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8m] 미쁘신 하나님 (요일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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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기도문
주님, 저희들 주일 아침 교회가 아니라 다시 이렇게 가정에서 주일예배를 드립니다.
이 조촐한 예배를 축복하사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도와주시옵소서.
백신접종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이제 더는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사오나 또 다시 가정예배로 돌아왔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고, 여전히 위험천만한 세상살이에 늘 불안해하는 저희의 삶을 주님 친히 지키시고 도우사 부디 안전하고 건강하고 복되게 하시옵소서.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하나 되어 이 <코로나19> 상황을 하루 속히 극복할 수 있게 하사 사회와 교회가 정상화되고 나라가 바로 설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오늘도 환자들을 찾아 가사 안수해 주시옵소서.
힘들고 어려운 사정으로 고통하는 가정들도 위로하시고 격려해 주시옵소서.
가정예배 마저도 어려운 성도들을 기억하사 그 사정을 헤아려 주시고, 언제 어디서나 주일을 지킬 수 있는 환경과 믿음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말씀을 통해 주님의 육성을 듣게 하시고, 진솔하게 자신의 사정을 고하며 기도할 때 주님 주시는 확신과 참 평안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10718m
요일 1:8-10
미쁘신 하나님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여러분도 제가 죄 이야기를 하면 별로지요?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믿는 사람도 믿지 않는 사람도 죄 이야기를 하면 좋아하지 않습니다. 유쾌해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냐며 항의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다 하여도 인간은 결국 죄인입니다. 다윗이 시편 51편 5절에서 고백한 그대로입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이것은 어김없는 사실이고 성서적 진리입니다.
우리는 다 자신의 의지나 행위와는 상관없이 이미 엄마 뱃속부터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너무 가혹하다, 억울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인간의 원초적 숙명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원죄 혹은 유전죄라고 합니다. 우리가 부모나 조상으로부터 여러 가지 성격이나 정서, 재능, 지능, 신체적 특성이나 혹은 모진 병 같은 것도 물려받듯이 인류의 조상 아담이 범한 태초의 죄, 원죄도 그렇게 조상대대로 유전되기 때문에 우리가 아담의 후예인 한 누구 한 사람 예외 없이 모태 죄인으로 출생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서는 또 어떻습니까? 그때부터는 자기 의지로, 자기 생각이나 판단이나 선택이나 행위로 열심히 죄를 짓습니다. 그것을 자범죄, 자기가 스스로 범하는 죄라고 합니다. 자범죄는 원죄처럼 자기 의지나 의사와는 상관없이 운명적으로 유전되는 죄가 아니라, 자기 의지와 선택으로 범하는 죄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범하는 죄, 자범죄입니다. 원죄는 대물림되는 죄여서 불가항력적이라지만, 자범죄는 왜 짓게 되는 것일까요? 사람은 왜 오직 착한 생각만 하면서 선하게 죄 짓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일까요?
