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7m] 여러 빛깔의 시험 (약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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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기도문
주님,
어느새 기온이 영하의 수준으로 떨어진 이 주일 아침,
역시 가정 예배로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신령과 진정을 다 하는 산제사가 되도록 성령으로 함께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환자들을 찾아 가사 위로하시며 안수해주시고, 또 이런저런 사정으로 주일 가정예배 조차 힘든 성도들을 기억하사 그 형편을 헤아리시며 더욱 큰 믿음을 주셔서 어떤 경우에도 꼭 주일을 지킬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주님,
이제는 모두가 한계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거리두기 4단계가 또다시 이달 말까지 연장됐습니다.
총리의 말대로 부디 이번이 마지막 거리두기 조치가 되게 하사 내달부터는 필히 교회로 돌아가 성도들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며 교제하며 또 서로를 격려하며 주일을 성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코로나19>로 남다른 고통을 겪고 있는 가정들, 긴급한 사정 때문에 주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가정들, 응답을 기대하며 지금도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는 가정들의 절절한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사 바라는 바를 하루속히 다 허락하시고 다 이루어 주시옵소서. 저희 가정의 소원도 들어 주사 주님의 큰 은혜를 입기에 부족함이 없게 해주시옵소서.
오늘도 말씀을 상고할 때 깨달음을 주시고, 허락하시는 메시지 앞에서 바르게 결단하며 자신을 살피는 실로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11017m
약 1:1-8
여러 빛깔의 시험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믿음과 지혜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사실 오늘 본문은 이 1장 8절까지라기보다는 야고보서 1장 전체입니다. 그리고 이 1장의 주제는 여러 가지 시험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여기 2절에 나오는 여러 가지라는 말의 헬라어 포이키로이스(poikilois)는 원래 여러 빛깔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시험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페이라스모이스(peirasmois)인데, 이것은 유혹이나 미혹 같은 정신적인, 심리적인 시험이라기보다는 시련이나 고난이나 고통 같은 보다 물리적인, 보다 현실적인 시험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겪고 당하는 시험은 참 여러 가지입니다. 그 색깔이 얼마나 다양한지 모릅니다. 실은 그래서 감당하기가 쉽지 않고, 익숙해지기도 쉽지 않고, 또 당하고 겪을 때마다 그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운 겁니다.
그럼에도 오늘 이 본문은 뭐라고 합니까? 시험이 오면, 내게 그런 여러 빛깔의 고난이 닥치면 2절 하반절은 그걸 기쁘게 여기라고 합니다. 왜요? 시험이란 곧 내게 기회니까요. 여러분, 시험은 그게 어떤 것이든 다 힘들고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 시험을 절대 피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뭘까요? 누구나 시험을 통과하고 합격해야 비로소 진학을 하고, 진급을 하고, 의사가 되고, 박사가 되고, 판검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시험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자녀들이 학교를 다니고, 학원을 다니고, 유학을 가고, 비싼 돈 줘가며 토플을 보고, 또 각종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그래야 이 험한 세상에 살아남을 수 있고, 또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도 반드시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시험을 거쳐야 성숙합니다. 시험에 합격해야 주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고, 그래서 더 많은 더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통해 내 믿음이 검증돼야 비로소 주님이 아 이 정도면 내가 이런 은혜, 이런 축복을 베풀어도 너에게 화나 저주가 아니라 유익이 되고 도움이 되겠구나 하시며 안심하고 은혜를 베푸시는 겁니다.
창세기 22장 12절 이하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내가 이 같이 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는지라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게 하리라” 따라서 살아가다 여러 가지 빛깔의 시련과 고난이 닥치면 그걸 두려워하거나 무조건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도리어 기뻐하고 감사하며 보다 적극적으로, 보다 긍정적으로 용감하게 담대하게 그 시험을 상대하라는 겁니다. 그게 곧 내게 주어진 기회라고 믿고, 비관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도리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좋게, 적극적으로 해석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 닥치는 고난이나 시련을 불행이라고 하지 않고 항상 시험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게 비록 즐겁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가 진보하고 발돋움하고 성숙할 수 있는 기회요 관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그럼 이제 여러 빛깔의 시험이 내게 현실적으로 닥쳤을 때, 과연 내가 어떻게 해야 그런 주님의 기대에 부응하며, 그 시험을 좋은 성적으로 통과할 수 있을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문은 먼저 지혜를 구하라고 합니다.
