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0m] 눈물의 선지자 (렘 3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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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기도문
주님,
주일 아침 다시금 가정예배로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저희의 이 조촐한 예배가 주님께 영광이 되고 저희 가정에는 은혜와 축복이 되는 산제사가 되도록 예배의 영이신 성령으로 역사해주시옵소서.
주님,
산하가 조금씩 가을빛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여전히 코로나로 힘든 나날이지만 저희도 이 가을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생각하며 매사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시고, 오늘도 환자들을 찾아 가사 위로하시며 안수해주시옵소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가정예배조차 쉽지 않은 성도들을 기억하시며 보다 큰 믿음을 주사 그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서도 주일만큼은 꼭 지킬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특히 오랜 <코로나19>로 생업에 심각한 곤란을 겪고 있는 가정들을 긍휼히 여기사 그 기도를 응답하시고, 모든 필요를 공급하사 도리어 감사하며 자족하며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제 말씀을 상고할 때 주님의 육성을 듣게 하사 자신을 살피며 결단하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날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에게 늘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허락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11010m
렘 33:3-9
눈물의 선지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참호와 칼을 대항하여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눈물의 선지자 누굽니까? 예레미야죠. 예레미아가 왜 눈물의 선지자입니까? 예레미아는 선지자로 활동한 50년 동안 늘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며 자신의 조국인 유다의 멸망을 경고했기 때문에 당시 정치 지도자, 종교 지도자, 또 백성들이 다 그를 미워했습니다. 그를 배척하고 핍박해서 언제나 그는 신변에 위협을 느끼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했고, 또 백성들 앞에서는 늘 눈물로 조국의 패망을 예언해야 했던 그야말로 비운의 선지자, 슬픈 선지자였습니다. 유다가 멸망하고,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왕과 백성들이 다 포로로 잡혀가는 가장 비극적인 시대에 활동하며 평생을 그렇게 눈물로 기도하고, 눈물로 예언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눈물의 선지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를 더욱 슬프게 하고 가슴 아프게 한 것은 자신이 전한 그 처절한 메시지에 아무도 귀를 기울이거나 회개한 사람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의 예언대로 나라가 멸망하고 백성들이 다 노예로 잡혀갔는데, 그 참혹한 비극을 현장에서 다 지켜봤다는 것 아닙니까. 사실 오늘 이 본문도 예레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다 졸지에 잡혀 들어가 유치장에 갇혀 있을 때 임했던 계시의 말씀이었습니다. 33장 1절을 보십시오. “예레미아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본문 3절 상반절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다” 내가 네게 응답할 테니 부르짖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부르짖으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큰소리로 기도하라는 겁니까? 목이 터지도록 주여 삼창을 하라는 겁니까? 아니면 밤에 저 청계산에 올라가서 소나무라도 잡고 흔들라는 얘기입니까?
역시 예레미아가 쓴 예레미아애가 2장 18절 이하를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는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내 눈동자를 쉬게 하지 말지어다 주를 향해 두 손을 들지어다” 여러분, 이게 바로 예레미아 선지자가 밝힌 부르짖는 기도의 구체적인 내용들입니다.
첫째가 뭐라구요? 눈물을 강처럼 흘리라고 합니다. 많은 눈물로 자복하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눈물로 깊이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눈물로 기도하고, 눈물로 예언하고, 눈물로 호소했던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아가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처럼 눈물을 강처럼 흘리며 부르짖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의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신다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울면 안타까워서 안절부절 못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울며 회개하면,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울며 우리가 바라는 바를 호소하면, 지체하시지 않고 서둘러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만큼 우리의 우는 모습을 오래 두고 못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에 가장 약하십니다. 우리의 그 울음에 진정성만 담겨 있으면, 우리의 그 눈물에서 진실성 순수성만 확인이 되면, 즉각 응답하십니다. 그래서 눈물을 강처럼 흘리라고 한 겁니다.
다음으로 부르짖는 기도란 곧 쉬지 않는 기도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기도를 쉬지 못하도록 자기 스스로 부단히 자신을 관리하는 삶을 뜻합니다. 스스로 기도를 쉬게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긴 시간 기도하라는 뜻이라기보다는 꾸준히 하라, 날마다 하라, 지구력 있게 하라, 기도를 생활화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참 기도를 꾸준히 하지 못합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에 꾸준함이 생명입니다. 하다가 쉬거나 한꺼번에 몰아서 할 수도 없습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그야말로 호흡처럼 해야 합니다. 호흡은 길을 갈 때도, 잠을 잘 때도, 밥을 먹으면서도, 화장실에서도 계속 하지 않습니까. 기도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오죽하면 성경이 기도 쉬는 행위를 죄라고까지 했겠습니까.
부르짖는 기도, 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주를 향해 두 손을 들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만세를 부르라는 게 아니라, 주님 앞에서 완전히 항복 선언을 하라, 투항하라는 뜻입니다.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고 겸손하게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바라라는 겁니다. 더 이상 자신을 고집하지 말고, 자신을 내세우지 말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께 전적으로 복종할 것을 다짐하라는 뜻입니다. 자, 이게 바로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부르짖으라는 권면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이렇게 부르짖어 기도하면 내가 반드시 응답하겠다고 하신 약속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짚어보겠습니다.
