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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8m] 양들이 사는 법 (마 25:31-46)

20201108m

마 25:31-46

양들이 사는 법


(마 25:31-46, 개정)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주님의 유명한 양과 염소 비유입니다. 엄밀히 말씀 드리면, 본문은 비유라기보다 마지막 심판에 대한 예언입니다. 세상 마지막 최후 심판을 주님이 당시 팔레스틴의 양치기 방식을 빌려 예언하신 것입니다. 당시 팔레스틴은 목자들이 대기 양과 염소를 같이 쳤습니다. 낮에는 그렇게 하는데, 밤이면 반드시 그 둘을 갈라서 다른 우리에 넣었다고 합니다. 양은 털이 많아 추위에 강하기에 사방이 트인 우리에 넣고, 염소는 추위에 약해 바람막이가 있는 우리에 재웠다고 합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주님이 최후 심판의 모형을 보셨습니다. 낮에는 모든 민족이 다 뒤섞여 함께 살아가지만, 해가 저물어 역사의 마지막 날이 오면 그때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왼쪽과 오른쪽으로 칼처럼 구분하신다는 것입니다. 


양과 염소는 우선 털 색깔부터 대비됩니다. 흰색은 의로움, 순결, 속죄, 구원을 상징하지만, 검은색은 죄악, 하나님의 진노, 저주를 상징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마지막 때는 이 세상 모든 민족과 개인이 심판주 앞에서 양과 염소처럼 철저하게 오른편과 왼편으로 구분됩니다. 양은 오른편, 염소는 왼편으로 말입니다. 


특히 이 마태복음에는 심판과 분리라는 주제가 복음서 전체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3장 12절은 키로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고, 13장 30절은 추수 때에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고, 13장 49절 이하는 천사들이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불에 던진다고 합니다. 본문도 마찬가집니다. 이처럼 역사의 마지막 날에도 공의롭고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지면서 마치 양과 염소가 구분되듯 알곡은 곳간으로 쭉정이는 영원한 불에 들어간다는 것이 마태복음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본문에서 우리가 가장 진지하게 고민하며 보아야 할 대목이 어디일까요? 심판주가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는 그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심판주가 과연 무엇으로 양과 염소를 구분하여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느냐는 것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35절 이하를 보면 양들은 주님이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염소들은 주님이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목마를 때, 헐벗었을 때, 병들었을 때, 옥에 갇혔을 때 왼편과 오른편 사람들이 철저하게 구분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양과 염소를 가르는 기준이 자선과 선행입니다. 도덕과 윤리가 기준이라면 이것은 유교와 더 가깝습니다. 율법주의인 유대교입니다. 본문의 진정한 메시지가 이런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런 윤리와 도덕을 설교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선행하면 양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염소가 되어 지옥에 간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요? 


마지막 심판 때 양과 의인으로 분리되어 심판주 오른편에 서게 될 사람들은 평소 이 세상을 살 때 선행과 자선을 베풀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 때 염소로 분리되어 심판주 왼편에 서게 될 사람들은 평소에 선행이나 자선이나 구제 없이 이기적으로 날마다 죄를 밥 먹듯 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행을 해서 양이 되고 심판주 오른편에 서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양들은 세상을 살 때 착하게 산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선행을 해서 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행을 하지 않아서 염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염소와 양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어 태어납니다. 태어날 때 회색으로 태어나 악하게 살면 새카만 염소가 되고, 선하게 살면 하얀 양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양은 양답게 선행을 행하며 살다가 심판 때 심판주 오른편에 섭니다. 염소는 염소답게 악하게 살다가 최후 심판 때 왼편에 섭니다. 처음부터 양은 양으로, 염소는 염소로 태어나듯이 처음부터 알곡으로 가라지로 태어나듯이,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납니다. 창세 전에 이미 하나님이 우리를 양으로 알곡으로 예정하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태어납니다. 따라서 양은 양 본래의 기질과 정서대로 착하게 살듯이 하나님의 자녀들도 그 신분에 걸맞게 구제하고 자선하며 의롭게 삽니다. 염소도 처음부터 염소로 태어나 염소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이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나그네를 영접하며 양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의 선행이나 구제와는 상관없이 양이 되고 염소가 됩니다. 자선이나 구제, 기부의 여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34절입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보십시오. 아버지께 복을 받아 양이 되고 의인이 되어 심판주 오른편에 서게 된 것이지 내 수고와 희생으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얼마나 분명하고 확실한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상속받을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희생에 대한 상급이 아니라 창세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시기로 예정하신 나라입니다. 상속이란 아버지가 자식에게 거저 물려주는 재산이지 착하다고 주는 상급이 아닙니다. 종에게는 상속이 없습니다. 종은 아무리 착해도 칭찬은 받아도 상속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야단맞고 징계는 받을지라도 상속을 못 받지는 않습니다. 


이제 보다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양으로 태어났습니다. 양은 이 세상을 살며 자선하고 선행하며 산다고 했습니다. 과연 이것이 사실이며 현실적일까요? 우리가 양은 착하게 산다는 주님의 말씀에 부합합니까? 우리는 누가 뭐라 해도 양입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양으로 태어났습니다. 주님은 그런 양들은 세상에서 선하게 산다고 하셨는데, 과연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염소가 염소답게 살듯이 양은 양답게 살아야 하는데, 미안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주님이 본문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 문제 때문입니다. 주님은 바로 이 문제의 모순과 현실을 지적하셨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과나무는 사과나무답지 못한 사과나무입니다. 애물단지 사과나무입니다. 의인이면 의인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다고 양이 염소가 되지는 않습니다. 양이 염소처럼 산다고 하여 염소가 되지는 않습니다. 부끄러운 양, 염소 같은 양일 뿐입니다. 의인이 악인처럼 살아도 악인 같은 의인입니다. 부끄러운 의인입니다. 주님께 심려를 끼치는 천덕꾸러기 의인입니다. 반면에 착한 염소도 있습니다. 분명 염소인데 양처럼 삽니다. 의인보다 더 신실한 염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양 같은 염소일 뿐이지 절대 착하다고 염소가 양되는 법은 없습니다. 염소에게 아무리 흰 페인트를 칠한다 하여 양이 되지는 않습니다. 종은 아무리 착해도 여전히 종이고, 아들은 아무리 악해도 아들입니다. 


그러나 아들이 아들답게 살지 못하면 늘 부모님께 누가 됩니다. 의인이 의인답게 살지 못하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래서 택함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반드시 의인답게 살아야 옳습니다. 이것이 양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본문의 양들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염소 같은 양으로 살면 주님을 실망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의 비유가 우리에게 깨달음과 결단의 메시지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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