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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thegreen.or.kr/files/attach/images/59/585/058/9f59143f7c7d23456f06ff8bb175b5fd.jpg" class="image-placeholder">20201220.jpg</a><span>
</span><!-- paragraph:p0001 -->
<p><br></p>
<span>
</span><!-- paragraph:p0002 -->
<p><br></p>
<span>
</span><!-- paragraph:p0003 -->
<p class="p1"><strong><span>가정예배 기도문</span></strong></p>
<span>
</span><!-- paragraph:p0004 -->
<p class="p2"><br></p>
<span>
</span><!-- paragraph:p0005 -->
<p class="p1"><span>주님, 기온이 몹시 내려간 이 주일 아침, 저희들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이렇게 교회가 아닌 각 가정에서 주일예배를 드립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span>
</span><!-- paragraph:p0006 -->
<p class="p1"><span>지금도 연일 확진자들이 천 명 이상씩 쏟아지고 있어서 몹시 안타깝고, 그래서 또 여러 가지로 우려되는 바가 커 그저 하루하루가 불안하기만 합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더는 버티기 힘들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소상공인들도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span></p>
<span>
</span><!-- paragraph:p0007 -->
<p class="p2"><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span>
</span><!-- paragraph:p0008 -->
<p class="p1"><span>주님, 저희를 도우시고 구하사 하루 속히 &lt;코로나19&gt;를 물리치고, 사회 모든 분야가 정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span>
</span><!-- paragraph:p0009 -->
<p class="p1"><span>특히 금주는 성탄주간입니다. 금요일이 성탄절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span>
</span><!-- paragraph:p0010 -->
<p class="p1"><span>올해도 친히 이 병들고 누추한 세상에 오사 지구촌 모든 이들의 삶과 심령에 부디 평화와 생명의 빛을 비춰주시옵소서.</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span>
</span><!-- paragraph:p0011 -->
<p class="p1"><span>주일에는 당연히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예배당에서 성도들이 함께 주일예배를 드려야 마땅하오나</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그렇게 하지 못하는 저희의 딱한 사정을 헤아리사 이 시간도 예배의 영이신 성령으로 함께 하셔서 신령과 진정으로 산제사 드리기에 부족함이 없게 해주시옵소서.</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span>
</span><!-- paragraph:p0012 -->
<p class="p1"><span>환자들을 안수하시고, 가정예배 조차도 드릴 사정이 못되는 성도들을 위로해 주시옵소서.</span></p>
<span>
</span><!-- paragraph:p0013 -->
<p class="p2"><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span>
</span><!-- paragraph:p0014 -->
<p class="p1"><span>언제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를 찾아 하늘의 만복을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span></p>
<span>
</span><!-- paragraph:p0015 -->
<p class="p1"><span><br></span></p>
<span>
</span><!-- paragraph:p0016 -->
<p class="p1"><span><br></span></p>
<!-- paragraph:p0017 -->
<p><span>

</span></p>
<!-- paragraph:p0018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YQLvHkb8IAk" title="미디어 원본"></a></span><br><!-- paragraph:p0019 -->
<p></p>
<!-- paragraph:p0020 -->
<p class="p1"><span>20201220m</span></p>
<!-- paragraph:p0021 -->
<p class="p1"><span>마 2:1-12</span></p>
<!-- paragraph:p0022 -->
<p class="p1"><span>문전박대(</span><span>門前薄待)</span></p>
<!-- paragraph:p0023 -->
<p class="p2"><br></p>
<!-- paragraph:p0024 -->
<p class="p2"><br></p>
<!-- paragraph:p0025 -->
<p class="p1"><span>이 세상에는 종교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종교들은 구도의 종교입니다. 도식적으로 표현하면, 모두 상향식 종교입니다. 인간이 애써 하나님을 찾아가는 종교입니다. 도를 닦고, 수행하고, 선을 행하고, 율법을 지키고, 공덕을 쌓고, 참선하고, 시주하고, 면죄부를 사고, 치성을 드리면서 어떻게든 하나님을 만나고 찾으려고 몸부림칩니다. 이것이 세상의 종교들입니다.</span></p>
