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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큉

지난 6일 가톨릭의 위대한 사상가요 금세기 인류의 최고 지성 가운데 한 분으로 꼽히는 독일 튀빙겐 대학의 한스 큉(Hans Küng, 1928-2021) 교수가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20세기 후반 가톨릭과 개신교에 많은 영향을 미친 스위스 출신의 신학자요 철학자요 종교학자였으며 또 사제였습니다. 지금 제 책장에는 그분이 쓴 독일어 원서가 여러 권 꽂혀 있고, 평소 개인적으로도 몹시 존경해 온 분이라 진심 어린 애도와 함께 삼가 그의 생애를 간략히 소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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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큉은 1928년 3월 19일 스위스 루체른에서 태어났으며, 로마 교황청 내의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뒤 1954년 가톨릭 사제로 서품을 받았습니다. 이어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해 1957년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 후 1959년까지는 고향 루체른 교회에서 사목 활동을 하다 1960년부터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 신학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20세기 개신교 신학을 대표하는, 역시 스위스 출신인 <칼 바르트의 칭의론에 대한 가톨릭적 성찰>이었습니다. 한스 큉은 그 논문에서 칼 바르트의 <칭의론>이 근본적으로는 가톨릭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고 했고, 그 외 몇 가지 차이점들은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하므로 신구교간의 부단한 신학적 교류를 통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논문의 영어 번역본에는 바르트가 큉의 논문을 읽고 써 보낸 소감문도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바르트는 그 글에서 큉이 자신의 신학을 편견 없이 잘 이해하고 있다며 따뜻한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가 바로 가톨릭의 사제요 신학자인 그가 오히려 개신교에서 더 사랑받고 인정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세계 언론들은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여전히 <반항아 신학자> <가톨릭의 문제아> <현대 신학계의 이단자> <판을 뒤엎는 현대주의 가톨릭 신학자>라는 말로 한스 큉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유는 그가 일찍부터 <교황에게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교황 무오설>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가톨릭의 지도부 선정 기준과 절차가 전혀 복음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난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사제 독신제 폐지와 여성 사제 서품 등도 강력 주장했고, 교황청을 향해 줄기차게 마르틴 루터의 사면과 복권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로마 교황청은 1970년 그를 종교재판에 회부하여 신학 교수직과 설교권을 박탈합니다. 그러나 사제직은 파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마르틴 루터 이후 가장 도전적인 사제이자 신학자라고 말하는데, 한편 개신교에서는 1992년 독일교회총회(EKD)가 그에게 신학자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인 <칼 바르트 상>을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한스 큉은 대단한 음악 애호가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모짜르트>와 <리차드 바그너> 음악에 조예가 깊어 <모짜르트, 초월의 흔적들>이란 저술을 발표하기도 했고, 리차드 바그너의 손자인 볼프강 바그너의 요청으로 오랫동안 바그너 음악제인 <바이로이트 음악제>의 기획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책들은 다 두껍습니다. 800페이지가 넘는 책들이 허다함에도 60여 권에 달하는 그의 저작들은 모두 세계 신구교 신학도들의 필독서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왜 그리스도교인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프로이트와 신의 문제> <세속 안에서의 자유> 등은 그의 신학과 사상이 얼마나 깊고, 그의 지적 세계가 얼마나 다양하며 전문적인가를 보여주는 명저작들로 꼽힙니다. 

 

다시 한 번 마음으로부터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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