5절 이하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여러분, 시험이 닥칠 때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게 뭘까요? 시험을 당할 때 우리가 가장 힘들어하고 답답해하는 부분이 뭡니까? 하나님이 왜 내게 이런 시험을 주셨을까?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렇게 모진 아픔과 실현을 당하게 하신단 말인가? 그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그 문제, 그 부분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하면, 결국 우리는 그 시험에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험에는 반드시 지혜가 필수적입니다. 아니 각종 세상 시험에도 지혜가 있어야 잘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지혜가 있어야 좋은 성적을 내고 합격도 합니다.
영적인 시험도 그렇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지혜가 있어야 그때그때 내게 닥치는 시험의 정체를 바르게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왜 이 시점에 하나님이 내게 이런 시험을 주셨는지, 이 시험을 통해 하나님이 내게 바라시고 기대하시고 노리시는 게 뭔지, 내게 어떤 복을 주시고 어떤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지금 나로 하여금 이런 시험을 겪게 하시는 건지, 이 시험을 통해 궁극적으로 내게 전달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뭔지. 이런 건 다 그야말로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지혜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분별할 수 없는 비밀이고 계시 아닙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내가 정말 지금 내게 닥친 모든 시련과 고난의 신비를 명쾌하게 다 해석하고 분별할 수 있다면, 과연 시험 앞에서 기뻐하고 감사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영적인 지혜가 없어서 그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시험이 언제나 내게 아픔이 되고 고통이 되고 달아나고 싶은 내 인생의 걸림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시험이 오면 무엇보다도 먼저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지혜의 원천이십니다. 지혜의 본체십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본성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6절 말씀처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면,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신령한 지혜를 후히 주사 우리로 하여금 반드시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이 시험의 비밀을 깨닫게 하심으로 나로 하여금 패하지 않고 이 시험에서 반드시 승리하게 하신다는 겁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기도해서 남은 수없이 고쳐주고, 심지어는 죽은 자도 살려줬지만, 정작 자신의 병은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그에게는 치명적인 시험거리였습니다. 오죽하면 내 몸을 찌르는 가시라고 한 자신의 그 병을 사탄의 사자라고까지 했겠습니까?
아닌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바울의 그 병이 하나님의 저주처럼 보였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14절을 보면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내 육체에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있으되 너희가 나를 업신여기지도 아니하고 버리지도 아니하고 도리어 나를 하나님의 천사 같이 또 그리스도 예수 같이 영접해줬다며 진심으로 감사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학자들은 바울의 그 병을 간질로 보는데, 어쨌든 바울로서는 그게 자기가 선교하는 데 큰 장애가 되니까 금식을 했는지, 단식을 했는지, 아주 작정을 하고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하지만, 병은 낫지 않고 대신 하나님이 그에게 놀라운 지혜를 주셔서 그 병의 비밀을 깨닫게 해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게 저주가 아니라, 그게 사탄의 사자가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은혜의 큰 축복임을 알게 해주셨다는 겁니다.
아니, 간질병이 무슨 은혜고 무슨 축복이라는 겁니까? 잘 아시는 대로 바울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신령한 은사, 즉 영적인 신비 체험을 많이 한 사람이죠. 그래서 자칫 교만에 빠지기가 쉬운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바울을 사랑하사 그의 몸에 하나의 제어장치, 통제장치로 아픈 가시를 주셨다는 겁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입니다. “내가 받은 여러 계시가 지극히 크므로 주님이 내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으니 이는 나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그 사실, 그 비밀을 깨닫고부터는 바울이 더 이상 자신의 그 치명적인 육체의 가시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리어 감사하며 진심으로 기뻐했다는 겁니다. 두 번 다시 그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주십사 기도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걸 자랑했다는 거예요. 하나도 달라진 것은 없는데, 주님이 주신 지혜로 그 모든 시험의 비밀을 깨닫자, 실은 모든 게 달라진 겁니다. 모든 게 새로워진 겁니다.