<!-- paragraph:p0026 -->
<p class="p2"><br></p>
<!-- paragraph:p0027 -->
<p class="p1"><span>티벳 불교의 오체투지라는 고행을 아시지요? 온몸을 던져 양 팔꿈치와 두 무릎, 이마가 땅에 닿도록 엎드려 절하는 의식이 오체투지입니다. 이렇게 오체투지를 하며 그 험준한 티벳 산맥을 오르고 강을 건너고, 여름 겨울을 가리지 않고 몇 년씩 수백 킬로미터를 순례해서 천신만고 끝에 성지인 라싸까지 가서 랑구스 사원에 계신 부처님을 뵙습니다. 그 고행의 순례가 얼마나 처절한지 상상을 초월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8 -->
<p class="p2"><br></p>
<!-- paragraph:p0029 -->
<p class="p1"><span>이것은 극단적인 예입니다만, 실은 이것이 이 세상의 종교들입니다. 인간이 온몸을 던지며 해발 4천 미터가 넘는 고원 라싸까지 가서 신을 찾고, 신을 만나기 위해 오체투지도 불사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인간이 신을 찾거나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30 -->
<p class="p2"><br></p>
<!-- paragraph:p0031 -->
<p class="p1"><span>1961년 인류 최초로 우주를 비행한 옛 소련의 우주 비행사 가가린이 우주에서 돌아와 기자회견을 하면서 남긴 첫 마디는 ‘우주에 나가봤더니 그 어디에도 하나님은 없더라’였습니다. 아무리 로켓을 타고 우주를 이 잡듯 뒤진다 해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물리적인 세계가 아니라 초월세계에 계십니다. 전혀 차원이 다른 영적, 초자연적 세계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우주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처절한 오체투지를 하며 하늘 아래 첫 성지라는 라싸까지 순례를 한들 거기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32 -->
<p class="p2"><br></p>
<!-- paragraph:p0033 -->
<p class="p1"><span>여러분, 기독교와 타종교의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기독교와 타종교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타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상향식 종교지만, 기독교는 그와 반대로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 이 땅에 내려오시는 하향식 종교입니다. 이것이 결정적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절대 하나님을 찾아갈 수 없다고 합니다. 오체투지도, 로켓을 타고 우주로 가도 절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려면 반드시 상향식이 아닌 하향식,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방식이 아닌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는 방식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양자의 해후가 성사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34 -->
<p class="p2"><br></p>
<!-- paragraph:p0035 -->
<p class="p1"><span>여러분, 우리가 기다리는 성탄이 무엇입니까? 왜 성탄이 복되고 감사한 것입니까? 성탄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서 만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기 위해 사람이 되사 이 땅에 탄생하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탄생, 크리스마스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인간을 찾아 위에서 내려오신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 실현된 것이 성탄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36 -->
<p class="p2"><br></p>
<!-- paragraph:p0037 -->
<p class="p1"><span>구약 창세기 28장에 나오는 야곱의 사다리는 기독교의 본질을 그림처럼 계시한 사건입니다. 야곱의 사다리는 야곱이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설치한 사다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만나기 위해 위에서 아래로 설치한 사다리입니다. 우주에서 나라는 존재는 정말 먼지 같고, 지렁이보다 더 보잘것 없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그런 나를 찾아 굳이 이 땅에 성육신하신 사건이 성탄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성탄을 기뻐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주님을 우리가 진심으로 반기고 환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38 -->
<p class="p2"><br></p>
<!-- paragraph:p0039 -->
<p class="p1"><span>그럼에도 2,000년 전 첫 성탄 때는 결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요한복음 1장 10절 말씀 그대로였습니다. “이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그를 알지 못하였고, 그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그를 영접하지 아니하였더라” 다 무심했고, 반기지 않았고, 심지어는 적대하며 죽이려고 하기까지 했습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그랬을까요?</span></p>
