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211024m] 밤바다에서 광풍을 만나다 (막 4: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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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기도문


주님, 

부쩍 추워진 주일 아침 조촐한 가정예배로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예배의 영이신 성령으로 함께 하사 주님께는 영광이 되고, 저희 가정에는 은혜와 축복이 되는 신령한 예배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일교차가 크게 벌어진 요즘 가족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주시고, 오늘도 환자들을 찾아 가사 위로하시며 안수해 주시옵소서.


 지금은 오랜 <코로나>로 저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다 시들고 지쳐 모두가 고통스러워하고 있사오니 부디 주님의 그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지사 저희를 온전케 해주시옵소서.


오늘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가정예배조차 드리지 못하는 성도들 있사오니 그들의 처지도 헤아리사 더욱 큰 믿음을 주시고, 또 예배의 소중함과 복됨도 깊이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저희들 이제 11월 첫 주일부터는 교회로 돌아가 대면예배로 주일을 지키고자 합니다. 

그 사이 어떤 변수도 차질도 발생하지 않도록 지키사 이번만큼은 저희가 기대하는 교회 복귀가 꼭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말씀을 상고할 때 깨달음을 주시고, 허락하시는 메시지에서 주님의 뜨거운 육성을 듣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110124m

막 4:35-41

밤바다에서 광풍을 만나다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1)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어떤 분은 예수를 믿으면 만사가 형통하고 삶의 그 어떤 풍랑도 없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옳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죄송하지만, 예수를 믿으면 예수를 안 믿을 때보다 오히려 풍랑이 더 많습니다. 그건 또 왜 그럴까요?


전에는 내가 세상 편이었기 때문에 세상이 나를 안 건드렸지만, 지금은 내가 주님 편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세상이 나를 할큅니다. 이제는 내가 세상과 짝하거나 세상을 따라가기보다는 오히려 세상을 대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게 바로 예수를 믿기 전보다 믿은 후에 오히려 고난이나 시련이 더 많은 이유입니다. 


오늘 본문도 보십시오. 35절입니다. “그날 저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그래서 지금 갈릴리 바다 저편으로 가고 있는 중인데 풍랑을 만난 겁니다. 큰 풍랑이라고 합니다. 주님이 명령하신 뱃길이고, 더구나 지금 주님도 그 배에 함께 타고 계신데도 가공할 큰 풍랑을 만났다는 겁니다. 우리의 기대와 상식과는 얼마나 다릅니까. 주님과 함께 가면 미친 듯이 덮치던 풍랑도 당장 수그러들고 잦아들어야 맞는데, 이건 사태가 점점 더 악화됩니다. 이 부분을 우리가 참 이해하기 힘들어하고 또 잘 용납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기독교도 별 수 없다며 시험에 들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4장이지만 마가복음 6장에도 또 한 차례 풍랑 이야기가 나옵니다. 6장 45절입니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세다로 가게 하시고” 거기서 말씀하는 즉시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신 직후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보십시오. 아직 주님이 조금 전 베푸신 그 기적의 감격과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인데, 다시 모진 시련의 풍랑이 그들을 덮친 겁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해서 늘 초자연적인 기적만 있는 게 아닙니다. 늘 배불리 먹고 12광주리나 남는 풍성함 넉넉함만 있는 게 아닙니다. 기적이다 싶으면 어느새 또다시 성난 파도가 밀려옵니다. 현실을 말하면, 사실을 말하면, 캄캄한 밤바다에서 그렇게 역풍을 만나 고통하는 시련의 순간이 훨씬 더 많습니다. 분명히 주님이 저 건너편으로 가라고 하신 뱃길인데도 순항보다는 언제나 풍랑을 만나 난항을 겪을 때가 훨씬 더 많다는 겁니다.


