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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9m] 만남을 위하여 (사 61:1-3)

20201129m

사 61:1-3

만남을 위하여


(사 61:1-3, 개정)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부모, 형제, 친구, 선생님, 아내, 남편, 그리고 신앙의 형제들을 만납니다. 그런 만남이 내 삶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만남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친구 한 번 잘못 만나면 인생을 망칩니다. 배우자 한 번 잘못 만나면 평생 불행해집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는 중요한 만남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어느 것보다 소중하고 결정적인 만남인데, 일생일대의 만남인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하고 결정적일까요?


사람들은 주님과의 만남이 만나도 못 만나도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부모나 배우자와의 만남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나 친구나 배우자와의 만남이 아무리 소중하다 해도, 그것은 내가 살아 있을 때만 유효한 만남입니다. 부모가 아내나 남편이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영원히 내 곁에 있지 못합니다. 그런 일은 오직 주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 주님과의 만남에서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됩니다. 그래서 그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아무리 부모를 잘 만나서 호의호식하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 많은 것을 배운다 하여도, 아무리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하게 산다 해도, 주님을 못 만나면 그 인생은 그 자체로 불행합니다. 그러나 혹 다른 만남이 아쉽더라도 주님만은 확실하게 만났다면, 그 사람은 복 됩니다. 이것이 다른 모든 것을 상쇄하고 보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과의 만남이 결정적이고 운명적입니다. 


교회력에 의하면, 오늘이 대강절 첫 주일입니다. 성탄절 4주 전부터 매주 촛불을 하나씩 밝히며 주님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절기가 대강절입니다. 여러분, 성탄절은 2000년 전의 주님 탄생을 회고하고 기념하는 절기가 아니라, 올해도 새롭게 성탄하실 주님을 다시 한 번 체험하고 감격하는 절기입니다. 그 만남을 미리 준비하는 절기가 대강절입니다. 주님은 올해도 반드시 오십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오시지 않고, 반드시 기다리는 자에게 오십니다. 주님은 주님과의 만남을 기도하며 준비하는 그에게 오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대강절이 큰 의미요 중요합니다. 올해도 새롭게 성탄하실 주님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중세 때부터 대강절 첫 주일 때는 오늘 본문인 이사야 61장 1-3절 말씀을 설교했습니다. 이 본문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가 주님의 성탄을 미리 예언한 유명한 메시아 장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성탄으로부터 690년 전에 이사야가 미리 주님의 성탄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면 올해도 우리가 새롭게 성탄하실 주님을 뵈어야 하는데,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베푸실 은혜가 어떤 것인지를 확인해보겠습니다. 

우선, 1절 중반절입니다.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사람 사는 세상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게 지금으로부터 2,700년 전 말씀입니다만, 그때도 세상에는 마음에 모진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사는 사람이 그만큼 많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성탄하시면 제일 먼저 마음이 상한 사람부터 고쳐주신다고 합니다. 이사야 1장 6절 이하를 보면, 당시의 아픔을 이렇게 전합니다. “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7]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여러분, 이것이 어찌 이사야 시대만이겠습니까? 그대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요, 이 시대의 적나라한 실상입니다. 발바닥에서 머리끝까지 성한 곳이 없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마음의 상처와 아픔이 없습니까? 우리는 남들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지만, 그 속은 눈물 없이 피 흘리지 않고 살아가지 못합니다. 주님은 올해도 우리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주십니다. 주님은 바로 이 일부터 하십니다. 이사야 42장 3절에서도 메시아가 오시면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순천만 갈대 군락지에서는 갈대가 낭만적인 가을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갈대가 밭에 있으면 그런 잡초도 없습니다. 더구나 그 갈대가 상했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쓸 데 없습니까? 그럼에도 주님이 그런 갈대를 고치고 싸맨다고 하십니다. 하찮은 갈대 한 포기의 상처를 보듬어 주십니다. 사람이나 짐승은 약한 자를 포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적자생존, 정글의 법칙에 따라 삽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여러분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받고 싶으십니까? 올해도 주님이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싸매어 주시면 아무리 깊은 우리마음의 상처도 치유 받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가 올해도 반드시 성탄하실 주님을 만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부디, 금년 성탄절에는 꼭 주님을 뵙고, 무엇보다 우리 마음의 상처를 치유합시다. 그래서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고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갑시다. 


다음은 본문 1절 하반절입니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실제 이사야 당시에는 사람들이 앗수르에 잡혀가 노예살이를 했습니다. 주님이 성탄하실 때는 사람들이 로마의 식민지로 수탈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본문 1절 하반절이 이 말씀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는 노예도 종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정말 노예가 아닌가 자문한다면, 선뜻 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가 탐욕이나 두려움, 걱정, 염려, 악습, 옛 삶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병마의 포로가 되어 고통 가운데 있는 분도 많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우리의 아픔이요 분열이요 모순입니다. 우리의 신분이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자유인인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올해도 우리가 성탄하실 주님을 만나야 할 필연적인 이유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케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36절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주님이 우리를 해방케 하시면, 우리의 몸과 마음, 양심이 자유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삶을 속박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주님은 그 모든 것을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 권능이 주님께 있습니다. 부디 올해도 주님을 제대로 만납시다. 자유를 풍성히 누리는 진정한 자유인의 복을 누립시다. 


본문 2절 하반절 이하입니다.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생각해 보면 인생은 참으로 슬픈 존재입니다. 다들 보람과 행복 속에서 살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늘 눈물과 한숨뿐입니다. 단 하루도 슬픔과 근심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불행이 있습니다. 요즘은 위로를 받을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위로를 받고 산다면 그나마 살아갈 만한데, 그럴 곳이 없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도 마지막 순간에 곁에서 진정으로 위로하고 이해해주면, 극적으로 그 최악의 위기를 넘길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누가 과연 우리의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디서 진정으로 우리를 이해하고 격려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요? 과연 누가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요? 본문은 메시아가 오시면 우리의 모든 슬픔을 위로해주신다고 합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역전시켜 주신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올해도 성탄하실 주님을 만나면, 누구나 근심 대신 찬송을 하고, 슬픔 대신 기쁨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성탄의 은총을 베푸시면, 우리도 얼마든지 새 출발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아파하고 손해보고 슬퍼한 만큼, 반드시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 어느 해보다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의 성탄을 성실히 준비합시다. 그래서 회복과 치유의 은총을 풍성히 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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