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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3m] 지성의 하나님 (호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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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기도문

주님, 주일 아침 교회가 아니라 다시금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벌써 세 번째 비대면 예배고, 또 올해는 더 이상 교회 현장 예배가 가능할 것 같지 않아 더욱 마음이 착잡합니다. 하오나 각 가정에서나마 하나님을 예배하며 주일을 지킬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하옵나이다. 

부디 신령과 진정으로 산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예배의 영이신 성령으로 함께해 주시옵소서.

특히 오늘은 주님 오심을 고대하며 준비하는 대강절 셋째 주일이자 온 세계 교회가 함께 지키는 성서주일입니다. 

더욱 자신을 비우며 진심으로 주님의 성탄을 고대하며, 또 성경을 주사 저희로 하여금 복음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예배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올해도 슬픔 많고 아픔 많은 이 땅에 꼭 새롭게 성탄하사 병든 세상을 치유해 주시고, 가난한 심령들을 위로하시며 격려해 주시옵소서. 무엇보다 지금 이 지구촌을 공포에 떨게 하며 고통과 혼란에 빠뜨린 <코로나19>로부터 저희 모두를 구하시고 지키사 하루 속히 모두가 제자리를 찾고 또 정상화되도록 축복해주시옵소서. 

그래도 백신 개발에 일정한 성과를 보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공급에도 함께 하사 하루 속히 <코로나19>를 제압하고 퇴치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의 이름으로 예배하는 모든 가정들을 찾아 가사 환자들을 안수해 주시고, 가정예배 조차 여의치 않아 무거운 마음으로 기도하는 성도들도 기억하사 위로해 주시옵소서. 또 말씀을 들을 때 비록 현장은 아니지만 집중력 잃지 않게 하시고, 성령으로 역사하사 깨달음과 감동을 얻으며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언제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를 찾아 하늘의 신령한 복을 허락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01213m

호 6:1-6

지성의 하나님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오늘은 성서주일입니다. 전에는 12월 둘째주일을 만국성서주일이라고 했습니다. 전 세계 교회가 함께 지키는 기념주일이어서 그렇게 불렀습니다. 한국 교회도 성서주일을 지킨 지 10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선교 초기인 1895년 영국 성서공회의 도움으로 대한성서공회가 출범하면서부터 지키기 시작했으니까 올해로 벌써 125년이나 되었습니다. 세계 교회가 오래 전부터 성서주일을 함께 지킨 이유는 성경을 함께 연구하고, 보급하고, 성경이 우리 신앙에 절대적인 규범임을 함께 고백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18세기 프랑스의 볼테르라는 오만한 사상가가 있습니다. 그는 18세기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는 특히 기독교를 신랄히 비판하고 날카롭게 풍자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공공연하게 성경을 죽은 책이라고 했고, 화석화된 고전이라고 하면서, 앞으로 100년만 지나면 박물관에서나 겨우 볼 수 있을 것이라 장담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죽은 지 30년 만에 주로 그의 책만을 전문적으로 출판해온 볼테르 출판사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더 이상 그의 책을 출판하지 못하고 대신에 성경을 인쇄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그가 죽은 지 100년이 지난 1880년에는 파리 샹제리제 6번가에 있는 그의 생가는 프랑스 성서공회가 되어 오늘날까지도 그의 집에서 성경이 제작되고 있습니다. 그가 앉아서 성경을 비웃던 서재에는 지금도 바닥에서 천정까지 프랑스어와 영어로 제작된 성경이 가득 쌓여 있습니다. 볼테르는 이미 242년 전인 1778년에 죽었지만, 그가 죽은 책이라고 단언했던 성경은 아직도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실은 성경이 아무리 많이 제작되고 보급된다 해도,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 않으면 그야말로 그의 말처럼 죽은 책일 수밖에 없고 화석화된 고전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보고 듣고 공부해야 비로소 내 영혼에 양식이 되고, 피와 살이 되고, 내 심령 골수를 찔러 쪼개는 좌우의 날선 검이 되고, 운동력 있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되지, 덮어만 두면 그저 2000년 전, 3000년 전에 기록된 고전일 뿐이고, 그냥 들고만 다니는 그리스도인들의 액세서리요 구색일 뿐입니다.  


우리 교회가 야탑동에 있을 때 한번은 제가 차병원에 입원한 환자를 심방하면서 성경 한 군 데를 읽었습니다. 이사야 44장 21절 이하입니다. “야곱아 이스라엘아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나의 종이니라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 하리라 내가 네 허물을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 하였나니 이제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그분이 제가 읽어준 그 말씀을 가만히 듣더니 매우 진지하고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목사님, 성경에 이런 말씀도 있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의 나이는 그때 이미 50세가 넘었고, 그 나이만큼 신앙생활을 한 분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그분 말에 제가 더 놀랐습니다. 평생을 신앙생활 하신 분이 어찌 그 말씀을 처음 들었겠습니까. 그때까지는 건성이었겠지요. 그러나 그 날은 병상에서 들었기 때문에 그 느낌이 전혀 달랐던 겁니다. 