본문도 보십시오. 당시 풍랑이 얼마나 위협적이었던지, 제자들이 우리가 다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갈릴리 호수는 실제 그렇다고 하지 않습니까? 언제 어디서 큰 풍랑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아주 위험한 호수라고 합니다. 호수 북쪽에 해발 2,000m가 넘는 헐몬산이 있고, 항상 눈을 쓰고 있는 그 산꼭대기에서 찬 공기가 계곡을 타고 폭포수처럼 갈릴리 호수로 쏟아지면, 호수 위에 있던 따뜻한 공기와 맞부딪히면서 발작적으로 풍랑이 일어나기 때문에 갈릴리 바다에 어부들조차도 늘 긴장하며 조업에 나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이 본문에서 특히 놀랍고도 이상한 것은 제자들은 지금 캄캄한 밤바다 한가운데서 살인적인 풍랑을 만나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정작 주님은 그 와중에도 배 고물, 즉 배 뒤쪽에서 세상모르고 주무시고 계셨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제자들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자기들끼리만 고군분투하다 나중에서야 주님이 생각나 찾다가 주무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고 깨우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38절입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제자들의 이 다급한 호소에는 다분히 우리가 지금 다 죽게 생겼는데, 그래, 잠이 옵니까 하는 원망이 잔뜩 서려 있습니다. 그제야 일어나신 주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일단 바람부터 꾸짖으시고 파도부터 잠재우십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그러자 정말 거짓말처럼 광풍이 그치고 삼킬 듯이 덤비던 파도도 잔잔해졌습니다. 


보십시오. 주무시던 주님을 깨우자 그 즉시 상황이 종료되지 않습니까. 주님 말씀 한마디에 그동안 미친 듯이 배를 뒤흔들던 풍랑이 당장 잠잠해졌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자연도 환경도 우리의 삶의 모든 조건도 다 말씀 한 마디로 평정하실 수 있습니다. 어째서 그게 가능하실까요? 


태초에 말씀으로 이 우주의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지금도 우주의 모든 질서와 피조물들을 얼마든지 말씀으로 그렇게 요리하시고 통제하실 수 있습니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나무가 있으라, 새가 있으라 하시니 다 그대로 된 것처럼 주님은 지금도 무엇이든 말씀으로 다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주님을 빨리 깨우느냐에 달렸습니다. 보면, 어떤 사람들은 밤바다에서 풍랑을 만나면 즉각 주님께 달려가 호소해서 그 위기 상황을 최대한 빨리 수습합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좀처럼 주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막판에 가서 겨우 주님을 깨워 상처뿐인 구원을 받기도 합니다. 사실은 오늘 이 제자들도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신속하게 주님을 깨웠더라면 그 같은 죽을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당시 제자들은 왜 좀 더 일찍 주님을 깨우지 못했을까요?


먼저 풍랑을 제압하신 주님이 후에 제자들을 뭐라고 책망하셨죠? 40절,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결국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41절도 보십시오. “그들이 힘이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제자라며 주님을 따라 다녔지만, 그들은 아직 주님을 제대로 몰랐습니다. 주님에 대한 변변한 믿음도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도 이 사건이 나오는데, 거기에는 주님이 풍랑보다 제자들을 먼저 책망하시며 “어찌하여 이토록 무서워하느냐 이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랬습니다. 맞습니다. 결국 믿음이 작고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제 힘으로 그 풍랑을 극복해보려다 주님을 그렇게 늦게 찾았고, 늦게 깨운 겁니다. 주님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그만큼 약했던 겁니다. 따라서 두려워하며 발만 구를 줄 알았지, 주님을 찾거나 깨울 생각을 못했던 겁니다.


