내딛으시며 하필이면 또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주권을 외치십니다.


그러니 이게 얼마나 개혁적이고 도전적이냐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세례 요한의 체포 소식을 듣자마자 헤롯의 주권, 헤롯의 권력이 횡포하는 그 갈릴리 현장으로 달려가셔서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셨다는 것은 곧 현실 정치,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선전포고 아닙니까? 이게 바로 주님이 처음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의 모습이신데 어떻습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주님의 정적인 이미지와는 얼마나 다른 역동적인 모습입니까? 


그러면 이어지는 주님의 그 다음 행보를 한번 보겠습니다. 역시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2장으로 갑니다. 요한복음 2장 13절,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갈릴리에서 그렇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공생애를 시작하신 주님이 때마침 그때가 유월절이 가까운 시점이라 다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서 어떻게 하셨다고요? 14절 이하입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이게 바로 주님 공생애의 초기에 있었던 생생한 개혁의 행보셨습니다. 갈릴리에서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시며 사회개혁, 정치개혁, 권력개혁을 외치셨고, 거기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는 유대교의 본산이요 심장인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렇게 채찍을 휘두르시며 짐승들을 내쫓고 장사하는 사람들의 매대와 환전상들의 돈통을 둘러엎으시며 거의 폭력적으로 성전을 정화하시면서 종교개혁, 교회 개혁을 단행하셨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 성전이 난장판이 된 현실을 목격하시고 의분을 참지 못하셔서 이렇게 과격하게 성전을 수정하신 겁니다.


“내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마태복음에서 이 대목을 보면 더 신랄합니다. “만인이 기도하는 집을 너희가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도다” 그러자 마태복음 21장 15절 이하를 보면, 젊은이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를 보내고 열렬히 지지한 반면에, 소위 성전 주인을 자처하던 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은 네가 무슨 권리로, 무슨 자격으로 감히 이런 짓을 행하느냐며 대 들었습니다. 


사실 성전 뜰에서 장사하는 문제도 그렇습니다. 백성들이 성전에서 예배하려면 양이나 비둘기 같은 제물이 필요하고, 먼 이방에서 온 순례자들은 그런 재물을 가능한 한 성전 가까이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또 제물을 사고 헌금과 성전세를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외국 돈을 유대 돈으로 바꿔야 하기 때문에 성전 당국이 순례자들을 배려해서 아예 성전 안에다 양과 비둘기 파는 시장을 조성하고, 환전소도 설치해서 그들의 편의를 도운 겁니다. 따라서 그렇게만 보면 하나도 문제될 게 없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희가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었도다”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도다 하시며 분노하셨습니다. 맞습니다. 그들은 강도들이었습니다. 순례객들이 양이나 염소나 비둘기를 외부에서 준비해오면 무슨 트집을 잡아서라도 퇴짜를 놓고 결국은 제사장의 검인이 찍힌 성전 뜰에서 파는 짐승을 사게 했기 때문에 예배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성전 뜰에서 파는 비싼 짐승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환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방인들의 돈으로는 헌금도 할 수 없고 성전세도 낼 수 없다는 규정을 만들어놓고 무조건 외국 돈을 유대 돈인 세겔로 바꾸게 하면서 터무니없는 환율을 적용해서 폭리를 취했습니다. 그런데 그 성전 장사꾼들이나 환전상들이 다 제사장과 서기관들의 하수인들이고 고용인들이었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의 횡포와 강도 행각에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지금 채찍을 휘두르시며 강도의 소굴이 되고 시장판이 된 예루살렘 성전을 거의 폭력적으로 정화하신 겁니다.

 

그런데 16세기 종교개혁가들의 가톨릭에 대한 분노도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가톨릭이 지금 교황청으로 사용하고 있는 저 베드로 성당을 짓다가 자금이 바닥나자 어떻게 했습니까?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교황 레오 10세가 막대한 공사비를 조달하기 위해 대량의 면죄부를 발행한 겁니다. 면죄부가 뭡니까? 부적입니다. 그걸 사면 사는 만큼 지은 죄가 사해진다는 겁니다.


면죄부는 특히 살아생전에 이렇다 할 공덕을 축적하지 못하고 죽어 아직 천국까지 가지 못하고 연옥에 대기 중인 자기 부모나 조상들에게 그 효력이 즉각적으로 미쳐서 면죄부를 살 때, 돈통에 짤랑하고 돈이 떨어지는 순간 그들 모두가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홍보했습니다. 또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서 면죄부를 사면 그 사람은 연옥을 거치는 일 없이 곧장 천국으로 직행한다고 선전했습니다. 교회가 그야말로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이 된 겁니다. 


당시 루터는 수도사로, 또 신부로, 또 독일 동부 비텐베르크 대학의 철학 교수와 성서신학 교수로 재직하며 주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가르쳤는데, 성경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성경의 가르침과 당시 로마 가톨릭의 교리가 서로 너무도 달라서 자주 좌절하며 회의에 빠졌는데, 때마침 이 면죄부 사건이 터진 겁니다.


루터로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대학교회인 슐로스 키르헤(Schlosskirche) 정문에 가톨릭교회의 잘못된 가르침을 고발하는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게시했던 것인데, 그게 결국은 중세 종교개혁의 어마어마한 신호탄이 된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지금 우리 한국 교회는 어떻습니까? 그 옛날 주님 시대 성전에서 비둘기를 팔고 양을 팔고 돈을 바꾸어주며 상거래 하던 일이 이 시대 우리 한국 교회 안에서는 더 이상 없습니까? 중세 가톨릭은 면죄부를 팔며 대대적으로 천문학적인 규모의 종교 장사를 벌였는데 지금 우리 한국 교회는 그런 일 안 합니까?


솔직히 한국 교회 치고 장사하는 집 아닌 곳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만약 주님이 지금 우리 한국 교회를 찾아오신다면 뭐라고 하시며 어떻게 하실까요? 저는 틀림없이 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신 것처럼 그렇게 상을 둘러엎으시고 돈통을 쏟으시며 채찍을 휘두르실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 요즘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들고 일어나 열심히 교회를 욕하고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있는데, 사실 사회는 더 한심하고 더 많은 모순에 절어서 더욱 철저한 개혁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그게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가 더욱 절실한 곳이 바로 세상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주님의 개혁정신, 개혁사상, 개혁의 실천은 굳이 종교만이 아닙니다. 교회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교회만 창조하시고 우리 믿는 자들만 지으신 게 아닙니다. 이 온 세상, 온 우주를 다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이 다 개혁의 대상이고 개혁의 장입니다. 사회도 정치도 문화도 경제도 다 하나님의 통치 하에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지배를 받으며 하나님의 공평하심과 정의를 구현하고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개혁이 뭡니까? 하나님의 주권이 관철되지 않는 사회,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가 짓밟히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게 구체적으로 실현되게 하는 사역입니다. 그게 바로 개혁입니다. 그리고 그 개혁의 진정한 주체들이 바로 개혁의 원조이신 주님의 분신들인 오늘 우리들이라는 겁니다.


오늘 종교개혁 기념주일을 맞아 다시 한 번 그 사실에 대한 깊은 자각과 결단이 있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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