다음은 자제하라입니다.
본문 3-4절에는 인내하라는 말씀이 나오고, 또 19절 이하를 보십시오. 야고보서 1장 19절입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더라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에게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말하는 것, 성내는 것을 더디 하라고 합니다. 여기 인내하라, 더디 하라는 것은 시험이 오면 자신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통제해서 절제하고 자제하라는 겁니다. 특히 입을 잘 단속하라는 것은 시험이 오면 누구나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서 주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또 남을 탓하기도 하고, 가족들에게 화풀이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남과 크게 다투기도 합니다. 울면서 신세타령도 하고, 절망하면서 식음을 전폐하기도 하고, 아예 자리에 드러눕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여간 시험 당할 때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게 다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절대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 오히려 인내를 온전히 이루고, 12절, 참고 견디고 또 말하는 것, 성내는 걸 다 자제하고 절제하고 억제하고 더디 하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시험 당할 때, 왜 그렇게 성내는 것도 말하는 것도, 여러 가지 감정 표현도 최대한 참고 억제해야 할까요? 20절 말씀을 보면, 그게 결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의란 그 시험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나를 위해 허락하신 그 시험에 나의 인간적인 감정이 전혀 통제되지 않은 채 원색적으로 개입이 되면 결코 당초 하나님이 의도하신 선하신 뜻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흥분해서 역정을 내고 자제하지 못하고 길길이 뛰면, 마귀가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고 기름을 붓고 부채질을 하고 충동질을 해서 순식간에 내 이성을 잃게 해서 내 감정을 폭발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로 하여금 그 시험으로 인해 결국 치명상을 입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특히 시험 당할 때, 많이 자제하고 냉정하게 자신을 통제하며 내 감정을 잘 단속해야 합니다. 마귀에게 역이용, 악이용 당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이 의도하신 선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세속에 물들지 말라고 합니다.
이 1장 마지막 절인 27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여러분, 이게 또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게 또 여러 빛깔의 시험을 이기는 중요한 비결 가운데 하나입니다. 세속에 물들지 말라는 것은 세속과 타협하지 말라, 세속과 수작하지 말라, 세속에 동화되지 말라, 세속에 자신을 팔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도 시험이 오면 꼭 엉뚱한 짓을 합니다. 온갖 세속적인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안 가던 점집도 찾고, 정법도사도 찾아갑니다. 왕(王)자 부적도 삽니다. 꼭 1등에 당첨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며 복권도 사고 심지어는 잭팟을 터뜨리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도박장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얼마나 답답하면 그럴까도 싶지만, 그건 다 시험을 핑계로 세상에 자신의 영혼을 파는 짓입니다.
여러분, 우리 믿는 자들을 성도라고 하지 않습니까? 성도란 거룩한 백성이라는 뜻인데, 그 말의 더 깊은 어원적 의미는 구별된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구별된 백성이라는 말은 비록 세속 한복판에서 살지만 세상과 타협하거나 세상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족속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시험이 올 때, 내게 시련이 닥치고 고난이 올 때, 우리는 반드시 성도로서의 본때를 보여야 합니다. 두려워하며, 불안해하며 신앙이고 뭐고 다 내던지고 온갖 세상적인 방법, 세속적인 해결책을 찾아 나설 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성도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성도 본연의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어야 하나님이 주신 그 시험을 통과해서 마침내는 그것으로 인해 내가 더 발전하고 성장하며 더 큰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최악의 코로나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빛깔의 다양한 시험들로 인해 오히려 더욱 성장하고 성숙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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