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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210725m] 책임적인 신자 (롬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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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a href="http://thegreen.or.kr/./files/attach/images/59/326/059/ad8910544a928f3d2f33d886ae8c4291.jpg" class="image-placeholder">0725.jpg</a></p>

<!-- paragraph:p0002 -->
<p> </p>

<!-- paragraph:p0003 -->
<p class="p1"><span><strong>가정예배 기도문</strong></span></p>

<!-- paragraph:p0004 -->
<p> </p>

<!-- paragraph:p0005 -->
<p> </p>

<!-- paragraph:p0006 -->
<p class="p1"><span><span>주님, 오늘도 이렇게 가정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며 주님을 뵙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07 -->
<p class="p1"><span><span>확진자들이 줄기는커녕 연일 크게 더 늘고 있어서 걱정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08 -->
<p class="p1"><span>모쪼록 저희의 이 비대면 가정예배를 긍휼히 여기사 한 주라도 빨리 현장예배로 복귀하여 교회에서 주일을 지키고 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span></p>

<!-- paragraph:p0009 -->
<p class="p1"><span>연일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사오니 저희의 건강을 지키시고, 신변의 안전을 책임져 주시옵소서.</span></p>

<!-- paragraph:p0010 -->
<p class="p1"><span>&lt;코로나19&gt;로부터 가족들을 보호해 주시고, 착실히 백신 접종에 임해 가족 중 누구도 확진되는 일이 없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span></p>

<!-- paragraph:p0011 -->
<p class="p1"><span>환자들을 안수해 주시고, 이런저런 사정과 아픔으로 고통하며 힘들어 하는 개인과 가정들의 사정을 살피사 주님이 다 수습하시고, 해결하시고, 또 위로해 주시옵소서.</span></p>

<!-- paragraph:p0012 -->
<p class="p1"><span>자녀들을 격려하시며, 가정예배를 드리는 일조차도 여의치 않은 성도들을 기억하사 그 사정을 헤아려 주시고, 언제 어디서나 주일을 지킬 수 있는 큰 믿음과 결단을 허락해 주시옵소서.</span></p>

<!-- paragraph:p0013 -->
<p class="p1"><span>이 시간도 말씀을 통해 주님의 육성을 듣게 하시고, 또 자신의 사정을 정직하게 고하며 기도하게 하사 주님 주시는 확신과 참 평안과 비전을 보게 해주시옵소서.</span></p>

<!-- paragraph:p0014 -->
<p class="p1"><span>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span></p>

<!-- paragraph:p0015 -->
<p> </p>

<!-- paragraph:p0016 -->
<p> </p>

<!-- paragraph:p0017 -->
<p> </p>

<!-- paragraph:p0018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EH-jS8XwQe0" title="미디어 원본"></a></span>

<!-- paragraph:p0019 -->
<p> </p>

<!-- paragraph:p0020 -->
<p> </p>

<!-- paragraph:p0021 -->
<p> </p>

<!-- paragraph:p0022 -->
<p class="p1"><span>20210725m</span></p>

<!-- paragraph:p0023 -->
<p class="p1"><span>롬 2:1</span></p>

<!-- paragraph:p0024 -->
<p class="p1"><span>책임적인 신자</span></p>

<!-- paragraph:p0025 -->
<p> </p>

<!-- paragraph:p0026 -->
<p> </p>

<!-- paragraph:p0027 -->
<p class="p1"><span><span>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하리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28 -->
<p> </p>

<!-- paragraph:p0029 -->
<p class="p1"><span><span>지난 해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3079명이었는데, 이게 통계 집계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수치였다고 합니다. 2015년에는 4621명, 2016년에는 4292명, 이렇게 해서 매년 조금씩 줄다가 드디어 작년에는 3079명까지 떨어져서 최저 기록을 세웠다는 것인데요. 그래도 참 엄청난 숫자입니다. 한 해</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3000명이 넘는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이것이 다 누구의 책임일까요? 자동차를 만들어 판 현대나 기아의 책임입니까? 정몽구 회장의 책임입니까? 외제 자동차를 들여오는 수입업자의 책임입니까? 아니면 최초로 자동차를 발명한 칼 벤츠나 미국의 포드 책임입니까?</span></span></p>