우리가 다 이미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원죄라는 치명적 죄성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자범죄 역시도 거의 운명적이고 불가항력적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보십시오. 우리는 이미 원죄라는 유전죄 DNA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태생적인, 선천적인, 운명적인 죄인이고, 또 그렇게 유전죄 인자, 원죄 인자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태어난 후에도 끊임없이 내 스스로 계속 죄를 지으며 살아감으로써 또한 피할 수 없는, 부인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래도 죄인이 아닙니까? 원죄의 피를 받아 죄인으로 태어나서 다시 날마다 순간마다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밥 먹듯 죄를 지으며 완벽한 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인데, 이래도 죄인이 아닙니까? 그것도 몰라서가 아닙니다. 죄인줄 뻔히 알면서, 이래서는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면서도 계속 죄를 짓습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10장 26절은 짐짓죄라고 했습니다. 알면서도 짓는 죄가 짐짓죄입니다. 또 죄가 좋아서, 죄악의 낙이 달콤해서 고의적으로,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심지어 계획적으로 범하는 죄도 있습니다. 이것을 시편 19편 13절은 고범죄라고 했습니다. 고의로 범하는 죄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래도 우리를 죄인으로 규정하는 성경말씀이 부당하고 억울하고 불쾌하십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 8절은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고, 또 10절은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원죄 죄인, 자범죄 죄인, 짐짓죄 죄인, 고범죄 죄인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날마다 각종 죄에 절어 살아가는 우리를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다고 합니까? 베드로전서 1장 19절입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가 당신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지불하셨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히브리말로는 <짜다크>, 헬라말로는 <디카이오>라고 합니다. 구속, 대속입니다. 따라서 이제 주님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들은 주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원죄, 자범죄, 짐짓죄, 고범죄가 다 씻겨 깨끗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거듭났습니다. 그것은 확실하고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고 진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다 그렇게 해서 새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으므로 이제 더 이상 어떤 죄도 짓지 않느냐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열심히 죄를 짓고 있습니다. 지금도 날마다 우리는 밥 먹듯 죄를 범하며 살아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주 회의에 빠집니다. 낙심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정말 내가 거듭난 사람인가? 내가 정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일까? 오죽하면 바울 같은 사람도 그 문제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하며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겠습니까? 거듭났으면, 사도가 되었으면 더 이상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데,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더라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왜 구속함을 받고, 죄사함을 입고, 새 사람이 되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것일까요?
아무리 거듭나고 새 사람이 되었다 해도 누구나 하루아침에 성자가 되고 천사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기가 태어나 금방 서거나 뛰는 것이 아니듯이, 수없이 엎어지고 자빠지며 걸음마를 배우듯이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도 그와 같습니다. 여전히 죄 짓고 엎어지고 자빠집니다. 비록 전과 똑같은 죄를 범한다 해도, 이제는 그 죄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전에는 마귀의 종으로 살면서 마귀가 시키는 대로, 세상의 종으로 살면서 세상이 부리는 대로 죄를 지었지만, 이제는 마귀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 몸에 배인 옛 사람의 습성, 옛 사람의 근성, 버릇 때문에 그 관성의 법칙에 의해서 본의 아니게 죄를 짓습니다. 로마서 6장 11절은 이제 우리는 다 죄에 대해 죽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 죽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죄의 통치나 죄의 지배력이나 죄의 종으로 살던 옛 신분, 옛 소속에 대해 죽었다는 뜻이지, 죄에 대한 습성, 기호, 친화력가지 다 죽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분명 우리는 이제 세상이나 마귀가 아니라 주님의 종들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몸에는 아직도 죄악의 니코틴이 남아 있습니다. 수십 년간 하루에 죄를 몇 갑씩, 두세 갑씩 피며 살았는데, 그것이 하루아침에 무 자르듯 되겠습니까? 끊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몰래 피웁니다. 평생을 죄 지으며 살아 왔는데, 담배를 끊고 술을 끊기도 어려운데 죄 끊기가 쉽게 되겠습니까? 