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호감 게임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가수 이용의 1년치 수입이 들어온다는 <10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제게는 80년대가 <잊혀진 계절>입니다.
79년에 출국해 89년에 귀국했으니 82년에 발표되어 온갖 가수상을 다 휩쓸며 대스타가 됐다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알 턱이 없는데 다만 귀국 후에도 매년 10월이면, 더구나 오늘 같은 <10월의 마지막 날>이면 온 국민이 어김없이 가슴 시릴 준비를 하고 소환하는 곡이라 제게도 어느새 익숙한 노래가 되어버렸습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그런데 요즘은 이용의 <잊혀진 계절>일뿐 아니라 마치 <잊혀진 세월>, <잊혀진 시대>같은 나날이어서 몹시 안타깝습니다. 내년 3월 9일 대선을 앞두고 펼쳐지는 여야 유력주자들의 역대급 비호감 레이스 말입니다.
지난주 한국 갤럽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하나 같이 호감도는 19-32%로 낮고, 비호감도는 그 2배가 넘는 59-72%를 기록했습니다.
자칫 나라의 최고 지도자를 뽑는 투표가 <누가 덜 싫은가?> <누가 덜 못났는가?> <누가 덜 사기꾼인가?> <누가 좀 덜 무식한가?> <누가 좀 덜 파쇼인가?>를 택하는 최악의 대선, <오징어 게임>보다 더 허무한 초유의 <비호감 게임>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호감이거나 비호감입니다.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또 <비호감>이 실수를 하면 <역시...>이고, <호감>이 잘못을 하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호감>이던 사람이 <비호감>이 될 수는 있어도, <비호감>인 사람이 <호감>이 되는 예는 드뭅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완고하고 편협해 한 번 <재수 없는 사람>은 끝까지 갑니다.
사람은 처음 상대를 보는 순간 7초면 <오!>와 <앗!>이 갈린다고 합니다.
이것을 <7초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이는 누구나 첫 인상에서 이미 <호감>과 <비호감>이 결정 난다는 뜻인데, 더구나 거기에 이념이나 진영 논리가 윤색되면 그 이미지가 더욱 굳어집니다.
오늘날의 민주 국가들은 모두 다수결에 의한 선거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한 표라도 더 많은 후보가 승리하는 겁니다. 그것은 언뜻 보면 가장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것 같아도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우리의 경우만 해도 전체 국민의 50%의 지지도 얻지 못한 대통령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35% 혹은 40% 정도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경우 사실상 훨씬 더 많은 60%, 65%의 국민은 그를 지지하지 않은 것이므로 최다 득표 당선이라는 말이 무색할뿐더러 실제 그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들이 더 많은 상황에서 대표성을 내세우기도 참 민망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투표의 역설>(voting paradox)라는 말이 있습니다.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자 <마르퀴 드 콩도르세>가 다수결 투표 제도의 맹점을 지적한 말인데 다수결 투표에서는 흔히 그 집단이나 공동체가 바라는 것과는 영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주 서거한 노태우 전 대통령이 그 좋은 예입니다.
1987년 실시한 첫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김영삼 후보가 분열되어 선거는 3파전으로 치러졌고 결과는 노태우 37%, 김영삼 28%, 김대중 27%로 결국 군부 출신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만약 그때 김영삼, 김대중 후보가 단일화를 이루었다면 둘 중 누가 되든 노태우 후보보다 더 많은 득표로 다수 국민의 염원이던 문민정부를 이룰 수 있었음에도 결국 비호감 지수 55%를 기록한 최악의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투표의 역설>이 현실로 나타난 대표적 케이스가 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탈리아의 인지심리학자 <모테를리니>는 이런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여기 세 후보가 있습니다.
A는 숨겨둔 애인이 있었고, 줄 담배에 술을 하루 6-10병이나 마십니다.
B는 대학 시절 마약을 했고,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으며 공직에서 해임된 경력도 있습니다.
C는 술, 담배 마약을 일체 않는 금욕주의자로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기도 해 국가 무공훈장을 받은 애국자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세 후보 중 누굴 선택하시겠습니까?
이제 당신의 선택에 놀라지 마십시오!
A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고, B는 윈스턴 처칠, C는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오늘은 마침 종교개혁 504돌이 되는 주일입니다.
부디 우리 한국 교회에도, 우리 사회와 정치에도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져 두 번 다시 비호감 막장 드라마와도 같은 <투표의 역설>이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해봅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 이미지: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