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id": "xe-59150",
  "title": "[20210606m] 흙에서 흙으로 (창 3:17-19)",
  "authors": [],
  "category": "sermon",
  "dates": {
    "registered_at": "2021-06-06T17:48:08",
    "original_updated_at": "2021-06-06T17:58:25",
    "published_on": null,
    "delivered_on": null
  },
  "tags": []
}
---
<!-- paragraph:p0001 -->
<p class="p1"><span>20210606m 환경주일</span></p>
<!-- paragraph:p0002 -->
<p class="p1"><span>창 3:17-19</span></p>
<!-- paragraph:p0003 -->
<p class="p1"><span>흙에서 흙으로</span></p>
<!-- paragraph:p0004 -->
<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1"><span>(창 3:17-19, 개정)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span></p>
<!-- paragraph:p0006 -->
<p class="p2"><br></p>
<!-- paragraph:p0007 -->
<p class="p2"><br></p>
<!-- paragraph:p0008 -->
<p class="p1"><span>지난 5월 31일은 바다의 날이었고, 어제는 세계환경의 날이었습니다. 오늘은 한국 교회가 함께 지키는 환경주일입니다. 자연과 인간은 대체 어떤 관계일까요? 창세기 1, 2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보면, 하나님은 자연을 말씀으로 창조하십니다. 1장 3절 이하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11절 이하도 보십시오. “[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4절 이하도 보십시오. “ [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렇게 하나님은 모든 자연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09 -->
<p class="p2"><br></p>
<!-- paragraph:p0010 -->
<p class="p1"><span>그러나 하나님은 엿새 째 창조하신 사람은 말씀으로 창조하시지 않습니다. 1장 26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2장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그래서 히브리말로 흙은 아다마, 사람은 아담입니다. 그래서 본문 1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이것은 허무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뜻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11 -->
<p class="p2"><br></p>
<!-- paragraph:p0012 -->
<p class="p1"><span>흙은 사람이 아니지만 사람은 흙이고, 자연은 사람이 아니지만 사람은 자연입니다. 플라스틱은 화학적 가공품이기에 흙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죽으면 금방 자연으로 환원됩니다. 신토불이라는 말은 사람과 자연이 하나라는 뜻입니다. 땅과 사람의 몸이 이질적이지 않고 같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아담이라고 하면서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인간과 자연이 공동 운명체라는 겁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13 -->
<p class="p2"><br></p>
<!-- paragraph:p0014 -->
<p class="p1"><span>본문 17절을 보십시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절 상반절도 보십시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아담인데, 범죄한 이는 분명 인간인데 왜 땅까지 저주를 받습니까? 땅이 너(아담)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는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기 시작했고, 누구도 땀을 흘리지 않고서는 누구도 땅의 소산을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텃밭을 가꿔보신 분은 심은 적도 없는 잡풀이 훨씬 더 잘 자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 때문에 땅이 저주받은 결과입니다. 노아 때도 그랬습니다. 창세기 6장 5절 이하입니다.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사람의 죄가 세상에 가득하고, 사람의 생각과 계획이 악해서 사람 지은 것을 후회하셨다면, 사람만 쓸어버릴 것이지 왜 공중의 새까지 멸절하시겠다는 겁니까?</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15 -->
<p class="p2"><br></p>
<!-- paragraph:p0016 -->
<p class="p1"><span>창세기 6장 17절도 보십시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왜 하나님은 인간뿐만 아니라 지상의 모든 생명을 다 쓸어버리시겠다고 하십니까? 하나님이 왜 자연과 인간을 하나의 패키지로 보시며 같은 처분을 내리시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왜냐하면 아담과 아다마가 둘이 아니라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창조 원리일 뿐만 아니라 신탁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1장 26절을 다시 보십시오. “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8절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세계를 인간에게 위탁하는 대목입니다. 잘 다스리고 잘 관리하고 보존하고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인간이 자연의 운명을 접수합니다. 명실상부하게 자연과 인간이 공동 운명체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타락하면 자연도 타락하고, 인간이 저주받으면 자연도 함께 받으며, 자연이 파괴되면 인간도 함께 파멸하고, 인간이 새로워지면 자연이 새로워진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17 -->
<p class="p2"><br></p>
<!-- paragraph:p0018 -->
