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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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뿔사, 결국 올해는 성탄절마저도 초유의 비대면 예배가 될 공산이 커졌습니다.
지금 인류는 <제3차 세계 대전> 중이고, 공동의 적은 <코로나> 바이러스입니다.
이 전쟁이 얼마나 치명적인 악전고투인가는 통계 수치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실시간 통계 사이트인 <월드오미터>(Worldometers)에 의하면 11월말 현재 지구촌 213개국으로 번진 <코로나19> 총감염자 수는 6천2백5십5만2천652명, 누적 사망자수는 1백45만7천678명입니다.
사실 우리는 늘 위기 속에서 삽니다.
위기는 어느 한 시기뿐 아니라 순간순간 우리의 삶을 엄습합니다.
올해도 느닷없이 불어 닥친 모진 환난의 바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절망하며 확진자가 되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뭔가 굳게 붙잡을 수 있는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굳이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우리에게는 으례 밤이 있고, 겨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고,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음을 믿는 사람들은 결코 쓰러져 죽지 않습니다. 밤이란 지나간 시간에서 보면 점점 깊어가는 것이지만 다가올 새벽이나 내일을 기점으로 보면 그만큼 새날에 가까워진 것이 되니까요. 특히 우리 믿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꽉 막힌 것 같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어두움이 짙은 것 같아도 그 암흑의 틈새를 뚫고 비쳐오는 내일의 여명을 앞당겨 봄으로써 늘 희망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맞습니다. 확실히 지금은 낮이라면 해가 기우는 황혼이요, 밤이라면 사방이 캄캄한 깊은 환난의 심연입니다. 바울은 <밤이 깊고 낮이 아까웠으니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 13:11~)고 했습니다. 마치 겨울나무들이 서풍을 이용해 스스로는 떨칠 수 없는 낡은 잎들을 깨끗이 날려버리듯 어떤 역경이 닥칠 때 흔들리는 삶에 불안해하기보다 오히려 그 환난의 바람을 이용해 자기 삶의 모든 장애물들을 과감히 정리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어두움의 일들을 벗자고 한 것은 결국 보다 참된 것을 붙잡기 위해서이고 우리에게는 그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라는 희곡은 아일랜드의 극작가 사무엘 베게트의 노벨상 수상작입니다.
희곡의 기본 구성에 따라 2막으로 이루어진 그 작품은 부랑자인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날마다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린다는 내용입니다. 기승전결도, 논리적인 인과관계도 없는 이 작품을 사람들은 흔히 난해하다고 평가하지만 저는 오히려 작가가 <고도>의 의미와 정체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폭넓은 보편성을 획득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끝까지 <고도>에 대해 함구하며 오직 인간 실존의 부조리만을 <기다림>으로 형상화합니다. 따라서 <고도>는 시대에 따라, 각자의 삶의 자리에 따라 <해방>이 될 수도, <자유>가 될 수도, <빵>이 될 수도, <사랑>이 될 수도 있고, 2020년을 사는 이 지구촌 인류에게는 <코로나19> 백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고도>를 기다린 지 10여 개월, 이제 백신 소식이 들려오고, 영국에서는 벌써 접종이 시작됐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궁극의 <고도>는 결코 <코로나> 백신이 아닙니다. 올해도 예외 없이 인류의 희망으로 성탄하실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모든 저주와 죽음으로부터, <코로나19>로부터 영원히 구해주실 진정한 <고도>이시고, 항구적인 <백신>이십니다.
부디 <백신>을 기다리고, 늘 <고도>를 기다리며 사는 당신에게 주의 성탄으로 말미암은 영원한 죽음의 항체가 생성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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