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해피 엔딩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라 퇴임하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 얘깁니다.

 

제 인생에서 전 세계 정치인 중 <앙겔라 메르켈>(Angela Dorothea Merkel, 1954-)만큼 자국민의 진심어린 존경과 사랑을 받은 정치인은 보지 못했습니다. 

독일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메르켈 총리를 <무티>(Mutti)라고 부릅니다. <무티>란 <엄마>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메르켈은 4년 임기의 총리직을 무려 4번이나 연임한 독일인들의 진정한 <국민 엄마>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지도력도 <무티 리더십>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16년 동안 독일인들은 메르켈 총리의 그 차분하고도 소탈하고 인간적인 <엄마 리더십>에서 모성적인 평안함을 느꼈고, 단 한 번도 부정이나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적 없는 그의 깨끗하고도 총명하고 겸손한 정치 행보에서 굳이 다른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로 지내왔습니다. 

 

그녀는 협상과 타협을 중시하고 고함을 치거나 정적에 대해서도 결코 공격적이지 않고 끝까지 설득을 포기하지 않는 소통의 달인이었습니다.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그녀의 <정치적 장수> 비결을 <독일인들은 메르켈이 권력을 티내지 않고, 지독하게 절약하며 검소하게 사는 모습을 좋아했다>고 전하며, <메르켈이야말로 권력을 가졌다는 게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님을 각인시킨 최초의 정치인이었다>고 평했습니다. 

 

이번에도 본인 스스로 연임 의사가 없다며 정계 은퇴를 선언하지 않고 다시 5선에 도전했다면 당연히 성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77%의 지지율을 자랑하고 있으니까요!

 

며칠 전 독일의 전 국민이 자신의 집 발코니에 나와 6분간 따뜻한 박수를 치며 지난 16년간 통일 독일의 8천만 국민들을 엄마처럼 이끌어준 메르켈 총리에게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하며 아쉬운 작별을 고했습니다. 화려한 쇼는 아니었지만 그야말로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 그대로의 진정한 해피 엔딩 이벤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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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베를린에 장벽이 세워지기 전 무려 270만의 동독인들이 자유를 찾아 서독으로 탈출했습니다. 그런데 1954년 서쪽으로 이동하는 그 수많은 인파를 뚫고 반대로 서독에서 동쪽으로 떠나는 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바로 <호르스트 카스너> 목사 가정이었습니다. 

 

당시 동독의 목회자들이 거의 다 서독행을 택했기 때문에 서독에는 목회자가 넘쳤지만 동독의 사정은 그렇지 못해 동독인들은 졸지에 목자 잃은 양떼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카스너> 목사는 함부르크의 한 루터교회에서 누구보다도 안정된 목회를 하고 있었으나 딱한 동독의 소식을 듣자 전격 동독행을 결정하고, 자진하여 공산 치하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동독으로 향하던 당시 <카스너> 목사 부부의 품에는 이제 겨우 6주된 신생아가 안겨 있었고, 그가 바로 메르켈 총리였습니다.

 

동독 브란덴부르크의 어느 시골 교회 목사관에서 아버지의 엄격한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메르켈은 특히 수학과 언어학에 빼어난 재능을 보이며 동독 최고의 라이프찌히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물리학자가 되었으나 통독 과정에서 정치에 입문, 통일이 된 후에는 환경부 장관이 됐고, 2005년 총선에서는 총리가 되어 독일의 범보수 우파인 <CDU>(기독교민주연합)를 18년간이나 이끌어왔습니다.

 

공산 치하에서 초중고와 대학 교육까지 받은 여성이 통독 이후 독일의 역대 최연소 총리,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웠다는 사실이 생각할수록 놀랍기만 합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남북통일 후 북한 출신 여성 정치인이 통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어 16년간이나 집권했다는 얘기 아닙니까? 

 

미국의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달 22일 발표한 세계 주요 16개국 국민들의 신뢰도 조사에 의하면 조 바이든 미 대통령 67%,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61%,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20%, 메르켈 독일 총리 75%로 최근 5년간 메르켈 총리가 줄곧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왔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에도 메르켈이 지난 10년 연속 1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녀는 현재 총리 이전부터 살던 작고 평범한 서민 아파트에서 남편과 단 둘이 살고 있고, 퇴임 후에도 계속 그 아파트에서 살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언제나 이런 지도자를 한 번 가져볼 수 있을까요?

 

메르켈이 재임한 지난 16년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황교안 권한대행 그리고 현 문재인까지 모두 5명의 국가 최고 지도자가 거쳐 갔습니다. 그러나 그중 단 한 명도 메르켈처럼 <해피 엔딩>을 장식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나같이 <새드 엔딩>으로 불행했을 뿐이고, 지금도 여전히 두 사람은 감옥에 있고, 한 사람은 법원으로 불려 다니며 재판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16년 장기집권을 하고도 여전히 77%의 지지율을 보이며 제 발로 최고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지도자를 가진 독일 국민들이 부럽다는 것이고, 왜 우리의 정치판에는 정치도 없고 메르켈도 없는지가 안타깝다는 얘긴데, 대선이 불과 4개월 남은 요즘은 더 심란하고 더 절망스러운 이유가 대체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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