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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9m] 네 부모를 기쁘게 하라! (잠 23:22-25)

20210509m

잠 23:22-25

네 부모를 기쁘게 하라!


[22]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23]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24]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보기 드문 성군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도 다윗을 그들의 영원한 국부로 여깁니다. 왜 그럴까요? 다윗은 일찍이 유대 나라의 통일왕국을 이루었고, 그의 치세 당시가 이스라엘의 황금기였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메시아를 기다립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생각하고, 이제는 그분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생각하지 않기에, 그들은 메시아의 초림을 기다립니다. 이스라엘의 국기는 다윗의 별입니다. 그것은 메시아가 오시면 옛 다윗 왕국을 재건한다고 생각하여 그들의 염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다윗과 옛 다윗 시대를 동경하며 삽니다. 


아닌 게 아니라 다윗은 성경의 그 어떤 인물보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어릴 때부터 그 믿음이 남달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았고, 이스라엘의 제2대 왕이 되었고, 그의 계보에서 그리스도가 탄생합니다. 


하지만 그의 사생활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사울의 딸이었던 미갈,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이방 여인 마아다, 그 외에도 아히노암, 아비삭 등이 다윗의 아내들입니다. 이름이 밝혀진 사람만 10명이 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식도 많았습니다. 배 다른 형제들이 20명도 넘는데, 딸은 기록상 다말 한 사람만 알려져 있습니다. 어쨌든 자식이 이렇게 많았지만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한 자식은 거의 없었습니다. 맏이 암논부터 거의 정신병자 수준이었습니다. 자녀 가운데 가장 아비의 마음을 아프게 한 아들은 셋째 아들인 압살롬입니다. 


압살롬은 이방인 마아가의 아들인데, 그는 어릴 적부터 외모가 준수했습니다. 사무엘하 14장 25절 이하입니다. “ [25]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26]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 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그는 키가 크고 얼굴도 잘 생기고, 귀태가 줄줄 흘렀습니다. 특히 그의 머리카락이 자랑거리였습니다. 다윗도 일찍부터 이 아들을 편애했습니다. 그런데 맏이 암논이 압살롬의 친누이 다말을 교활하게 성폭행합니다. 그때부터 압살롬이 치밀하게 복수의 칼날을 갈며 때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암논을 처참하게 살해합니다. 사무엘하 13장을 보면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이 옷을 찢고, 땅에 드러누워 통곡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압살롬의 만행이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욱 비극적이고 치명적인 반역을 도모합니다. 그는 아버지를 죽이고 권좌에 앉으려고 아비의 심복 아히도벨까지 매수합니다. 사무엘하 15장 14절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 다윗은 신발도 신지 못하고 성을 빠져나와 울며 감람산을 넘었습니다. 


압살롬은 반란군을 지휘하며 정부군과 싸우다가 수세에 몰립니다. 그는 후퇴를 거듭하며 급히 숲으로 도주하다가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합니다. 압살롬이 빽빽한 상수리나무 아래를 노새를 타고 가다가 그의 머리카락이 나뭇가지에 걸립니다. 그는 그렇게 허공에 매달리고 맙니다. 그의 뒤를 쫓던 요압이 압살롬의 심장에 단창 3개를 꽂습니다. 그 참혹한 모습이 바로 천하의 불효자 압살롬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아비 다윗은 그놈 잘 죽었다 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하 18장 33절입니다.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이게 부모 마음입니다. 반란을 일으킨 아들이었지만, 막상 아들이 비명에 죽자 아비 다윗은 그 슬픔을 감당치 못했습니다. 당시 다윗이 슬퍼하며 몇 날 며칠을 울자 요압을 비롯한 사람들이 가서 항의까지 합니다. 반란군 수괴를 처단했는데도 그렇게 슬퍼하면, 그를 처단한 저희는 뭐가 되냐는 겁니다. 


