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과 물병 (삼상 26:1-12)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창과 물병
삼상 26:1-12
사울이 다시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을 잡기 위해 십 광야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미 정탐꾼을 통해 사울의 동선과 진 친 곳을 다 확인했고, 심지어는 사울 군대의 진영 사정까지 다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7절).
그래서 다윗의 측근들이 다시 원수 갚기를 청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8절). 하기야 무방비 상태로 자고 있는 사울에 대해 그같이 하기란 결코 어렵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역시도 다윗은 사울에 대한 복수를 허락하지 않으며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합니다.
① <누구든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9절). 이는 다윗의 일관된 신념입니다. 여호와께서 택하신 기름 부은 자의 생명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의 생명을 함부로 침해하는 것은 곧 여호와의 주권을 침해하고 모독하는 결과가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윗은 그러한 원칙에 철저히 입각하여 사울 왕의 생명 또한 오직 하나님께만 맡겼던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이 사울을 해치지 않은 것은 그의 관대한 성품이나 정치적 고려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신앙적인 이유에서였음을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②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라>(10절)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결국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주권적인 심판을 행사하실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이번 역시 사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12절)만 챙겨서 그 자리를 빠져나옵니다. 그것으로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의 증거를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아무도 그를 보거나 눈치 채지 못했다>(12절)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신념과 판단, 행위를 전적으로 인정하시고 돕고 계셨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을 인정하고 존중한 다윗을 기뻐하셨고, 다윗은 다윗대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며 <선으로 악을> 이긴 것입니다(롬 12:1).
<적용>
-벌써 두 차례나 결정적인 기회가 있었음에도 사울을 해치지 않은 다윗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4:16-22를 읽고 오늘 본문과 한 번 비교해 보십시오.
-본문 6절의 <헷 사람 아히멜렉>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기도>
주님, 벌써 두 번째 똑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윗이 결단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사울에게 보복하고 그의 목숨을 해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다윗의 입장은 분명했습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사람이 심판할 수 없다는 것이고, 결국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당신의 뜻대로 치리하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창과 물병만 가져오고 생명을 해하지 않았습니다. 그 처분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맡긴 것입니다. 부디 저희에게도 이런 다윗과 같은 믿음을 주사 하나님의 주권에 모든 걸 맡길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