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서 난 아들도 ... (삼하 16: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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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서 난 아들도 ...
삼하 16:9-14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9절).
아비새는 요압의 동생으로 다윗의 조카이자 충성스런 신하입니다. 그가 나서서 다윗을 저주하며 돌을 던지는 시므이를 당장 목 베어 처단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비극적 사건들을 모두 우연이 아니라 자신이 지난 날 저지른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인식하며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10절).따라서 다윗은 지금의 상황에 대해 누구에게 보복하거나 불평하기보다는 자신이야말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마땅한 죄인이라 여기며 철저하게 근신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11절).
이는 사람들에게 겪고 당하는 억울함과 저주보다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저지른 허물과 죄악을 먼저 생각하는 실로 바람직한 신앙적 자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며 이렇게 말합니다.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12절).
이것은 자신이 이러한 수욕을 묵묵히 감당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긍휼히 여겨주시지 않겠느냐는 바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가 정작 믿고 의지할 것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일깨우십니다. 하다못해 악한 사람의 저주를 통해서도 우리의 궁극적인 안전의 축이 어디에 있는지를 발견하게 하십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반드시 주목하고 배워야 합니다. 이 사실을 모르면 권력이 있고, 힘이 좀 세다고 남 앞에서 우쭐해지거나 혹은 어떤 위기나 곤경 앞에서 졸지에 겪는 그 자신감의 상실로 심령과 육신이 꺾이고 시들어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역경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무너지지도 않았고, 피난의 계곡에서 한숨을 쉬며 남이나 세상을 저주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죄와 지켜주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시므이가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그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먼지를 날렸지만>(13절) 다윗은 자신의 그 수모를 정확히 살펴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그 위기 가운데서도 자기를 구원해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확실히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적용>
-본문 10절에서 다윗이 <스루야의 아들들>이라고 한 것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까?
-당신은 11절 말씀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왕을 향해 저주하며 돌을 던지는 자에게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고 한 다윗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도>
주님,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란이며 사울의 족속 시므이의 저주와 분노를 다 신앙적으로 받아들이고 또 이해했습니다. 심지어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11절)이라며 자신을 저주하는 시므이를 그냥 버려두라고까지 했습니다.
여기서 저희가 다윗에게 배워야 할 바를 깨닫게 하사 더욱 예민한 영성으로 꼭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해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