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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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한가위 보름달이 휘영청 차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분위기는 여전히 조심스럽고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데도 착 가라앉은 느낌입니다.
아예 귀성을 막은 건 아니지만 올 추석 역시 언택트 명절이 될 게 뻔하고, <위드 코로나>의 새 규범을 가늠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다들 조금은 긴장한 눈치입니다.
사실 추석이나 설날 같은 우리네 전통 명절은 언제나 집안 가득 풍기는 고소한 기름 냄새와 함께 왔습니다. 명절 준비의 8할은 전 부치는 일이라 할 만큼 부침개의 비중이 큰 게 우리의 명절 분위기지만 요즘은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다 사다 먹거나 사서 젯상에 올립니다.
명절 음식은 그런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거의 잊고 지내다 설이나 추석 즈음이 되면 꼭 그 맛과 냄새가 떠오르며 전 생각이 나게 한다는 겁니다. 또 명절 음식은 당일 한 상 차려놓고 먹을 때보다도 하루 전날 지글지글 프라이팬에서 굽자마자 후후 불며 먹어야 제 맛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이젠 그런 풍경도 다 옛 추억이 되고 말았습니다.
각종 재료를 사다 다듬고 씻고 부침가루에 개고 기름 냄새를 맡아가며 몇 시간씩 서서 혹은 쪼그리고 앉아 전 부치는 일이 끔찍해 요즘은 다 재래시장이나 동네 반찬가게에서 사다 쓰는 게 당연시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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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경상도에서는 명절 때 꼭 배추전을 부쳤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배추전 없는 명절상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주로 마당 가장자리에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불을 지피며 생배춧잎을 몇 장씩 펴 부쳤기에 거칠기도 했지만 크기도 멍석만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비주얼로 따지면 배추전 만큼 남루하고 초라하고 사진빨 안 받는 음식도 없을 겁니다. 따라서 다진 고기나 해물전 등에 익숙한 서울 사람들에게는 취향에도 안 맞고, 누가 권해서 한 닢 먹어 본 경우도 밍밍한게 역시 니 맛도 내 맛도 아니라는 표정입니다.
그러나 영남 지방에서는 배추전 없으면 더 이상 명절상도, 잔칫상도, 젯상도 없습니다.
거기서는 전이란 곧 배추전을 뜻하고, 배추전은 곧 모든 전의 대명사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네 전통 상차림에서 식어도 맛 나는 음식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그런데 배추전은 식었을 때도 결대로 찢어 초간장이나 달래 간장에 찍어먹는 맛이 일품입니다.
또 세상에서 가장 부치기 쉬운 게 배추전이고, 따뜻하면 따뜻한 대로, 식으면 식은 대로 언제 먹어도 물리지 않는 게 배추전입니다.
아삭한 식감을 좋아하면 생배추로, 부드러운 식감을 원하면 한 풀 숨이 죽은 배추나 아예 절임배추로 부치면 좋고, 봄동으로 부치거나 고춧가루를 넣지 않은 백김치로 부쳐도 그만입니다.
지금도 권 권사님은 추도식이나 명절 때 알배기 배추전 만큼은 꼭 부치십니다.
덜큰한 배추 맛과 고소한 기름 맛이 어우러진 배추전 한 점을 입에 넣어야 비로소 명절을 실감했던 옛 시절의 추석 정취, 그러나 지금은 하루하루가 예측할 수 없는 혼란스런 일상인데다 여기저기서 참으로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코로나 시대 추석맞이 2년차입니다.
더구나 올해는 강원도 고랭지 배추가 가을장마에 다 녹아 농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또 식당, 학교 급식, 추석 대목 수요까지 큰 폭으로 줄어 가격마저 폭락한 상황이라 배추 농가들이 다 파산 지경에 처했다니 안타깝기가 그지없습니다.
그럼에도 올 추석에는 눈이 시리도록 밝고 환한 보름달을 쳐다보며 모두 한바탕 크게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처럼 마스크 안에 숨긴 미소가 아니라 서로서로 얼굴을 다 드러내고 마음껏 웃는 그런 명절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고향은 못가도 촉촉하고, 담백하고, 깔끔한 배추전에 한번 도전해보시는 것도 시름에 빠진 농가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모쪼록 주 안에서 전처럼 고소하고 복된 명절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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