우선 본문 3절 하반절입니다.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도 은밀한 일을 보이리라”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미처 나도 알지 못하고 상상하지 못한 크고도 비밀한 그 무엇을 보이시고 또 허락하시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크고도 은밀한 일이란 위대하고 기발한 일, 또 위대하고 기상천외한 일, 또 위대하고도 신비한 일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바라며 기도하는 것 이상의 놀라운 응답을 보장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기대나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는 놀랍고도 기발한 그 무엇을 허락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더 이상 길이 없고, 도저히 다른 무슨 방도가 있을 것 같지 않아도 하나님께는 얼마든지 크고도 비밀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게 무엇이든 인간적인 생각이나 계산으로 지레 포기하거나 너무 쉽게 절망하는 것은 어리석고 미련한 짓입니다. 부디 함부로 체념하거나 좌절하지 마시고 꼭 말씀대로 부르짖어 기도하셔서 하나님의 그 크고도 은밀한 기도 응답을 꼭 체험하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황폐해진 성을 치료하여 낳게 해주신다고 합니다. 본문 6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낳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면, 바벨론의 침공으로 초토화된 이 예루살렘 성을 다시 일으켜 평안이 풍성한 성읍으로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당시 유다와 예루살렘의 참혹한 모습에 대해서는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이사야 선지자가 이사야 1장에서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끝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들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들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 밭에 원두막 같이 겨우 남았도다”
어떻습니까? 사실 이게 바로 오늘 우리들의 적나라한 모습이고, 현실이고, 또 우리 사회의 극명한 실상 아닙니까? 정말 요즘은 멀쩡한 사람이 없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다 상처투성이입니다. 가정들도 그렇습니다. 그야말로 발바닥에서 머리끝까지 성한 곳이 없습니다. 다 불안불안하고 아슬아슬합니다. 겉만 그럴 듯하지 속을 들여다보면 다 위태위태합니다. 아픔 없는 사람, 피 흘리지 않는 가정이 없을 정도입니다. 나라 사정은 더합니다.
그렇다면 이 총체적인 중병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년 3월 9일이 대선인데, 차기 대통령을 잘 뽑으면 치료가 될까요? 예리미아 시대의 여러 왕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치인들이 더 심각한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누구도, 그 어떤 집단도 결코 지금 우리의 이 병든 사회와 가정과 개인을 온전케 할 수는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물에 빠진 자가 물에 빠진 자를 건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어째서요? 주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우리의 성과 우리의 병든 사회, 우리의 병든 가정과 개인을 치료하사 분명히 낫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할 수 없지만,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능히 이 병든 나라, 이 황폐해진 성을 고치사 모두가 평안하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새롭게 고쳐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도, 각 개인의 중병도 다 치료하여 낫게 하실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입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 말라기 4장 2절입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라” 역대하 7장 14절입니다. “스스로 겸비하여 부르짖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땅을 반드시 고칠지라” 그게 가정이든, 혹은 내 몸, 내 마음, 내 영혼이든 치료가 꼭 필요하고, 고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주저마시고 주님께 부르짖으십시오. 반드시 우리를 고쳐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가 주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찬송과 영광과 평안의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본문 마지막 절인 9절을 보십시오.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나와 내 집이 주님의 기쁨이 되고, 내 입에 늘 찬송이 떠나지 않고, 내 삶에서 드러나는 영광과 평안으로 인해 열방이 다 경의로워하며 두려워할 것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축복입니까.
여러분, 요즘 여러분의 삶에, 여러분의 가정에 기쁨이 있으십니까? 평안이 있으십니까? 여러분들의 입에 찬송이 있으십니까? 삶의 보람과 즐거움이 있으십니까? 오늘도, 주님이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신 이 주일날에도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서 무려 40명이 자살을 택합니다. 평균 33분에 한 명씩 자살하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한 시간 이 가정 예배를 드리는 순간에도 벌써 두 명이나 자살했습니다. 그만큼 삶이 고통스럽고, 아무런 보람도 기쁨도 희망도 없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평안이 아니라 짜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금 거울을 한번 보십시오. 모두가 살기 싫은 표정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만큼 메마르고 삭막하고 거칠고 황폐한 정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19로 그게 더 심해졌습니다. 요즘은 어떤 의미에서 사는 게 사는 게 아닙니다. 다 울화가 머리끝까지 차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폭발할지 모르는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 같습니다. 그러니 이런 심령 상태와 삶에 무슨 기쁨이 있고, 무슨 보람이 있고, 찬송이 있고 평안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분명히 길이 있고, 수습하고 회복할 수 있는 방도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라구요? 기도라는 겁니다. 건성으로 형식으로 요식으로 하는 기도 말고, 그야말로 부르짖는 기도, 눈물을 강물처럼 흘리며 자복하고, 밤낮으로 쉬지 않고 삶으로 기도하고, 또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께 온전히 투항하며 항복하며 부르짖으라는 겁니다. 그게 바로 눈물의 선지자인 예레미아가 오늘 우리에게 호소하는 믿음의 해법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사, 우리 마음에 큰 기쁨과 보람을 안겨주시고, 또 입의 찬송과 웃음을 회복시켜 주시고, 또 삶의 평안과 즐거움을 부어주신다고 합니다.
부디 이 가을에 모두가 하나님께 힘껏 부르짖으셔서 약속하신 이 모든 은혜를 실제 체험하시는 가장 복된 성도, 가장 복된 주의 가정들이 다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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