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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5m] 빌라델비아 교회 (계 3:7-13)

20210425m

계 3:7-13

빌라델비아 교회


(계 3:7-13, 개정)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미국 펜실베니아주에 필라델피아라는 큰 도시가 있습니다. 미국 종합대학 중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펜실베니아 대학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에게는 필라델피아 크림 치즈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필라델피아는 그리스어로 필리아라는 말과 형제라는 아델포스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형제 사랑입니다. 이 지명은 오늘 본문의 빌라델비아에서 온 지명입니다.


1세기 말 터키 소아시아와 크레타 섬에 둘러싸인 다도해 중 작은 섬인 밧모에서 요한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소아시아 7교회가 등장합니다. 소아시아의 7교회가 요한계시록의 공동 수신자입니다. 그 교회 가운데는 책망만 들은 교회도 있고, 칭찬과 책망을 같이 들은 교회도 있고, 칭찬과 축복만 받은 교회도 있습니다. 오직 칭찬만 들은 교회가 서머나와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7절 이하를 보십시오.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이보다 더 아름답고 희망적이고 복 있는 말씀도 흔치 않습니다. 주님이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열어두셨다는 문은 어떤 문일까요? 기회의 문, 무한한 가능성의 문, 희망의 문, 구원의 문, 천국의 문입니다. 


주님은 열린 문 이외에도 여러 가지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9절 하반절 이하부터 12절까지가 모두 주님이 약속하신 축복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도 이런 축복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희망과 기회의 문, 은혜와 축복의 문, 구원과 천국의 문을 우리 교회에 활짝 열어주시기를 바라면서, 옛날 빌라델비아 교회는 어째서 이런 복을 받을 수 있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8절 하반절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이것은 주님이 당시 빌라델비아 교회를 높이 평가하신 이유입니다. 1세기 당시 빌라델비아 교회는 가장 작은 능력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는 소아시아 7교회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았습니다. 교회 구성원들도 사회적으로 가장 힘없는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작은 능력을 가진 교회라고 하셨습니다. 성도 대부분이 여성들이었고 노예 계급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아무리 현실이 고되고 힘들어도 최선을 다해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10절 하반절입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빌라델비아 교회가 인내하며 말씀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이 책망만 하셨는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장 17절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라오디게아 못지 않게 교세가 컸던 사데 교회도 보십시오. 3장 1절 하반절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라오디게아와 사데는 교세가 엇비슷했습니다. 왜 이런 큰 교회, 힘 있는 교회가 눈 먼 교회고 벌거벗은 교회, 살았으나 죽은 교회입니까? 무엇보다 그들은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제 편리와 욕심대로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좇기보다 오직 세속적 욕구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평가는 냉혹합니다. 


기독교와 타 종교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세상의 모든 종교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입니다. 알라딘이 요술램프를 문지르면 램프에서 마왕이 나옵니다. 초능력은 마왕이 가졌는데 정작 주인은 램프를 가진 알라딘이 주인입니다. 그래서 알라딘이 원하면 무엇이든 마왕이 다 이루어줍니다. 이것이 세상 종교의 실체입니다. 순전히 나의 소원 성취를 위해 초월적 힘을 가진 신을 동원하고, 내 뜻을 이루기 위해 신을 최대한 이용합니다. 세상의 종교는 내가 중심이고 주체입니다. 신은 어디까지나 내 뜻을 이루기 위한 초능력을 지닌 종입니다. 신은 내 요술램프의 마왕일 뿐입니다. 마왕이 알라딘에게 주인님 부르셨습니까? 무슨 소원을 이뤄드릴까요? 라고 합니다. 마왕이 초능력을 지녔는데 알라딘에게 주인이라 부릅니다. 이것이 세상 종교의 적나라한 본질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와 정확히 반대입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체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영원한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내 말,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주님의 뜻에 순종하자는 게 기독교입니다. 내가 아무리 원해도, 그게 아무리 내 기호와 정서에 맞고 절실해도 주님 뜻에 합당하지 않으면, 하나님 말씀에 부합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내 뜻을 접고 주님 뜻에 순종하는 게 기독교 신앙입니다. 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내 소원을 이루자는 종교와 작은 능력이나마 어떻게든 주님의 뜻을 이루자는 종교가 얼마나 대조적이고 그 차이가 큽니까? 여러분, 기독교는 결코 착한 사람 만들자는 단체가 아닙니다. 헌금 많이 해서 가난한 사람 돕자는 자선 단체도 아닙니다. 기도 많이 해서 오직 내 소원을 이루자는 구복 단체도 아닙니다. 물론 기독교에도 그런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 효과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다보면 복도 받고, 인간적 욕망을 이루기도 합니다만, 그것은 본질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오직 주님 말씀, 주님의 뜻입니다. 거기에 순종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규모가 작고 능력이 적다하여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규모 크고 능력 많다하여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도 아닙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가장 약하고 초라했지만, 주님이 보실 때는 어느 교회보다 가장 성실하고 아름다운 공동체였습니다. 반면에 사데와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족함이 없다며 늘 교세 자랑을 했지만, 주님이 보실 때 그들은 가련하고 벌거벗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8절입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여러분, 빌라델비아 교회야말로 우리 교회의 모범이요 이상입니다. 우리도 비록 가난하고 작지만 주님 말씀에 더욱 순종하는 교회가 됩시다. 특히 인내의 말씀을 잘 지켜 오래 참고 오래 견디며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우리 앞에도 반드시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의 문을 활짝 여사 온 세상으로 하여금 주님이 우리 교회를 사랑하는 줄 알게 하실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끝까지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8절). 당시 소아시아에는 황제 숭배를 강요했습니다. 당시는 도미티아누스가 황제였는데, 그는 아시아 쪽에 황제 숭배를 강요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그것을 거부하니까 소아시아 교회들이 큰 피해와 박해를 당했습니다. 폴리캅 교부에 대해 들어보셨지요? 그는 요한계시록을 쓴 사도 요한의 수제자였습니다. 그는 서머나 교회의 목회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황제 숭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황제 앞에 섭니다. 그에게 지금이라도 예수를 거부하라고 하자, 그는 지난 세월동안 주님은 한 번도 나를 부인하지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주님을 배반할 수 있느냐고 합니다. 당시에 11명의 평신도도 폴리캅과 함께 처형을 당했는데, 그 가운데 10명이 빌라델비아 교회 소속의 여성들이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가장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위대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툭하면 주님의 이름을 배신하고 욕되게 하며 사는데,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이름을 배신하느나 자기의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것을 귀하게 보사 그들 앞에 누구도 닫지 못할 희망과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처한 사정과 형편이 열악하다며 극심한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삽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우리 사정보다 훨씬 더 불리한 여건에서도 주님의 이름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창립기념주일을 맞은 오늘, 우리도 빌라델비아 교회를 꿈꿉시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우리 교회의 롤 모델로 삼읍시다. 우리도 작은 능력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책망보다는 칭찬을 들으며 살고, 활짝 열린 문의 축복을 누리는 복 있는 교회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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