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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2011년 8월 7일 주일오후예배</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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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본문: 왕상 18:41-46</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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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제목: 빗속의 질주</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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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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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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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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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여러분, 마차와 사람이 경주하면 마차가 이깁니다. 그런데 본문의 엘리야와 아합의 경주는 마차를 탄 아합보다 엘리야가 더 빨랐습니다.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갈멜산에서 이스르엘까지는 21km입니다. 더구나 장대비가 쏟아지는데 그 빗속을 뚫고 엘리야가 마차 앞에서 질주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그렇습니다. 무려 3년 반 동안이나 비 한 방울 오지 않던 땅에 엘리야가 기도하니 장대비가 내리는 겁니다. 그래서 신이 나서 달리고 있는 겁니다. 지금으로부터 2800년 전 오직 하늘만 쳐다보고 살던 때 무려 3년 반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다가 엘리야가 기도하니 장대비가 쏟아졌으니 얼마나 그 감격이 컸겠습니까?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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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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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엘리야는 어떻게 기도해서 그런 응답을 받았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엘리야처럼 장대비속을 달리는 감격을 누릴 수 있습니까? 엘리야는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두루뭉술하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의 기도의 특징이 그렇습니다. 이번에도 그는 비를 내려달라고 했습니다. 본문 앞에는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맞장 뜬 얘기가 나옵니다. 거기서는 엘리야가 불을 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18장 38절입니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이어지는 39절 말씀은 이렇습니다.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이렇게 엘리야는 비를 내려 주십시오, 불을 내려 주십시오 하며 기도했습니다. 자기의 필요를 콕 집어 기도한 겁니다. 우리는 기도 내용부터 어정쩡합니다. 무엇을 달라는 것인지 불분명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횡성수설하지 말라,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게 뭔지 모릅니다. 그래서 기도도 애매하게 합니다. 기도가 확실해야 응답이 확실합니다. 기도가 애매하면 응답도 애매합니다. 엘리야의 기도에서 우리는 정확한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그런 기도가 힘이 있습니다. 기도원에 가면 세계를 내게 주십시오, 이 나라를 내게 주십시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다 허세입니다. 세계와 나라를 준다 해도 감당할 능력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심에도 우리에게 기도를 먼저 하게 하시는 이유는 거저 주시면 그게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기나 햇빛에 감사하지 않는 이유는 너무 소중하고 꼭 필요하기에 하나님이 알아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거저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에 대해 응답하십니다. 알아서 다 해 주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우리에게 먼저 기도하게 하신 후에 주시는 것은 영적인 법칙입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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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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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엘리야는 간절히 구했습니다.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7절 말씀입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엘리야가 그렇게 간절히 기도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 면전에서 사는 사람이면 그냥 비를 주십시오 해도 비를 주실텐데, 엘리야는 처절하리만치 기도했습니다. 굳이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갑니다. 보통 유대인들은 서서 두 손을 들고 기도하는데, 엘리야는 무릎을 꿇고 그 양 무릎 사이에 머리를 박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가 엘리야의 가도를 간절한 기도로 묘사하는 겁니다. 우리는 땅을 파고 땅에다 머리를 심듯이 기도해야 할 겁니다. 기도는 입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기도는 언어가 아니라 엘리야처럼 통곡으로 하는 겁니다. 기도는 도저히 혀로 못 합니다. 온 몸으로 하는 겁니다. 자기 전 존재로 하는 겁니다. 이런 기도가 상달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에 비해 우리의 기도는 너무도 형식적입니다. 위대한 선지자도 이렇게 온 몸으로 처절하게 기도했고, 주님도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간절한 기도가 주님의 심금을 울립니다. 세 치 혀로 하지 마십시오. 온 몸으로 하셔야합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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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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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엘리야는 확신을 갖고 기도했습니다. 41절입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이것은 사실 기도하기도 전인데 엘리야는 벌써 큰 빗소리를 듣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진수입니다. 이게 믿음의 진수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기도가 바라는 것의 실상입니다. 종달새 알에서 종달새 소리를 듣는 게 믿음입니다. 비를 주십시오 하면서 이미 빗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불을 내려 주십시오 하면서 불이 내려오는 소리를 듣는 겁니다. 기도할 때 이미 환상을 봐야 합니다. 우리는 확신으로 기도합니까? 불신으로 기도합니까? 여기서부터 우리는 틀렸습니다. 우리는 불신으로 기도합니다. 우리는 이미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기도합니다. 왜냐면 마귀가 기도하려는 우리에게 연막을 치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좌절케 하고 포기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기도하면서 이미 빗소리를 듣고, 환상을 봐야 하는데 우리는 그게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대로 안 되는 겁니다. 자주 말씀드리듯이 선제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비를 내려 달라는 내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실 줄 믿고 감사를 드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확신이 넘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엘리야의 기도가 바로 이런 기도였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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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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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엘리야의 기도는 응답 받기까지 드리는 기도입니다. 43절 입니다.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는 것은 내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일곱 번째 보니 바다 위에 손바닥만한 구름이 뜨고 그게 커져 장대비가 내린 겁니다. 기도의 시한은 응답 받을 때까지 입니다. 내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이 같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시간에 하나님을 굴복시키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내 시간을 맞춰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는 인내와의 한 판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예정하신 시간이 가장 이상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조건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부디 일곱 번까지 기도하십시오. 응답될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엘리야는 그렇게 기도해서 승리했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도전과 깨달음을 얻으십시오. 엘리야를 기도의 모델로 삼으십시오. 그래서 여러분도 이 여름에 빗속을 달리며 감사하고 감격하는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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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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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ubbtLk4smvo$</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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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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