<!-- paragraph:p0030 -->
<p> </p>

<!-- paragraph:p0031 -->
<p class="p1"><span><span>우리는 늘 이런 식으로 자기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지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 줄 알면서도 그 금단의 열매를 만들어 그들을 죄에 빠뜨렸으니까, 인간 타락의 진정한 책임은 하나님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범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고약한 습성입니다. 핑계대고 남 탓하고 변명하면서 끝까지 자기 책임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너는 왜 내가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먹었느냐고 하셨을 때, 아담이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제게 주신 여자가 꼬셔서 먹었다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지요? 일단 범죄의 책임을 여자에게 떠넘기면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탓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여자를 주시지 않았다면 괜찮았을 텐데, 괜히 제게 여자를 주신 바람에 이 사단이 벌어진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께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 뜻 아닙니까? 그런 얘기입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인간의 아주 못된 생리입니다. 전혀 변명이나 무슨 핑계의 여지가 있을 것 같지 않은데도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인간은 책임전가의 명수들이고, 오리발의 귀재들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32 -->
<p> </p>

<!-- paragraph:p0033 -->
<p class="p1"><span><span>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볼 주제도 바로 그런 책임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창조하셨지요. 그럼에도 그들이 타락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실패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요? 이스라엘은 어떤 민족이었습니까? 하나님의 택하신 선민들이었지요. 그럼에도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범죄했습니다 하나님께는 결코 실패가 있을 수 없다는 게 우리의 상식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도 12사도 가운데 하나인 가룟유다도 다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님의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실패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책임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떨치지 못 하는 게 바로 오늘 우리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들의 정서 속에는 그런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없잖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요?</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34 -->
<p> </p>

<!-- paragraph:p0035 -->
<p class="p1"><span><span>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실패와 타락은 전적으로 우리의 책임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책임, 구원의 주체는 분명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내 삶의 책임, 내 삶의 주체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일방적이고 주권적인 은혜로, 선물로 이루어주신 것이지만, 내 삶은 어디까지나 나의 자유의지 하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내가 책임져야 합니다. 실패든 성공이든 그것은 다 내 소관입니다. 물론 지금도 주님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고, 보혜사 성령께서 부단히 나를 격려하시며 내게 힘도 실어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내 결단을 돕고 계신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분들이 내 삶을 대신 살아주시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법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자유의지를 가진 책임적인 주체가 아니라, 허수아비나 꼭두각시에 불과하고, 로보트와도 전혀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그렇게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어디까지나 책임적인 주체로, 기계적인 종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아들로 창조하셨습니다. 대신에 우리는 자신의 모든 결정과 삶의 내용, 타락과 범죄에 대한 일체의 책임 앞에 홀로 서야 합니다. 그게 바로 책임적인 존재고 책임적인 주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자유, 심지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반역할 수 있는 자유까지도 주셨지만, 대신 그 모든 선택에 대한 엄정한 책임을 물으십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이게 오늘 우리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걸 자꾸만 거꾸로 생각합니다. 구원은 내가 믿어서 얻었으니 이제 내 삶은 주님의 몫이다. 내 안에 계신 성령의 몫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툭 하면 내 삶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고, 자기가 죄를 짓고도 주님을 탓하며 왜 내가 실패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셨느냐며 원망합니다. 맞습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은 절대 나를 그냥 지켜만 보고 계시지 않습니다. 힘도 주시고 동기부여도 하시고 격려도 하시고 또 용기를 불어넣어 주십니다. 그러나 어떤 일을 내 대신 해주시는 법은 없습니다. 그것은 끝까지 내가 해야 하고, 따라서 내가 책임져야 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36 -->
<p> </p>

