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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2011년 8월 7일 주일낮예배</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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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본문: 마 24:3-18</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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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제목: 종말의 징조</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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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7]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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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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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요즘 이단들이 극성입니다. 전에는 그들이 숨어서 암약했는데, 요즘은 전략을 바꾸었습니다. 노골적이고 공격적입니다. 목사를 찾아옵니다. 목사 앞으로 문서도 보내고 필름 같은 것도 보냅니다. 예배 시간에 맞춰 교회도 방문해서 포교합니다. 교회 홈페이지에 자신들의 주장이나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합니다. 과거 어느 때보다 기성교회들의 이단들에 대한 경계수위가 높아졌습니다. 우리 총회도 위기의식을 갖고 8월 첫 주일을 이단경계주일로 지키기로 했습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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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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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그런데 갈수록 이단과 사이비가 극성을 부리는 현상은 이미 예견된 것이고 또 대표적인 종말현상으로 성경이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새삼스러운 게 아닙니다. 우리는 지난 2000년간 종말 얘기를 들어왔기에 종말 불감증에 걸리고 내성이 생겨서 그렇지 성경은 여러 가지로 종말현상을 말씀하면서 지금도 우리를 깨우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종말현상 중에서 특히 적그리스도의 출현은 종말 말기에 나타날 대표적인 현상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시대의 징조를 잘 읽어야 합니다. 종말의식이 예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낭패를 봅니다. 신앙생활에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맹목적으로 살면 안 됩니다. 누가복음 10장 38절 이하를 보면 어느 날 주님이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 집을 방문합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주님을 대접하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녔고, 마리아는 주님 발치에 앉아 꼼짝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만 들었습니다.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마리아가 마르다 때문에 성이 났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뜻밖입니다.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했다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일하는 것보다 말씀 듣는 게 더 낫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주님이 마리아의 편을 드신 것은 그녀의 때에 대한 감수성을 평가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당시 주님의 방문은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위한 방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방문은 일상적인 게 아니라 최후의 방문입니다. 그런데도 마르다는 그저 또 한 번의 방문쯤으로 알고 대접하기 바빴던 것이고 마리아는 주님의 방문의 의미를 눈치 챘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차이는 영성의 차이입니다. 마리아의 영성은 투명했기에 그때가 어느 때인지 알아차린 겁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때를 분별하는 감각이 없었습니다. 영성이 탁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그 방문이 늘 그랬듯이 또 한 번의 방문쯤으로 여긴 겁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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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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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24장 32절 이하를 보면 이렇습니다.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시대의 징후를 보고 때를 분별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마리아처럼 시대를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때를 분별할 줄 아는 종말론적 영성을 지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깨어 근신해야 하고, 우리의 영성을 늘 맑고 투명하게 해야 합니다. 영적 감각이 무뎌지면 시대에 대한 분별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부디 이 시대의 징후들을 놓치거나 허투루 보지 마시고, 그것이 무엇을 계시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십시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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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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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어느 날 감람산에서 제자들이 주님께 조용히 물었습니다. 본문 3절 하반절입니다.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주님은 여러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6절 이하입니다.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2절을 보면 불법이 성할 것이라고 합니다. 가장 많이 언급하신 종말의 징후는 4절 이하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11절입니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5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23절 이하입니다.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6]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주님이 종말의 징조 가운데 가장 많이 말씀하신 게 사이비 이단에 관한 것입니다. 사탄이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기에 마지막 날에는 하수인을 더 풀어서 최후의 발악을 한다는 겁니다. 믿는 자들도 가능하면 미혹해서 실패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말세에는 사탄이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단들의 호전적인 모습들은 예언의 성취입니다. 적그리스도가 마지막 날에 출현해서 혼란을 조장하고, 재림 예수가 여기에 있다고 하면서 많은 사람을 미혹하면 그때가 바로 종말의 말기인 줄 알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 말씀의 요지입니다. 심지어는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문 앞에까지 이른 줄 알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여러 가지 종말의 징후가 있을 수 있으나 적그리스도의 집중적 출현이 가장 확실한 종말 말기 현상이라는 사실을 본문을 통해 확인하십시다. 특히 15절을 다시 봅니다.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이 말씀은 구약 다니엘서 9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것을 주님이 인용하신 것입니다. 다니엘서 9장의 말씀은 주전 167년에 있었던 사건을 예언한 것입니다. 수리아의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예루살렘 성전에 희랍의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유대인에게 예배를 강요했습니다. 굉장한 환난의 바람이 불었는데, 바로 이 사건에 대한 예언이 구약 다니엘서 9장에 나오는 겁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예루살렘 성전에 섰던 사건’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종말에도 이런 사건이 발생한다는 겁니다. 멸망 받아 마땅한 가증한 우상이 주님께 바쳐야 할 예배를 가로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이단이 100개 정도 된다고 하고, 약 100만 명 정도가 이단에 빠져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입된 이단 말고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이단이 약 50개 정도 되는데, 그중에서 40개 이상이 지난 1990년대 이후에 생겼다는 겁니다. 최근에 신종 자생 이단이 많이 생긴 겁니다. 최근에 부쩍 이단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최근에 부쩍 이단들이 공세로 나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시대의 기상도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그만큼 박두했다는 뜻이요 세상 종말이 그만큼 가까웠다는 얘깁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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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이런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이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16절입니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유대 지방의 산은 시온산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시온산입니다. 그 시온산으로 도망하라는 것입니다. 종말의 도피처는 시온산입니다. 이 말씀은 더욱 성전을 중심으로 살라는 뜻입니다. 교회 중심의 삶을 극대화하라는 뜻입니다. 교회를 더욱 철저히 자기 삶의 구심 공간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종말의 때에 우리가 피할 곳은 오직 한 곳 시온산입니다. 우리가 숨어야 할 도피성, 구원의 방주는 교회입니다. 달아날 생각 하지 말고 시온산으로 도피하십시오. 아무리 좁고 갑갑하고 냄새나고 시끄러워도 교회가 방주이고 도피성이지 세상은 그 어디에서도 우리의 구원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자고로 마지막 시대에는 산으로 도피해야 합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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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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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그리고 17절입니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라고 했습니다. 유대인 가옥의 구조는 지붕이 평평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루 세 번씩 기도합니다. 원칙상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기도해야 하나,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하기에 자기 집 지붕에 올라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지붕이 기도처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9절입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시더라.”종말 말기에는 더욱 기도에 정진하라는 것입니다. 집안의 물건에 연연해 기도를 포기하지 말라는 겁니다. 기도처를 떠나지 말라는 당부입니다. 우리가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집안의 소유 때문입니다. 적어도 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집안의 물건 때문에 기도하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더욱 기도생활에 정진하십시오. 이것이 마지막 때를 사는 성도들의 기본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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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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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마지막으로 18절입니다.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내게 주신 소명에 충실하라는 겁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종말의 때입니다. 그러니 더욱 겉옷에 미련을 갖지 말고 주어진 과제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겉옷은 유대인들의 개인재산목록 제1호입니다. 낮에는 겉옷이나 밤에는 꼭 필요한 이불입니다. 그런데 그 겉옷 조차도 미련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하던 일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성인 소알 만을 향해 열심히 뛰어야 하는데, 그런데 롯의 아내가 견딜 수 없는 미련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를 뒤돌아보는 순간 소금 기둥으로 변했습니다. 주님이 일러주신 마지막 시대의 삶의 방식과 지혜가 우리에게 큰 깨달음이 되고 이단들에 대한 경계의 메시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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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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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e2vjLbsYrzs$</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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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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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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