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압이 아마사를... (삼하 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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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압이 아마사를...
삼하 20:9-17
<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내 형은 평안하냐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입을 맞추려는 체하매>(9절).
아마사는 요압의 어머니인 스루야의 동생 아비갈과 이스르엘 사람 이드라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17:25). 그러니까 요압과는 이종 사촌간이고, 다윗 왕에게는 외조카가 됩니다. 그런 아마사가 반란군인 압살롬 군대의 장관이었다가 다윗이 장차 요압 대신 군대 장관으로 삼을 것을 약속함으로써 다시 다윗 편으로 돌아온 사람입니다.
이런 아마사를 다윗이 세바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군사를 모집하는 일의 책임자로 삼습니다.
다윗 왕의 이런 조치는 결국 아무런 해명도 없이 요압을 군대 장관직에서 해임한 것이나 다름없는 조치였으므로 요압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냉혹한 요압은 이전 아브넬을 죽이고, 압살롬을 살해한 것처럼 이번에도 가장 간교한 방법으로 이종 사촌인 아마사를 살해합니다.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주의하지 아니한지라 요압이 칼로 그의 배를 찌르매 그의 창자가 땅에 쏟아지니 그를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죽으니라>(10절).
이처럼 요압은 정치적인 원한과 질투로 세 번째 살인죄를 저지르고 맙니다.
그러나 그의 최후도 비극적입니다. 요압의 일방적이고 난폭한 행위는 결국 다윗의 분노를 더욱 크게 사게 되어 훗날 요압을 제거하라는 다윗의 유언을 받든 솔로몬이 아도니야의 반역에 가담한 그를 마침내 처단하고 맙니다(왕상 2:5-6, 28-35).
<요압>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아버지시다>입니다. 정말 그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긴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면 스스로 남을 심판할 것이 아니라 그 처분을 하나님께 맡겼어야 옳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본문을 통해 우리의 어두운 현실을 봅니다. 반목과 갈등과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고, 책임이나 권위나 화해, 통합은 없는 오늘의 현실, 교회도 서로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며 피 흘리는 모습으로 불안하게 서 있습니다. 서로 좋은 관계는 그게 무엇이든 오해하지 않고 이해하기를 작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좋은 관계의 완성은 상처를 받아도 또 다시 손을 내밀고 다가가는 일을 멈추지 않아야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그게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진정한 <화해>며 진정한 <통합>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적용>
-당신이 이해하는 <요압>은 어떤 인간형에 속한 사람입니까?
-다윗이 요압을 배제하려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당신은 믿는 자들의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기도>
주님, 저희 주변에는 <바르실래>와 같이 진심으로 나를 이해하고 사심 없이 도와주는 사람도 있지만 <세바>처럼 나를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반역하는 사람도 있고, <요압>처럼 일방적으로 행동하며 무례하게 굴고 나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국 손해를 각오해야 하고 때로 남의 거절을 당하는 일도 감수해야 함을 깨닫게 하사 더욱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에 용감한 저희가 되게 해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