<!-- paragraph:p0037 -->
<p class="p1"><span><span>신앙 생활, 교회 생활을 하다가 실패하시는 분들있지요? 요즘은 그런 분들이 훨씬 더 많아졌습니다 .그것 다 본인 책임입니다. 교회 때문도 아니고 목사 책임도 아니고 코로나 탓도 아닙니다. 그런 분들이 꼭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핑계거리가 훨씬 더 많아졌습니다. 누가 어떻다, 뭐가 어떻다고 하며 부지런히 남을 끌어 들이고, 교회를 탓하고 세월을 핑계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자신의 불신앙과 무책임을 합리화하는 비겁한 변명일뿐, 주님 앞에서는 다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게 성경의 가르침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38 -->
<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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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 paragraph:p0040 -->
<p class="p1"><span><span>제가 신학교에 있을 때 학생들에게 과제물을 내주면, 그 과목의 수강생이 몇 명이든 원본은 언제나 하나고 나머지는 다 사본들입니다. 한 학생이 원본을 작성하면 돌아가면서 문장을 조금씩 바꿔가며 그것을 다 베끼는 겁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또 마감도 제대로 지키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고는 나중에 찾아와서 온갖 병명을 다 늘어놓습니다. 교회에 기도회가 있었다, 기도원을 다녀왔다, 여름 수련회를 갔다 왔다, 무슨 교회학교 교사 수련회가 있었다. 공부하는 학생이 그게 말이 됩니까? 성경은 언제나 핑계를 경계합니다. </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41 -->
<p> </p>

<!-- paragraph:p0042 -->
<p class="p1"><span><span>오늘 본문 로마서 2장 1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누구를 막론하고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그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라. 어떻습니까? 훗날 주님 앞에 가서도 남을 핑계대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실 겁니까? 그때도 그런 변명과 핑계가 통할 것 같습니까? 우리는 하나에서 열까지를 다 말로 떼우려고 하고, 남을 탓하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그 순간을 모면하려고 합니다. 전에 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때 발생한 테러 사건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제가 절대 남을 탓할 수 없는 이유는 언제나 대통령인 제게 최종적인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멋 있습니까? 근데 사실은 일국의 대통령뿐 아니라 오늘 우리도 다 주님 앞에서 그런 최종적인 책임자들입니다. 우리 각자가 다 자신의 삶과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적 존재들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43 -->
<p> </p>

<!-- paragraph:p0044 -->
<p class="p1"><span><span>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에게 받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던 종이 주인에게 뭐라고 했지요? 주인이여, 나는 당신이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무서운 사람인 줄 알고 두려워서 이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두었나이다. 보소서. 여기 한 달란트가 그대로 있나이다. 이게 바로 악하고 게으른 종의 비겁한 변명입니다. 자신의 불충과 무책임을 합리화하기 위해 주인을 걸고 넘어진 겁니다. 주인을 심지도 않고 거두고, 뿌리지도 않고 모으는 깡패로, 조폭으로 매도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 한 것입니다. 결국 그 종은 어두운 바깥에 내어 쫓기지 않습니까.</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45 -->
<p> </p>

<!-- paragraph:p0046 -->
<p class="p1"><span><span>다윗이 어느 날 밧세바를 범합니다. 그리고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야 장군 마저도 최전방에 내보내서 고의로 전사하게 합니다. 그리고 밧세바를 합법적으로 차지합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십니다. 나단이 다윗을 찾아가서 뭐라고 했습니까? 어떤 가난한 사람이 양 한 마리를 가졌는데, 어느 날 많은 양떼와 소떼를 거느린 부자가 자기 집에 손님이 오자, 이웃에 있는 그 가난한 사람의 양 한 마리를 빼앗아 자기 집에 온 손님을 대접했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다윗이 흥분하며 세상에 그런 악당이 있단 말인가? 그 나쁜 놈을 당장 잡아다가 엄벌에 처하고 율법에 따라 그 빼앗은 양의 4배를 갚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나단이 뭐라고 합니까? 그 흉악한 날 강도가 바로 당신이요 했습니다. 다윗은 그 충격적인 지적에 눈이 짓무르도록 울며 회개했습니다. 그 어떤 핑계도 변명도 대지 않고 눈물로 자기 침상의 매트가 다 썩도록 회개했습니다. 통회했습니다. 믿음으로 살고 복음을 따라 사는 사람은 자신의 실패나 죄악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시인하고 회개하며 사는 사람이지, 끝까지 우기고 정당화하고 핑계를 대며 자기의 책임을 남에게, 주님께 떠넘기는 사람이 아닙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47 -->
<p> </p>

