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6m] 가인의 인권 (창 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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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6m
창 4:8-15
가인의 인권
(창 4:8-15, 개정)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작년 4월이었지요. 경남 진주에서 발생한 끔찍한 방화 살인사건을 기억하십니까? 안인득이란 사람이 한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탈출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살해하고, 무려 17명을 다치게 한 끔찍한 사건입니다. 그 안인득에 대해 법원은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배심원으로 참석한 국민 9명 중 8명이 사형의 소견을 냈습니다. 그러니까 22명 사상자를 낸 방화 살인범 안인득에 대한 판단은 검찰도, 시민인 배심원도, 재판부도 다 같았습니다. 특히 배심원들의 평결을 볼 때, 국민 대다수는 아마 법원의 사형판결에 동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주님이 만약 그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석하셨다면 어떤 의견을 내셨을까요?
본문을 보십시오. 형이 동생을 쳐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입니다. 따라서 죄 없는 아벨을 돌로 무참히 살해한 가인은 극형에 처해 마땅하고, 정상참작이나 동정의 여지가 없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이런 살인자는 이 땅의 정의와 질서를 위해서 일벌백계하는 게 옳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상하게 전개됩니다. 살인자 가인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가 우리의 상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인자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시고, 심지어는 그를 적극 보호하시며 편을 들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14절 하반절 이하입니다.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하나님이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더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시며, 그 살인자에게 표를 주어서 그로 하여금 죽임을 면케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가인에게 주신 표는 히브리말로 <오트>입니다. 친동생을 죽인 가인에게 극형 대신 그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주신 표를 해석하기 위해 수많은 학자들이 노력했습니다. 헤르만 헤세도 이 표에 대해 길게 얘기합니다. 하지만 명쾌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히틀러도 이 가인의 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가슴에 다윗의 별을 달게 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국기에는 다윗의 별이 그려져 있습니다. 히틀러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에게 내리신 저주의 표라며 주홍글씨처럼 그 다윗의 별을 달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 표를 달고 있는 사람의 인권은 무시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주신 표는 히틀러가 붙인 다윗의 별 같은 게 아닙니다. 그것은 빨간 딱지 낙인이 아니라, 죄인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최초의 존중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인자의 인권을 재신임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준엄한 하나님의 경고의 표가 가인이 받은 표입니다.
사실 당시 가인은 동생을 살해한 후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습니다. 11절 하반절 이하입니다.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그러자 가인이 처벌이 가혹하다며 항소합니다. 13절입니다.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이 표를 주어 그의 생명을 보호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죄인에게도 인권이 있으므로 그 어떤 이유로도 그의 존엄을 해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살인자라는 이유로 가인을 해치거나 보복하는 자에게는 벌을 칠 배다 더하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남의 인권을 함부로 짓밟으면 칠 배의 벌을 받습니다. 그야말로 죄는 미워하되 인권은 반드시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죄가 밉다고 인간의 존엄마저 짓밟는다면 하나님이 그 죄를 칠 배나 더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성경의 인권사상 때문에, 영미 계통에서는 인권법을 가장 엄격히 다룹니다. 그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이 인권입니다. 국제사회에서 인권에 걸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북한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도 인권문제입니다.
여러분, 인권이 무엇입니까? 1948년 12월 10일에 제정된 유엔인권선언문 제1조는 인종, 성별, 종교, 이념에 따른 그 어떤 차별도 없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 인권이라고 합니다. 인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릴 권리입니다. 사람이기에 가지는 고유한 원초적 존엄이 인권입니다. 그래서 인권은 신성불가침입니다. 가난한 자도 부자도,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어린아이도 어른도, 일반 시민도 최고 권력자도 똑같이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바로 인권입니다. 인권은 후천적이거나 경험적인 것이 아닙니다. 인권은 국가나 대통령이 주는 것도 아니고, 미국이나 강대국이 주는 것도 아니고, 유엔이 나눠주는 것도 아닙니다.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나 이념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인권은 선험적이고 존재론적입니다. 백과사전에서 인권을 찾아보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당연한 권리, 권한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권을 천부인권이라고 합니다. 인권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이란 의미입니다. 그래서 인권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원초적 복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성스럽고 누구나 누리고 지켜져야 할 인류의 가장 보편적 가치입니다.
