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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사람 (삼하 19:38-43)

유다 사람

삼하 19:38-43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과 함께 건너니라 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 왕께 아뢰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둑하여 왕과 왕의 집안과 왕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가게 하였나이까>(40-41절).

이는 뒤늦게 왕의 귀환 소식을 듣고 급히 합류한 이스라엘 지파의 대표들이 오직 유다 지파가 단독으로 그 왕의 귀환을 주도했음을 알고 분노하는 대목입니다. 왕의 환궁 문제는 당연히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함께 참여하여 협의했어야 하고, 또 결정했어야 옳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런 불평은 무엇보다 유다 지파와의 오랜 경쟁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를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지파들은 이미 사사시대부터 주도권을 장악했던 지파들로서 혹 이참에 다윗 왕을 내세워 나라의 주도권이 유다 지파로 넘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윗 왕에게도 불만을 가졌는데 결국 이런 이스라엘 지파들의 불평이 곧 세바의 반란으로(20:1-2)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다 지파 사람들도 할 말이 없지 않았습니다. <모든 유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왕은 우리의 종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내느냐 우리가 왕의 것을 조금이라도 얻어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있느냐>(42절). 

이렇듯 하나님의 이름으로 연합한 공동체 조차도 가장 치명적인 적은 외부에 있지 않고 언제나 그 안에 존재합니다. 즉 공동체의 연합을 깨뜨리고 분열시키는 질투심과 경쟁심, 이기심 등이 외부에서 도전해오는 어떤 세력보다도 훨씬 더 위험하다(고전 1:10-17, 갈 5:20)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역시 이런 내부의 적에 의해 또 한 번의 분열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긴장은 솔로몬 왕 사후에 남북이 분열되는 주요 원인 중의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믿음 안에서의 사랑이란 <먼저>라는 이기적인 경쟁과 기득권의 벽을 넘어 <모두가 향유해야 할 삶의 권리>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늘상 그릇된 현실을 역전시키는 파라독스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를 앞세우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 이 사랑의 역설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정의로운 현실을 만들어 가는 진정한 힘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적용>

-당신은 유다 지파에 대한 이스라엘 지파 사람들의 불만과 항의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41절)?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43절)는 말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본문 40절에 나오는 <길갈>에 대해 아는대로 적어 보십시오(수 4:19, 5:10-12, 9:6, 10:6, 14:6, 삼상 7:16, 11:14-15, 13:7-9).


<기도>

주님, 다윗 왕의 귀환 때 유다 백성들은 모두 모인 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반 밖에는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유다 백성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언제나 이런 기득권과 불공정이 한 나라의 최대 갈등 요인이 되고 분열의 씨앗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결국 이게 지파간 세력간의 불만을 고조시켜 한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을 오늘 저희로 하여금 배우게 해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