그런가 하면 제가 아는 또 한 분은 친구에게 이끌려 마지 못해 정말 본의 아니게 한 시간 주일예배에 참석했는데, 그날따라 목사님이 예배를 시작하는 묵도 시간에 "나는 지붕 위의 한 마리 참새처럼 외롭습니다"라는 시편 102편을 낭독했는데, 그 말씀에 필이 꽂혔습니다. 그 말씀에 어쩌면 그렇게도 공감이 되고, 당시 자신의 처지를 아프게 지적했던지, 자기도 모르게 펑펑 울고 나서 그날로 등록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분이 벌써 안양 그 큰 교회의 은퇴장로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제가 가끔 가면, 그분이 그 얘기를 합니다. 


본문 3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마지막 6절도 보십시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제사보다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더 원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은 절대 맹목적 예배가 아니라 우리가 먼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고 나서 예배하기를 바라신다는 말씀이고 요구입니다. 이처럼 믿음이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바른 응답이요 순종이지 결코 맹목적이거나 형식적, 의식적 제사가 아닙니다. 예배는 신앙생활의 꽃인데, 그 예배보다 제사보다 양을 잡아 바치는 번제보다 말씀이 먼저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예배도 제사도 번제도 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바르게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꽃보다 말씀입니다. 성경은 절대 우리에게 맹신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바로 알라고 합니다. 믿어도 알고 믿으라고 합니다. 제사도 번제도 다 알고 드리라고 합니다.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하나님은 제사보다 번제보다 꽃보다 여호와를 아는 것을 더 원하신다는 이 말씀이 얼마나 기막히고 정확한 말씀입니까?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는 의식이나 제사를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알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주일날 예배 의식에 한 번 참석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떼우려고 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무속이나 미신에는 말씀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오직 치성만 있습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님께 비나이다.' 천지신명이란 특정한 신이 아니라 천지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신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신이든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천신이든 산신이든 목신이든 그 어떤 신이든 그저 내 소원만 들어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화수 떠놓고 빌고, 갖바위 앞에서 빌고, 당나무 앞에서 빌고, 달 보고도 빌고, 정월 초하룻날 새벽에는 저 강원도 정동진까지 가서 일출을 보면서 빕니다. 이렇듯 무속이나 미신은 내 소원이 전부이지 그 대상은 알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관한 바른 지식이 가장 중요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을 알아야 그분의 뜻과 요구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바르게 응답하며 제대로 기도하고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옛날에 미신과 우상 섬기던 버릇 그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을 내 욕심을 채워주는 수단이나 도구쯤으로 생각합니다. 돈 잘 벌고, 건강하고, 좋은 학교 들어가고, 취직 잘 되고, 결혼 잘 하고.... 그래서 우리는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잘 해주기만을 바라지 하나님이 누구시고, 영원이 무엇이고, 거룩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믿는 것이 바르게 믿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관심도 없습니다. 


여러분, 실은 그래서 우리가 자주 흔들리고 회의에 빠집니다. 일이 조금만 잘 안 되면, 툭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정말 계신지, 정말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을 계속 믿어야 하는지 아닌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무지한 소치입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이 왜 실패했습니까? 하나님이 분명 아말렉을 다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짐승까지도 다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사울은 아말렉 왕 아각도 잡아 오고 소떼와 양떼도 전리품으로 끌고 왔습니다. 그는 핑계 대기를, 여호와께 제사하기 위해 그것들을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 책망하시기를,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바르게 순종하는 것이지 절대 자기 뜻과 생각이나 판단, 소원을 관철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이 비록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것이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해야지 자기 고집과 자기 편리한 대로 한다면, 그것은 제사가 아니라 불순종의 죄악입니다. 열심도 헌신도 희생도 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이고 하나님 뜻에 대한 바른 응답일 때만 믿음이지, 그렇지 않은 경우는 모두 거역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고도로 지성적인 분입니다. 그분은 지성과 지식의 원천이요, 지혜의 본체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그런 지성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뜻에 다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성을 닮은 지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나 지성적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믿음도 당연히 반지성적이지 않고 지성적이어야 합니다. 알고 믿어야 한다는 겁니다. 


기독교 신앙의 특징은 모르면 못 믿는다는 데 있습니다. 아무리 믿습니다를 주문처럼 반복한다 해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내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안 믿어집니다. 왜 그럴까요? 믿음이란 근본적으로 대상에 대한 신뢰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신뢰란 반드시 그 대상에 대한 참된 지식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신뢰합니까?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기혼인지 미혼인지, 사기꾼인지 전과 10범인지를 알아야 우리는 믿을 수 있습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과 결혼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든 하나님이든 아는 만큼만 믿습니다. 모르면 모르는 만큼 못 믿습니다. 


호세아 4장 6절에는 더욱 충격적인 말씀이 나옵니다. "내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하는도다" 맞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으면 망하는 도리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섬길 수 있겠습니까? 부디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 가십시다. 주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더 많이 쌓아갑시다. 기독교 신앙은 지혜와 지식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그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반드시 지성적이어야 합니다. 우리 푸른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하는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풍성해서 크게 흥하는 복 있는 백성이 되길 기원합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소개하면서 말씀을 맺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원문 자료와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