<!-- paragraph:p0040 -->
<p class="p2"><br></p>
<!-- paragraph:p0041 -->
<p class="p1"><span>우선 정치가요 권력가인 헤롯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헤롯은 주님 성탄 때 유대의 왕이었습니다. 어느 날 동방에서 박사들이 나타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하니까, 그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자기가 왕인데 또 왕이 태어났다고 하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7-8절을 보십시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이렇게 가만히 불렀다, 자세히 물었다, 자세히 알아보라며 지대한 관심을 헤롯은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을 경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2장 16절입니다.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헤롯이 그의 본색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성탄하신 주님을 없애기 위해 베들레헴 일대의 수많은 영아들까지 무참히 살해한 사악한 인물이었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42 -->
<p class="p2"><br></p>
<!-- paragraph:p0043 -->
<p class="p1"><span>어느 시대나 정치가, 권력가들은 결코 주님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성탄을 진심으로 반기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로든 주님이 자기들의 권력에 도움이 안 되고 위협이 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일단 적대하지 결코 우호적이거나 관대하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첫 성탄 때도 이렇게 주님을 해치려고 했는데, 결국은 마지막에도 유대인의 왕과 로마 황제의 이름으로 주님을 십자가에 답니다. 그들이 주님의 십자가에 붙인 공식적인 죄패는 유대인의 왕이었습니다. 주님이 유대인의 왕노릇을 했기 때문에 십자가형에 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정치권력이 주님을 자신들의 적대자로 보았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어느 시대나 정치가와 권력가들은 늘 주님의 천적이었습니다. 말로는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겠다고 하지만 속내는 기회만 있으면 해치려고 했습니다. 따라서 헤롯이야말로 모든 시대의 정치가, 권력가들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44 -->
<p class="p2"><br></p>
<!-- paragraph:p0045 -->
<p class="p1"><span>다음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입니다. 그들은 직업적 종교인, 대표적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성탄에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본문 4절 이하입니다.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들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동방박사들이 찾아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하고 묻자 헤롯이 깜짝 놀라 당장 성경 전문가들이요 박사들인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불러 자문을 구합니다. 그들은 고민하거나 지체하지 않고 즉각 정답을 말합니다. 유대 베들레헴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구약 미가서 5장에 나오는 예언을 그 근거로 제시합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과연 그들은 성경 박사다웠습니다. 구약에서 예언한 대로 정확하게 주님의 탄생지를 베들레헴이라고 특정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누구보다 먼저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성탄하신 주님을 뵙고 경배했습니까? 놀랍게도 그들 중 누구 하나도 베들레헴으로 달려갔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들은 남에게는 그리스도의 탄생지가 베들레헴이라고 족집게처럼 가르쳐줬지만, 정작 자기들은 성탄하신 주님을 찾아갈 생각은 안 했던 위선자들이고 철저한 외식자들이었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46 -->
<p class="p2"><br></p>
<!-- paragraph:p0047 -->
