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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30m] 우리가... (창 1:26-28)

20210530m

창 1:26-28

우리가...


(창 1:26-28, 개정)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오늘은 삼위일체주일입니다. 삼위일체가 무엇입니까? 교회의 여러 교리 가운데 삼위일체보다 더 난해한 것은 없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논할 수 있을까요? 지극히 제한적인 피조물이 어떻게 무한하신 하나님을 논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 하나님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제한된 언어나 개념 속에 갇히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언어로 규정할 수 있다면, 이미 그분은 진정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때 묻은 언어나 규정 속에 갇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존재 양식을 가리키는 삼위일체라는 교리도 결코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삼위일체를 논할 때 이것을 전제해야 합니다. 신비 중의 신비인 하나님의 존재 양식을 삼위일체라는 용어로 규정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착각입니다. 그것은 인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는 것일 뿐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사도 요한의 천국에 관한 묘사가 나옵니다. 거기는 모든 것이 보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정 같이 맑은 생명 강도 있습니다. 그것들은 사도 요한이 환상을 보고 기술한 것이지만 실제 천국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은 말이나 글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요한이 자기가 가진 언어의 최상급으로 천국을 묘사했을 뿐입니다. 실제 천국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은 우리의 언어로 표현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삼위일체도 그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 양식에 대해 최대한 이해를 시도해본 것입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은 아직도 하나님이 몇 분이신지를 모릅니다. 신학생들조차 그것을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신학대학원 신입생들에게 제가 꼭 물어본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몇 분이시냐? 놀랍게도 그것을 아는 학생들이 적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매년 조직신학 개론 강의 때 신입생에게 물어봤습니다. 제가 질문을 하면 학생들이 매우 난감해 했습니다. 그것이 과연 질문이 되는가 라는 표정이었습니다. 한 번은 어느 학생이 유일신 하나님에 대해 그렇게 묻는 것 자체가 잘못 되었고, 자기에게는 그것이 신성모독으로 들린다며 항의했습니다. 어떻게 신학교 교수가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 학생과 같은 생각이십니까?


한국 개신교는 하나님이 한 분임을 강조하려고 처음부터 칭호를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히브리어 칭호인 엘로힘과 신약의 데오스를 숫자인 하나로 번역해 거기에 존칭을 붙여 하나님으로 인격화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가톨릭은 조금 다릅니다. 한국 가톨릭은 개신교보다 100년 전에 엘로힘과 데오스를 하느님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것은 하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그리스도교는 서로 다른 칭호로 부르고 있습니다. 개신교는 유일신 사상을 강조하려고 하나님으로, 가톨릭은 한국 재래종교에서 천신을 최고로 꼽았기에 그것을 차용해 하느님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무엇이 옳습니까?


창세기 1장 1절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여기에 나오는 성경 최초의 하나님 칭호가 엘로힘(Elohim)입니다. 엘로힘은 단수형이 아니라 복수형입니다. 단수형은 엘(El)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 1절을 직역하면 태초에 하나님들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가 됩니다. 태초에 단수 하나님 엘이 아닌 엘로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엘이 맞습니까? 엘로힘이 맞습니까?


이어지는 2절을 보십시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이 구절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영(Ruach)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이미 성령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성령도 처음부터 하나님의 천지창조 사역에 참여하셨다는 것입니다. 


신약 요한복음 1장 1절 이하입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여기에서 말씀, 곧 로고스가 누구십니까? 14절을 보십시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보십시오. 엘이 아니라 엘로힘이 맞습니다. 태초부터 성부, 성령, 성자가 함께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은 절대 단수 하나님이 아닙니다. 엘로힘, 복수입니다. 하나님이 유일신이라는 것은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는 말이지 숫자로 한 분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래도 미심쩍으십니까? 


창세기 1장 26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이것은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기 위해 깊이 생각하는 대목입니다. 여기에도 우리가, 곧 복수입니다. 왜 우리일까요? 성부, 성자, 성령이시니까 그렇습니다. 엘이 아니라 엘로힘이기에 그렇습니다. 단수가 아니라 복수 하나님이시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의 하나님, 곧 성경의 신관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단일신론이 아닙니다. 단일신론은 유대교의 신관이고, 이슬람의 신관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교는 삼신론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세 분이나 삼신론은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세 분이면서 동시에 한 분이시고, 한 분이시면서 동시에 세 분이 하나님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난해합니다. 이것을 교리적으로 삼위일체(trinity, trinitas)입니다. 도대체 삼위일체는 어떤 양태를 가리키는 말일까요? 이것은 숫자로는 셋인데 본질적으로는 완벽한 하나로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빌립보서 2장 6절 이하입니다.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예수님은 그 근본이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그 근본이 같은 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숫자로는 엄연히 셋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일체입니다. 그런데 그 세 분에 대한 각자의 고유한 자리와 역할이 있습니다. 그래서 삼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독특한 모습, 신비한 존재 양식, 곧 삼위일체입니다. 


우리가 부부를 일심동체라고 합니다. 분명히 부부는 아내와 남편으로 숫자로는 둘인데, 그 마음은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삼위일체도 삼위의 일심동체라는 의미입니다. 사실상 부부의 일심동체는 과장이고 그래야 한다는 당위를 뜻하지만, 하나님의 삼위일체는 완전한 진실입니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삼위일체에 대한 오류가 있습니다. 먼저, 양태론입니다. 이것은 한 분 하나님이 시대마다 다른 양태로 나타나셨다는 논리입니다. 이를테면 구약시대 때는 성부 하나님으로 출현해 창조하셨고, 신약시대 때는 성자 하나님으로 출현해 구속하셨고, 그 이후는 성령 하나님으로 나타나 그리스도인들을 천국으로 견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누가복음 3장 21절 이하입니다.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세례를 받는 대목을 보면, 같은 시간과 장소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동시에 출현합니다. 성자는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있고, 성령은 그 위에 강림하고 있고, 성부는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3장 21절은 양태론과는 다릅니다. 


또한 어떤 이는 나무와 강을 예로 들어 삼위일체를 설명합니다. 나무의 뿌리, 줄기, 가지가 하나의 나무를 이루듯이, 그리고 강의 상류, 중류, 하류가 하나의 강을 이루듯, 세 분 하나님이 각자로는 조금 부족하고 세 분이 합쳐서 완전체가 된다는 논리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완전한 세 분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완전한 한 분 하나님입니다. 


또 다른 논리는 성부, 성자, 성령의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그 권위와 신성에 등급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제일 높고, 그 다음은 성자, 마지막으로 돕는 이인 성령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똑같은 권위를 가집니다. 세 분에게는 각자의 고유한 사역이 있을 뿐 어떤 위계나 서열, 차등이 없습니다. 


사람들 대다수는 그냥 믿으면 되지 왜 이렇게 복잡하게 믿느냐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아느냐는 우리의 신앙을 결정합니다. 우리는 자기 맘대로, 우상을 섬기던 리듬으로, 천지신명에게 치성 드리듯 신앙생활하면 안 됩니다. 삼위일체란 우리가 믿는 엘로힘 하나님의 정체성과 존재 양식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신앙이 더욱 성숙해집니다. 


부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여러분의 삶을 더욱 복 있게 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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