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인내에 관하여

종이 책만 읽다 처음에는 많이 낯설기도 하고 쉽게 적응이 안 돼 불편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e북 보는 재미가 꽤나 쏠쏠합니다. 아직도 컴퓨터 자판보다는 연필로 쓰고 있는 저랑은 절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는데 이젠 갈수록 편리하고, 무엇보다 사지 않고 저렴하게 대여할 수도 있다는 게 제게는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엔 프랑스 출신의 작가이자 여행가인 <실뱅 테송>의 <눈표범>(북레시피)을 봤습니다.
작가가 다큐멘터리 감독인 마리, 동물 사진작가인 뮈니에, 철학자인 레오와 함께 해발 5천 미터의 티벳 고원지대에서 영하 30도 이하의 강추위를 견디며 눈표범을 찾아나서는 얘긴데, 책의 내용은 단순한 문장으로도 요약될 수 있지만 책에 담긴 울림과 메시지는 결코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큰 줄거리는 <눈표범>을 찾아가는 여정이지만 그 과정에서 미술과 음악과 노자의 도덕경이 인용되기도 하고, 곳곳에서 자연과 인간에 대한 심오한 성찰과 철학이 묻어나기도 합니다.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종인 <눈표범>을 쫓는 외롭고도 험난한 여정은 그야말로 인내의 연속입니다. 단 한 컷의 사진을 위해 몇 날 며칠을 숨소리조차 죽여 가며 기다려야 하는데,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그 희귀동물이 경계를 풀고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인내야말로 가장 겸손한 믿음이다>, <경건한 기도다>라고 표현합니다. 
<눈표범>을 만나기 위한 그 고된 여정이 단순한 모험이 아니라 고도의 인내를 요하는  일종의 <구도>이며 <순례자의 여정>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눈표범>이라는 <목적지>에도 불구하고 목적 그 자체보다는 그 목표를 향해 가는 인내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곧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처럼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인내심이야말로 가장 우아하면서도 가장 망각하기 쉬운 최고의 덕목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인내심은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 전에 먼저  가냘픈 이파리의 미세한 떨림 앞에서도 가만히 앉아 그 미덕을 오래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인내심은 주어진 상황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다. 그림 한 폭을 그리는 것, 소나타 한 곡을 창작하는 것, 혹은 시 한 편을 쓴다는 것은 대체 우리에게 어떤 속성을 허락해줄까? 바로 인내심이다. 인내심은 똑같은 파동 안에서도 시간을 길게 여길 위험과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방법을 동시에 제공하면서 항상 우리로 하여금 보상을 얻게 해준다. 
인내는 일종의 기도여서 반드시 어떤 응답이든 오게 되어 있다. 만일 아무것도 받은 게 없다면, 그건 다만 우리가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일 뿐이다.>
 
고대 인류에게는 인내심이 필수였습니다. 
사냥을 위해서는 며칠이라도 숨 죽여 기다려야 했으니까요. 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인류를 인내심에서 점점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효율성이 가장 중요시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인내가 오히려 철지난 가치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실제 우리는 지금 시간을 분, 초 단위로 쪼개며 숨 가쁘게 살아갑니다. 하던 일을 잠시 쉬는 동안에도 절대 가만있지를 못하고 휴대폰을 꺼내듭니다. 이처럼 고대 인류에게는 필수였던 인내심이라는 원초적 덕목이 이 시대 우리에게는 희귀한 미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책의 저자 <실뱅 테송>은 <눈표범>을 기다리는 과정 속에서 그 <인내>라는 소중한 미학에 한 발 더 다가가며 눈처럼 깨끗하고도 시린 행복을 보상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어거스틴은 <인내를 지혜의 동반자>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야말로 진정 인내할 줄 안다는 뜻입니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너무 어둡고 긴 터널이라 절망감을 느끼게도 하지만 오히려 이참에 인내심을 배웁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기다림의 미학인 인내심일지도 모릅니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했던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신분을 팔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인내하지 못함이 부른 일생일대의 비극이었습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의 간곡한 당부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약 5: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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