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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2m] 주께 하듯 (엡 5:21-24)

20210502m

엡 5:21-24

주께 하듯


(엡 5:21-24, 개정)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2절은 남편들이 가장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합니다. 반면에 여성들은 이 구절을 불편해 합니다. 주께 하듯 남편에게 복종했더니 더 기고만장해지더라는 얘깁니다. 혹은 그렇게 하면 당장 다음 주에 교회 못 나온다고도 합니다. 


성경은 어쨌든 복종을 강조합니다. 본문 18절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그런 다음에 나오는 말씀이 기도원 가라, 거리에 나가 예수를 믿으라고 외치라는 게 아니라, 21절 말씀입니다. “피차 복종하라” 22, 24절, 6장 1절, 5절이 모두 복종을 말씀합니다. 복종과 순종이 그리스도인의 교회, 가정, 사회 생활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원리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14절 이하입니다.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이게 무슨 뜻일까요? 어린아이처럼 순진해야 천국 간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절대적인 의존성과 복종심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복종은 어린아이들의 생존 조건입니다. 특히 유대 사회는 더 그랬습니다. 어린아이는 12세가 되어 성인식을 치르고 나면 비로소 한 사람의 주체적 인격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런 어린아이를 예로 드시며 그들처럼 복종하지 않으면 천국 가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 뜻에 대한 복종이 곧 신앙이고, 그 반대는 불신앙이고 하나님 거역이라는 죄라는 말씀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마태복음 19장 23절 이하입니다.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어린이도 갈 수 있는 천국을 부자는 왜 못 갈까요? 부자는 돈의 위력을 믿고 살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지하고 복종하듯이 그렇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복종하는 자에게 천국이 보장됩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는 말씀도 마찬가집니다. 가난한 자는 오직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돈에 의지해 살지만, 가난한 자는 세상에서 기댈 데가 없으니 오직 하나님을 쳐다보며 삽니다. 


주님도 보십시오. 주님은 우리에게만 교회와 가정, 사회에서의 복종을 강요하신 것이 아닙니다. 당신께서 먼저 아버지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5절 이하입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복종할 게 따로 있지.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는 일까지도 복종하셨습니다. 다 살자고 하는 일인데 주님은 죽기까지 하나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이셨다고 합니다. 주님의 가장 위대한 사역은 자기를 스스로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한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그렇습니다. 그는 복종의 끝판 왕입니다. 그는 본토 아비 집을 떠나라는 말씀에 복종했습니다. 당시 그렇게 하는 것은 죽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이 100세에 얻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했을 때, 그는 복종했습니다. 그 사건 직후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독자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겠다.’ 그렇게 그는 우리의 믿음의 영원한 사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아브라함처럼 순종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본문을 비롯해 에베소서 5장과 6장은 너희가 가정생활, 사회생활, 교회생활을 통해 복종을 관철하되 그것을 주께 하듯 하라고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복종의 중요한 표준이 바로 <주께 하듯>입니다. 성도 상호간의 복종,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 부모에 대한 자녀의 복종, 상급자에 대한 하급자의 복종의 표준이 <주께 하듯>입니다. 이것은 건성으로 하는 복종이 아닙니다. 


본문에 나오는 두 가지 복종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1절에 나오는 ‘피차 복종’입니다. 이것이 교회생활의 대원칙입니다. 일방의 복종을 강요하지 않고 서로 복종하라고 합니다.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라고 말씀합니다. 서로가 주께 하듯 섬기며 복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대에게 복종하는 것을 가장 못 합니다. 남의 발을 씻기는 게 가장 힘들고 어렵습니다. 신자들이 한 번 틀어지면 훨씬 더 지독합니다. 화해하자며 같이 손잡고 울며 기도해도 잘 안 풀입니다. 얼마나 완고한지 모릅니다. 차라리 헌금하는 게 더 쉽습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거나 남에게 복종하는 일, 남을 용납하고 섬기는 일을 잘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성경은 주께 하듯 남을 섬기라고 합니다. 주께 하듯 서로 복종하라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상생의 원리이자 더불어 사는 지혜입니다. 


22절에 나오는 ‘아내의 복종’입니다. 여기서 아내들에게 주께 하듯 남편에게 복종하란다고 마음 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내들의 일방적인 손해로 볼 필요가 없습니다. 아내가 남편보다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내에게는 하나님에게 원초에 부여하신 배역이 있는데, 그게 바로 복종이란 것입니다. 이번에 윤여정 씨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분이 미나리 영화에서 주연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윤여정 씨가 조연급 배우라서 주연을 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마찬가집니다. 주연이냐 조연이냐 단역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배역이 다를 뿐입니다. 제가 여러분보다 잘 나서 설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아내에게 복종의 역할을 부여하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내 정서와 기호대로 하는 게 아니라 아무리 하기 싫어도 감독이신 주님의 주문대로 해야 합니다. 연출자의 요구대로 하지 않는 배우를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윤여정 씨가 이 나이에 내가 무슨 조연이냐고 했다면 이번에 아카데미상을 수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면 왜 이런 복종을 요구하실까요? 마태복음 25장 40절입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피차 복종하는 것이 주님께 복종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에 대한 우리의 복종이 실제 우리 삶 속에서, 곧 성도 간 서로 복종하는 것으로, 남편과 부모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구현되고 확인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말씀에 복종하며 살면, 주님께 복종하는 것을 우리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26절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무슨 뜻입니까?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해 능욕을 받았다고 합니다. 모세로 말하면 그리스도보다 1,500년을 앞선 사람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몰랐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해 희생하고 능욕을 받았다고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희생하고 능욕을 받았을 뿐인데, 성경은 그리스도를 위한 희생과 능욕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서로 주께 하듯 복종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실천하는 복종을 하나님이 당신께 복종하신 것으로 받아들이신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남편에게 복종했을 뿐인데, 나는 성도 간에 복종했을 뿐인데, 주님은 당신께 복종하신 것으로 받아들이신다는 것입니다. 주께 하듯 남편에게, 부모님께, 상전에게 복종하면 우리의 그 모든 복종하는 삶을 주님께 복종한 것으로 간주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주께 하듯 남을 섬기고 양보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께 하듯 하라는 말씀이 우리의 섬김의 원칙이자 원리입니다. 


이번 주 수요일이 5월 5일 어린이 날입니다. 음력으로 5월 5일은 단오입니다. 옛날 어느 부자가 단오 때 종들을 잠시 집으로 돌려보내며 전날 밤에 가는 새끼줄을 꼬라고 명했습니다. 어느 종은 내일 집에 가는데 무슨 일이냐며 투덜대며 대충 꼬았고, 다른 종은 주인의 분부대로 밤새 가늘고 고운 새끼줄을 꼬았습니다. 이튿날 주인은 종들이 꼰 새끼줄에 엽전을 꿰어 주었습니다. 거칠게 새끼줄을 꼰 종은 엽전을 단 한 닢도 꿰지 못했으나, 가늘고 고운 새끼줄을 꼰 종은 엽전을 짊어지고 갔다고 합니다. 복종하면 내게 그만큼 유익합니다. 주께 하듯 매사에 복종하며 삽시다. 



원문 자료와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