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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구하자!

 

 

<솔로몬>하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빼어난 현군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가장 피비린내 나는 골육상쟁의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처절한 권력 투쟁의 암투와 모살 끝에 왕권을 쥔 후부터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왕위에 오르긴 했지만 더 이상 칼을 휘두르는 방식으로는 백성을 다스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가 하나님께 <지혜로운 마음>을 얻고자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으리라>(왕상 3:11-12)하시며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지혜의 은사를 부어주셨습니다.

 이로써 그는 가장 포악한 군주가 될 수도 있었던 기로에서 역사상 가장 뛰어난 현군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지혜를 얻어 영특해졌다는 것은 갑자기 머리가 좋아졌다는 뜻이기 보다 문제 해결의 방도가 변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즉 칼의 논리와 칼에서 최후의 보장을 찾던 종래의 신념을 버리고, 생명을 중시하고 생명 구하는 일을 자기 통치 철학의 기초로 삼았다는 사실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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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솔로몬 앞에 어느 날 몹시 난해한 미션 하나가 주어집니다. 

몸을 파는 두 여인이 그 씨를 알 수 없는 한 아기를 놓고 진실 게임을 벌인 것입니다.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소유권을 놓고 서로 우기며 왕 앞에서까지 막무가내로 다투는 모습이라니 참 어이가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요즘 같으면야 DNA 검사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당시로서는 여간 난감한 송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재판석에 앉은 솔로몬은 흥분하지도 격노하지도 않은 채 태연히 <칼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가장 당혹스러워한 것은 역시 명령을 받은 신하들이었습니다.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저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인에게, 반은 저 여인에게 주라!>(왕상 3:25). 

 

그렇습니다. 소유권을 확정하는 방식에 있어서 칼처럼 분명한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소유권 분쟁에서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언제나 이것은 내 것이고 저것은 네 것이라는 식의 날카로운 칼질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과정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곧 <생명과 소유의 대립>이었습니다. 칼은 소유를 확정해주는 대신 생명을 앗아갑니다. 반면 소유를 포기하면 아기의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택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바로 여기에 지혜의 핵심이 있습니다. 솔로몬의 위대한 지혜란 바로 그 첨예한 대립각 한가운데서 결국은 생명의 힘이 칼의 힘을 이길 것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었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은 모두가 칼을 휘둘러 소유의 경계를 획정하는 사회를 당연시하고, 그 과정에서 더러 상처가 나고 피를 보는 일이 생겨도 그것은 불가피하다고 여기는 시대입니다. 

이를테면 잠결에 자기 아기를 질식시켜 죽인 여인은 소유를 위해서라면 때로 한 생명이 죽어나가는 일쯤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형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런 사람은 소유 대신 생명을 지키려는 노력을 어리석은 행위로 규정하고 그 과정에서 남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 따위는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리고 세상 지혜란 바로 그런 일들을 교묘히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퇴임을 불과 며칠 남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미 하원의 탄핵안 가결은 미국 정치의 삭막한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냈을 뿐 아니라 지구촌 최고의 권력가라도 그  칼을 함부로 휘두르면 결국은 법의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는 준엄한 교훈을 남긴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게 다 탐욕과 미련함 무모함의 결과입니다. 

트럼프의 탄핵소추안 혐의는 <내란 선동>, 내란을 막아야 할 최후의 일인자가 도리어 내란 선동죄로 탄핵되는 이 기막힌 이율배반! 그래서 진정한 지혜란 현실 속의 허구를 꿰뚫어 보며 거짓을 고발할  뿐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서슬 퍼런 칼마저도 녹이는 생명의 열정을  가리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이 암울한 새해에도 꼭 구해야 할 하나님의 은혜란 <내 것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어느 창녀의 교활한 꾀나 터무니없는 탐욕이 아니라 솔로몬처럼 오직 생명을 구하는 멋진 꿈과 지혜라는 것을!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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