그런데 배는 다르지만 압살롬의 동생 솔로몬은 달랐습니다. 압살롬이 불효의 화신이라면, 솔로몬은 보기 드문 효의 귀감입니다. 솔로몬의 어머니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입니다. 밧세바는 다윗의 여덟 번째 아내입니다. 다른 아내들은 사랑과는 관계없이 본의 아니게 정략적으로 맺은 부부관계입니다만, 밧세바 만큼은 비록 불륜이었을망정 로맨스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그 밧세바에게서 아홉 번째 아들 솔로몬이 태어난 것입니다. 다윗은 솔로몬이 어릴 때부터 사랑했습니다. 결국은 다윗이 솔로몬에게 왕권을 물려줍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 후 제일 먼저 한 것은 유사 이래 가장 아름다운 예루살렘 성전부터 건축했습니다. 왜 그가 그 일부터 했을까요? 그것은 아버지의 절절한 소원이자 숙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늘 자기는 백향목 궁전에서 사는데 하나님은 저 성막 가운데 있다고 하면서 죄스러워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는 저 초라한 텐트 안에 있는데, 자기가 백향목 왕궁에 살고 있으니 못 견디겠다는 겁니다. 다윗의 그 바람을 하나님은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그 마음은 가상하나 손에 피가 너무 많이 묻었으므로 성전 건축에 합당치 않고 너의 자녀로 하여금 성전을 건축하게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자기 소원이 아니라 아버지 다윗의 평생소원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아비의 유지를 최우선으로 받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후 어머니 앞에서 효를 서약합니다. 당시는 아버지 다윗은 이미 죽었고, 어머니도 많이 늙었습니다. 솔로몬은 결코 어머니를 괄시하지 않고, 어머니의 청이 무엇이든 거절하지 않겠다고 서약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셨는지 모릅니다. 인류 역사에서 솔로몬처럼 지혜롭고 화려한 영화를 누린 왕이 다시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본문은 절세의 효자인 솔로몬이 네 부모를 즐겁게 하고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합니다. 솔로몬은 효를 부모를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솔로몬이 주는 효의 지침은 무엇입니까?


우선 청종입니다. 부모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을 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청종은 매우 극단적입니다. 부모 말씀에 청종치 않는 자식은 심지어 돌로 치라고까지 합니다. 성경은 왜 이렇게까지 엄하게 청종을 강조할까요? 부모에 대한 청종과 하나님에 대한 청종이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모 말씀에 대한 순종의 연장이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부모 말씀과 하나님 말씀을 별개로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육신의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만이 영혼의 부모이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에 대한 공경과 청종이 부모 말씀을 청종하는 데서 확인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늘 주께 하듯 하라고 당부합니다. 주께 하듯 부모님께 청종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효라는 말입니다. 열왕기상 2장 1절 이하입니다. “[1]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2]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다윗의 유언은 오직 한 가지, 하나님 말씀에 청종하여 백성을 치리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효의 원리를 기억합시다. 솔로몬은 아버지 뜻에 청종하여 가장 먼저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또한 홀로 되신 어머니 앞에서 효를 맹세하며 평생 어미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렇게 그는 효를 아름답게 실천했습니다. 주님도 죽기까지 아버지 뜻에 복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 하늘과 땅과 그 아래에 있는 자들이 그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부모님 말씀에 청종합시다. 


다음은 늙은 부모를 무시하지 말라고 합니다. 나이 드신 부모님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 하며 상처를 받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사회 공동체에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암암리에 부모님은 무시당하고 심하면 멸시와 학대까지 당합니다. 이것이 나이 드신 부모님의 고독이요 견딜 수 없는 절망감이요 우울증입니다. 신명기 27장 16절입니다.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이 말씀은 부모를 무시하고 학대하면 절대 하나님이 가만 두시지 않는다는 경고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무시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무엇을 하든 저주가 아니라 복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부모를 경히 여기지 않고 그야말로 주께 하듯 존중하며 효를 다해야 합니다. 이것을 잊지 마십시다. 사람들은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서로 안 모시려고 싸우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제사는 악착같이 모시려고 합니다. 그래야 복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들은 복이 아니라 저주를 받는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잘 해야 합니다. 이것이 복 받고 사는 진정한 비결입니다. 십계명에서 오직 효에만 하나님이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한다는 복입니다. 모든 일이 형통하고 무병장수를 바란다면, 부모에게 효를 다해야 합니다. 효를 우습게 여기지 맙시다. 


효를 다한 솔로몬은 40년간 나라를 통치하며 태평성대를 누리게 했습니다. 부모님께 그리고 하나님께 효를 다하여 여러분의 생애가 복 되고 강건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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