<p class="p1"><span>바울의 자연관은 이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합니다. 로마서 8장 19절 이하입니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바울이 로마서를 쓴 때가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인데, 그때 무슨 공해나 오염, 환경파괴, 생태학적 위기 같은 것이 있었겠습니까? 그야말로 모든 자연이 원시적 모습 그대로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미 당시에 들에 핀 한 송이의 장미와 백합을 보면서 자연을 예찬하기보다, 자연의 신음소리를 듣습니다. 아마 그 시대 사람들은 바울의 이런 사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자연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나타나심을 고대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자연도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중생해야 자연도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절대 파괴된 자연이 회복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중생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하나님의 귀에는 자연의 비명소리가 더욱 처절해지고 있습니다. 영성의 귀가 밝았던 사도 바울은 이미 2000년 전에 그 신음소리를 들었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19 -->
<p class="p2"><br></p>
<!-- paragraph:p0020 -->
<p class="p1"><span>우리가 겪는 온갖 자연재해며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은 인간의 타락이 부른 저주입니다. 인간이 타락하면 할수록 자연의 신음소리는 그만큼 더 처절해지고, 더욱 독하고 치명적인 재앙이 인간을 위협합니다. 그래서 자연은 늘 거듭난 사람, 중생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하나님이 오직 인간만을 사랑하시고 위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아전인수식의 해석입니다. 우리가 즐겨 암송하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만을 사랑하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해서 독생자를 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 못지않게 자연도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인간중심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해 왔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1 -->
<p class="p2"><br></p>
<!-- paragraph:p0022 -->
<p class="p1"><span>노아의 방주를 보십시오. 축구장 크기의 유조선처럼 생긴 배인데, 내부가 3층으로 되어 있었기에 연면적은 축구장 3개 규모였습니다. 그런데 그 큰 방주를 통해 구원받은 사람은 노아의 8식구뿐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노아에게 120년 동안이나 그 큰 배를 건조하게 하셨을까요? 노아의 방주는 결코 사람만을 구원하려는 방주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방주는 1, 2층은 온갖 짐승들로, 3층은 노아 가족과 짐승들을 위한 1년치 양식과 8식구 거처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노아의 방주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자연이 타고 있었습니다. 1, 2층에는 각종 동물이 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지만 자연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저 공중과 들의 새와 백합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저 새와 백합을 입히고 가꾸시는 하나님의 자연 사랑을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연도 저렇게 사랑하시는데 하물며 너희도 사랑하시지 않겠느냐는 뜻입니다. 날아가는 저 작은 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 이름 없는 들풀 한 포기도 하나님이 다 먹이고 입히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머리카락만 세고 계시지 않고 날아가는 새의 깃털까지도 세고 계십니다. 자연은 숭배의 대상도 아니지만 파괴나 학대나 약탈의 대상도 아닙니다. 자연은 자연을 잘 돌보라고 신탁하신 우리의 영원한 이웃입니다. 그렇게 사람과 자연은 영원한 공동 운명체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3 -->
<p class="p2"><br></p>
<!-- paragraph:p0024 -->
<p class="p1"><span>우리는 천국에 구원받은 성도만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영원한 부활의 세계가 오직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나라는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그 나라를 자연친화적으로 표현합니다. 그곳을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부릅니다. 이사야 11장 6절 이하입니다. “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것이 새 하늘과 새 땅, 우리가 영원히 살 부활의 세계입니다. 계시록 22장 1절 이하입니다.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장차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도 부활체로 변화되는 세계지만, 자연도 완벽히 회복되는 세계입니다. 거기는 코로나19 같은 병도 없고, 뇌출혈이나 심장마비 같은 병도 없는 곳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자연과 더불어 영원히 살아가는 새 생명의 나라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5 -->
<p class="p2"><br></p>
<!-- paragraph:p0026 -->
<p class="p1"><span>우리가 영원히 살 나라는 절대 자연이 배제된 인간만의 세계가 아닙니다. 그곳은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자연이 저주받았다는 말씀이야말로 하루빨리 인간이 새롭게 거듭나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이 말씀들을 더욱 진지하고 아프게 들읍시다. 그래서 우리가 더욱 자연에 대해 책임적이고, 따뜻한 이웃으로 사는 성도가 됩시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7 -->
<p class="p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br></span></p>
<!-- paragraph:p0028 -->
<p class="p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br></span></p>
<!-- paragraph:p0029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0vp17xLb_68"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