여러분, 주님은 언제나 우리가 찾고 깨울 때까지 그냥 누워 계십니다. 그냥 주무시고 계십니다. 시편 3편 7절입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일어나 나를 구원하소서” 다윗이 그의 생애 중 가장 비참할 때, 가장 참혹하고 고통스러울 때 드린 기도입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맨발로 왕궁을 빠져나가면서 눈물로 드린 기도입니다. 다윗은 늘 그렇게 주님을 깨우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또 누구든 당신을 깨우기만 하면 즉각 일어나십니다. 사실 주님은 주무시지 않습니다.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다만 주무시는 척 하시며 우리의 믿음을 시험해 보고 계실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주님은 배 고물에서 제자들의 그 악전고투를 다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6장에서도 산에서 홀로 기도하시며 제자들이 저 바다 한가운데서 벌리는 사투를 다 보고 계시다, 밤 사경쯤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로 오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풍랑과 싸우는 우리의 모습을 그렇게 보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달려가 주님께 호소하고 살려달라며 주님을 깨우기 전에는 결코 안 일어나십니다. 개입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의 배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졸지에 풍랑이 일어 험한 파도가 우리를 삼키려 할 때도 주님은 우리의 배 고물에서 그냥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주님의 존재가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은, 우리가 주님보다는 여전히 지금 우리를 위협하는 저 높은 파도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모습이 안 보이는 겁니다. 마태복음 14장을 보면 바다 위를 걸어 풍랑 만난 제자들에게 오신 주님이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처음에는 유령인 줄 알고 두려워 하다가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뭐라고 합니까? “주여 저도 주님처럼 그렇게 바다 위를 걷게 해주십시오” 그럽니다. 주님이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주님을 바라보며 처음에는 실제 바다 위를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몇 발짝 가지 못해 다시 파도가 치자 두려움에 사로잡혀 파도를 내려다보는 순간 그만 풍랑에 휘감겨 그대로 바다에 빠지고 맙니다. 주님이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구해주시며 뭐라고 하셨죠?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


여러분, 아무리 세파가 극심해도, 아무리 캄캄한 밤바다의 파고가 우리를 삼킬 듯이 위협해도 우리는 여전히 담대한 믿음으로 주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지체하지 않고 주님을 찾고, 주님을 깨워야 합니다. 올해도 저 건너편까지 무사히 항해하기 위해서는 나의 노력이나 기술이나 제주보다 주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보십시오. 주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다 혹은 믿음이 작다고 책망하셨지, 배를 부리는 기술이나 풍랑과 싸우는 노력이며 의지가 약하다고 탓하시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 항해에 필요한 것은 오직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누구나 인생 항해에서 풍랑을 만나면 우선적으로 주님을 찾고 주님을 깨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올해도 두 달여 남은 우리의 항해의 성공 비결은 지금도 배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아니 주무시는 척하시며 우리의 풍랑 만난 위기와 괴로이 노 젓는 모습을 다 지켜보고 계시는 주님을 최대한 빨리 깨우는 겁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 거의 좌초 위기까지 왔습니다. 지난 2년간 지구촌 전체를 삼킬 듯한 코로나19로 나라도 사회도 마치 동력이 꺼진 배처럼 이리저리 표류하고 있는 형국이고, 교회도 지금 침몰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고, 소상공인들이며 각 가정도 무너지지 않으려고 필사의 노력을 다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상황에서는 그 어떤 인간적인 노력이나 처방보다 무조건 주님을 찾고 주님을 깨워야 한다는 게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여러분, 오늘의 위기가 아무리 최악이고 초유의 사태라고 해도 마지막 순간 우리가 극적으로 나마 주님만 깨울 수 있다면, 주님을 향해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시지 아니하시나이까 하고 부르짖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삽니다. 주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서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며 풍랑을 제압하시고 이 위기를 평정해 주십니다. 


보십시오. 주님이 바람과 바다를 꾸짖자 그 즉시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아주 잔잔하여지더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이분이 누구이시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며 두려워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것만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이것만이 우리가 지금의 이 혼란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그럼에도 당시 제자들은 그런 믿음과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주님을 늦게 찾았고 따라서 주님의 책망을 면치 못했던 겁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더 늦기 전에, 파손 당하기 전에 침몰하기 전에, 기도의 계절인 이 가을에 모두 주님을 열심히 찾고 또 부지런히 깨웁시다. 주님만 일어나시면 그 순간 모든 상황이 끝난다는 확신을 가집시다. 그래서 제자들처럼 책망이 아니라 칭찬과 더불어 풍랑을 제압해주시는 주님의 큰 은혜를 함께 누리는 복된 성도들, 복된 가정들 다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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