<!-- paragraph:p0048 -->
<p class="p1"><span><span>주님을 보십시오. 어느 안식일 날 회당에서 한쪽 손이 불구인 장애인 한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원래 안식일에는 아픈 사람이나 장애인을 고치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일종의 노동이기 때문에 율법으로 금한 겁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지금 유대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서 기어이 그 일을 결행하십니다. 마가복음 3장을 보면, 그때부터 유대인들이 주님을 죽이기 위한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실 오늘 우리로서는 당시 주님이 안식일 날 그 장애인을 고쳐주시면서 실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그 사건이 바로 주님 죽음의 최초의 동기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고, 주님 역시도 거기에 따르는 모든 책임을 홀로 짊어지시겠다는 듯이 그 일을 숨어서 하시지 않고 백일하에 드러내놓고 행하십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이미 안식일 날 그 장애인을 고치다가 어쩌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그 어떤 책임도 회피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신 겁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49 -->
<p> </p>

<!-- paragraph:p0050 -->
<p class="p1"><span><span>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째서 주님처럼 그렇게 책임적으로 살지 못 할까요? 왜 말씀대로 믿음대로 사랑을 실천하며 남을 돕고 사는 일에 용감하지 못하고 언제나 비겁할까요? 결국 사랑이나 믿음을 내세우면 필연적으로 나의 뭔가가 희생되기 때문에, 희생에 따른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소극적이고 피동적이고 비굴하고 무책임하고 그저 핑계대고 변명하고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또 마지막에는 결국 주님까지도 탓하며 원망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51 -->
<p> </p>

<!-- paragraph:p0052 -->
<p class="p1"><span><span>여러분, 신구약 성경에 나오는 어떤 인물도 다 성자는 아니었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그 숱한 믿음의 선진들, 신약에 나오는 그 수많은 믿음의 선각들, 그들은 물론 놀랍도록 위대한 면도 있었지만, 또 우리와 똑같은 인간적인 한계와 모순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한 가지, 부름 받고 택함받은 하나님의 사람들로서의 책임의식 만큼은 누구보다도 투철했습니다. 구약의 노아를 보십시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모세를 보십시오. 엘리야를 보십시오. 신약의 바울을 보십시오. 모두 위대한 책임적 주체들 아니었습니까?</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53 -->
<p> </p>

<!-- paragraph:p0054 -->
<p class="p1"><span><span>부디 우리도 좀 더 책임적으로 삽시다. 좀 더 책임적으로 신앙생활을 합시다. 올해 우리에게는 참으로 많은 핑계거리가 있습니다. 코로나19를 비롯해서 변명거리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를 다집시다. 그게 바로 주님이 바라시고, 주님이 모범을 보이신 책임적 존재고, 책임적 주체고, 책임적인 신자의 참 모습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55 -->
<p> </p>

<!-- paragraph:p0056 -->
<p class="p1"><span>주님은 자기를 죽이겠다는 위협에도 굴하지 않으시고 기어이 사랑을 결행하셨고, 또 거기에 따른 모든 책임을 끝까지 홀로 지심으로 오늘 우리 모두의 영원한 귀감이 되셨습니다. 올해 우리도 그렇게 남 핑계 대지 않고, 코로나19로 내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삶과 믿음, 심지어는 아픔과 실패까지도 다 자신이 그 책임을 지는 보다 성숙한 신자로 거듭나는 은혜가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span></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