<p class="p1"><span>여러분, 이것이 바로 직업적 종교인들의 모순과 한계입니다. 타성에 젖고 종교적 기득권에 안주해 살다보면 결국은 자기도 모르게 주님의 성탄에 대해 무심하거나 그리 달가워하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아무리 저명한 종교 지도자고, 아무리 성경과 신학에 해박한 선생이고 박사면 뭐합니까? 교만하고 완고하여 오히려 주님을 배척하고 성탄을 거부하는 세력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탄뿐 아닙니다. 이 종교 지도자들이 끝까지 가장 집요하게 주님을 거부한 세력이었습니다. 당국에 주님을 고발하고, 백성들을 선동해서 주님을 성토하고 외세인 빌라도를 압박해 기어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사실 주님의 십자가는 종교인들과 정치인들이 야합해서 만들어낸 합작품입니다. 거기에 군중들은 들러리로 동원되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첫 성탄은 가장 앞장서서 환영하고 가장 모범적으로 영접해야 할 종교인들, 종교 지도자에게서도 환영받지 못한 가운데 이루어진 가장 쓸쓸한 사건이었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48 -->
<p class="p2"><br></p>
<!-- paragraph:p0049 -->
<p class="p1"><span>다음은 여관 주인입니다. 이 사람은 사업가입니다. 누가복음 2장 7절입니다. “첫 아들을 낳아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였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마리아가 외양간에서 예수님을 낳아 말구유에 뉘였는데, 당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 말은 방이 다 찼다기보다는 방값이 너무 비쌌거나 웃돈을 얹어주지 못해 방을 구하지 못했다는 뜻일 것입니다. 지금도 관광지나 피서지에는 시즌 때 바가지요금이 극성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당시에 힘 있는 권력가가 와서 방을 달라는데 없다며 주지 않았겠습니까? 돈 많은 사람이 와서 몇 배로 돈을 더 준다는데 방이 없다고 했겠습니까? 결국 여관 주인은 돈벌이에 급급해서 자기 집까지 찾아온 주님을 문전박대하여 내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관 주인은 오직 돈만 아는 모든 시대의 사업가와 장사치를 대표합니다. 요즘도 마찬가집니다. 너무 돈벌이에만 연연하고 자기 이익에만 몰두하면 결국 찾아 온 주님마저도 내쫓는 불행이 발생합니다. 사실 첫 성탄 때 가장 주님 가까이에 있던 사람이 여관 주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결국 주님을 영접치 못하고, 영접은커녕 찾아오신 주님마저 마굿간으로 구유로 내쫓고 말았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50 -->
<p class="p2"><br></p>
<!-- paragraph:p0051 -->
<p class="p1"><span>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시민들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다고 합니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해 곧바로 헤롯 왕을 찾아간 게 아니라, 처음에는 예루살렘 거리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을 붙잡고 탐문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노라는 소리에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그들 중 누구 하나도 불과 7km 떨어진 20리도 안 되는 베들레헴까지 달려가 주님의 성탄을 확인하고 경배했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방인이요 이교도인 동방박사들은 저 먼 페르시아, 지금의 이란에서 2년 동안이나 순례를 해 성탄하신 유대인의 왕을 찾아 예루살렘까지 왔는데, 정작 메시아를 손꼽아 기다린다는 유대인들, 예루살렘의 시민들은 그들의 코앞에서 이루어진 주님의 성탄에 대해 그토록 무지하고 무심했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52 -->
<p class="p2"><br></p>
<!-- paragraph:p0053 -->
<p class="p1"><span>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은 그야말로 맹목적인 대중이고 맹목적인 다수였을 뿐입니다. 소동은 벌였지만 개념은 없었습니다. 원래 그렇습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찬물을 부은 듯 온 세상이 얼어 붙었지만, 원래 성탄 때는 세상 사람들이 더 요란하고 극성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벌이는 소동은 주님의 성탄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보십시오. 2020년 전 첫 성탄 때는 정치가, 종교가, 상인, 예루살렘 시민들이 다 주님 성탄에 대해 우호적이지도 않았고, 무심하거나 차라리 적대적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다들 요란만 떨지 진심으로 주님의 성탄을 반기고, 성탄하신 주님을 그 중심에 영접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span></p>
<!-- paragraph:p0054 -->
<p class="p1"><span><br></span></p>
<!-- paragraph:p0055 -->
<p class="p1"><span>여러분, 혼란한 이 코로나 정국 아래에서도 우리 만큼은 그래도 정신을 차립시다. 더욱 자신을 비우고 모든 것을 겸허히 내려놓고 아기 예수님을 맞을 채비를 합시다. 우리 중에는 누구도 나를 찾아 이 비천한 땅에 성탄하신 주님을 문전박대하여 내쫓는 못난 인생들이 되지 맙시다. 그래서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올 성탄 역시 기쁨과 보람과 따뜻한 은혜가 여러분과 가정에 충만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56 -->
<p></p>
<!-- paragraph:p0057 -->
<p></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