그러면 인권이 신성불가침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창세기 1장 27절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이것이 인권의 원초적 근거입니다.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우주의 수많은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는 오직 인간뿐입니다. 이것이 누구도 범할 수 없는 인권의 절대적 근거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이어서 존귀합니다. 남의 인권을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성을 유린하는 죄악이 되기 때문에 인권이란 그 어떤 개인도 이데올로기도 정치제제도 국가권력도 범해서는 안 되는 신성불가침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이 인권의 근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인권에 보다 많이 관심을 가지고 인권보호와 회복에 앞장서야 옳은 것도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인권의 성서적 기반 때문입니다. 시편 8편은 인간의 지위와 위상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5절입니다.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이기에 과장이나 허풍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 본체의 형상인 존재들이기에 본체보다는 조금 못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이어지는 6절 이하를 보십시오.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7]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생각해보십시오. 위에는 오직 한 분 하나님뿐이고, 인간 발 아래에는 만물이 다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모든 피조물을 관리하고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분신인 인간에게 이러한 지위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인권의 본질입니다. 따라서 과거 군사정권 때처럼 사람을 잡아놓고 물고문을 한다거나, 옛 일본군처럼 우리의 소녀들을 강제로 잡아가 위안부 같은 성노예로 만든다거나, 북한처럼 정치범으로 붙잡아 학대하면, 이것은 무서운 범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칠 배로 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인권유린은 생물학적 살인 이상으로 악한 범죄입니다.
사실상 우리는 다 가인의 후예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남을 미워하고 해치고 살해하며 삽니다. 우리는 권총보다 더 무서운 눈총으로 쏩니다. 칼보다 더 무서운 세 치 혀로 남의 심장을 비수처럼 찌릅니다. 주님은 이웃을 미워하면 이미 살인한 자요, 이웃의 것을 탐하면 이미 절도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오늘날까지도 건재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권이라는 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표를 주시면서까지 살인자의 인권을 재신임하신 것처럼 우리의 인권도 그렇게 보호하고 계십니다. 비록 우리가 죄를 짓고 남을 해치며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하며 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형상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주신 표, 곧 <오트>가 인권을 상징하는 말인지, 실제 마패 같은 모양인지를 확인할 길이 없지만, 실제 메달 같은 것을 주셨다면, 앞에는 하나님 형상(imago Dei), 뒤에는 누구든 이 사람을 해치면 벌을 칠 배나 받을 것이라고 적혀 있을 것 같습니다.
영락없는 가인의 후예인 우리의 목에도 하나님이 인권 메달을 걸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형제와 이웃을 해치며 사는 우리가 여전히 무사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인권표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목에 걸어주신 인권표, 곧 가인의 표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모든 인생에게 주신 이 원초적 인권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성을 뜻하는 인간 존엄, 즉 인권을 유린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성을 범하는 것입니다. 공자는 소학에서 자신의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것이 부모를 욕되게 하는 으뜸가는 불효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형상들입니다. 우리에게는 고귀한 인권이 있습니다. 살인자라고 해서 그 인권이 훼손되거나 박탈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가인에게 표를 주셨습니다. 이미 3,500년 전에 살인자들이 피해자 가족의 보복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재판을 받게 하려고 도피성 제도를 마련하셨습니다. 비록 살인자라도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최대한 인권을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게 베푸신 원초적 은혜와 복을 잘 지키고, 남의 인권도 존중해서 칠 배의 벌이 아니라 칠 배의 복을 누리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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