이제는 마귀가 강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옛날 가락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기회가 있으면 죄를 짓습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이제 비록 내가 죄를 범한다 해도, 못난 신자고 나쁜 하나님의 백성일 뿐이지, 죄를 지었다고 해서 다시 옛 신분으로 환원되거나 내가 받은 구원이 원천적으로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못난 자식이고 불효자일 뿐이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이나 지위 그 자체가 해소되거나 원인무효가 되는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서 8장에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면서 누가 능히 하나님을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하나님이 의롭다하신 자를 누가 정죄하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하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비록 내가 죄를 짓는다 해도 그리스도 있다는 이유로 더 이상 정죄함을 안 받는다고 하니까, 하나님이 오직 의롭다고 하신다고 하니까, 지금까지는 불안해 하며 죄를 범했지만, 앞으로는 안심하고 마음놓고 죄를 지어도 될까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로마서 6장 2절은 분명히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다시 죄를 지으면 받은 구원이 해소되기 때문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지상과제요 목표인 성화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성화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거룩하신 주님의 모습을 내 몸에 익히는 훈련이 성화입니다. 따라서 죄가 비록 우리가 받은 구원은 해치지 못한다 해도, 성화를 치명적으로 방해할 수 있기에 더 이상 정죄함이 없다 해서 절대 안심하고 죄를 짓거나 죄를 계속 즐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이렇게 아무리 그럴 수 없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죄를 안 지으며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실존적 한계고 모순이고 고민입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문제를 위한 성경의 처방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13장 4절 이하를 보면, 주님이 최후만찬석상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세족식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서 베드로가 어떻게 했습니까? 선생님이 어떻게 제자들의 발을 씻기냐며 완강하게 사양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내가 너를 씻기지 않으면 너와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주여, 그렇다면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그때 주님이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요한복음 13장 10절입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미 목욕한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보혈로 온몸을 깨끗하게 다 씻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새벽에 사우나를 다녀온 사람이라도, 먼지 많은 세상에 나가 살다보면 금방 때가 타고 손발이 더러워지기 때문에 저녁에 돌아와서는 다시 손발을 씻어야 합니다. 마찬가집니다. 주의 보혈로 씻음을 받은 사람이라 해도 세상살이를 하다보면 다시 죄로 손발이 더러워집니다. 그런 죄는 그때그때 마치 손발을 깨끗하게 씻듯이 처리해야 그것이 내 성화와 영성에 도움이 되고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손발을 씻으라는 주님 말씀의 구체적인 뜻은 무엇일까요? 우선 그때그때 지은 죄를 주님께 자백하며 사죄를 빌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사랑도 속으로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언어로 고백해야 하듯이, 잘못도 죄도 속으로 심정적으로만 인정할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구체적으로 정직하게 실토해야 합니다. 죄를 내 안에 품고 있으면 여러 가지로 해롭습니다.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백해무익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주님 앞에 끄집어내놓으면 주님이 모두 깨끗이 처분해주십니다. 가톨릭에서는 고해성사라 해서 죄 고백을 가장 중요한 사크라멘트, 성사의 하나로 간주합니다. 죄를 지으면 그때그때 사제를 찾아가서 죄를 고백하고, 주님 대신 사제로부터 사죄 선언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그렇게 사제를 거치지 않고 누구나 직접 주님께 고해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직접 들으시고 우리의 허물을 다 사해주신다는 겁니다. 이것이 성서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손과 발을 씻는 행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확신입니다. 주님이 그것이 어떤 것이든 우리가 자신의 죄를 솔직히 시인하고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반드시 우리의 허물과 죄를 사해주신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사죄란 그분의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가 확신하는 것이지, 느낌이나 신비체험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깨끗하게 하신다고 한 주님의 그 약속, 그 말씀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미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9절에 나오는 미쁘시다는 말씀은 헬라어 <피스토스>입니다. 피스토스는 신실하다, 진실하다, 믿을만하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반드시 용서해주신다고 하신 당신의 말씀을 반드시 그대로 실행하고 실천하는 분입니다. 따라서 그 사실을 믿고 나의 모든 죄와 허물을 자백하고 진술하면 정말로 내 마음에 평화가 오고, 내 영혼이 투명해지고 평온해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잘못을 했으면 그것을 고백하고 시인해서 벌을 받든가 용서를 받아서 일단 그 죄를 처리해야지, 계속 내 속에 넣어두고 살면 죄 의식에 사로잡혀 비겁해지고, 초조해지고, 불안해져서,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전혀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부디 자백과 시인을 통해 모든 죄의 짐, 마음의 짐을 주님의 십자가 아래 다 내려놓읍시다. 우리의 죄가 그야말로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지고,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진실로 미쁘신 주님의 말씀이고 약속입니다. 올 여름도 더욱 가벼운 마음과 깨끗한 영혼으로, 더욱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무더위도 이기시고 답답한 코로나19 상황도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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