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201101m] 소유형과 존재형 (눅 12:15-21)

20201101m

눅 12:15-21

소유형과 존재형



(눅 12:15-21, 개정)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유대인 출신의 유명한 학자 에리히 프롬을 아시지요? 그는 제가 독일에 간 이듬해인 1980년 3월에 스위스에서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온 유럽이 1년 내내 그분을 추모하며 날마다 그의 철학과 사상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를 열고, 대학마다 그분에 대한 강좌를 개설하고, 서점에는 그의 단행본이 쌓여 있었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그곳 대학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철학 사회학 심리학을 공부했고, 헤겔 좌파를 뜻하는 프랑크푸르트 학파 소속이었고, 신프로이트 학파 소속의 학자였습니다. 그는 나치 때 미국으로 건너가 콜럼비아 대학과 예일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후 스위스로 가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책 <소유냐 삶이냐>(Haben oder Leben)가 유명합니다. 그 책에 보면, 두 가지 유형의 인간이 나옵니다. 소유형의 인간과 존재형의 인간입니다. 소유형은 오직 소유에서 자신의 의미와 보람을 찾습니다. 소유를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행복을 느낍니다. 그런 사람은 소유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칩니다. 오직 소유가 자기 삶의 목표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존재형의 인간은 소유보다는 무엇이 진정한 삶이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느끼게 하는지를 부단히 찾고 노력합니다. 그는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삶인지에 중점을 둡니다. 존재형 인간은 소유보다 가치를 추구합니다. 에리히 프롬은 모든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두 유형에 속한다고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유형에 속하십니까? 소유입니까? 아니면 인간다운 삶이 여러분 인생의 가치입니까? 


본문도 바로 그런 주제를 다루는 말씀입니다. 소유냐 존재냐를 주님이 비유를 통해 제기하셨습니다. 본문은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그런데 외경 도마복음 63장에는 나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많은 토지를 가진 한 부자가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마음속으로 내가 저 밭에 씨를 뿌리고 잘 가꿔 추수해서 내 곳간마다 가득 채워 부족함이 없게 하리라. 그러나 그날 밤 그는 죽고 말았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외경은 누가복음보다 훨씬 간결하지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같습니다. 


본문의 부자는 그해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그는 행복한 고민에 빠집니다. 수확한 곡식을 어디에 쌓아둘 것인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는 기존 곳간을 헐고 더 큰 곳간을 지어서 거기에 곡식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런 후 그는 안도하며 행복한 독백을 합니다. 19절입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그런데 청천벽력이 떨어집니다. 하나님이 그에 대해 이렇게 선고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20절). 황당하고 허무합니다. 하나님이 부자를 안타까워하시기보다 도리어 어리석은 자라며 힐난하고 계십니다. 이 이야기를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자가 어리석습니까? 그는 성공한 사람이고 출세한 사람 아닙니까? 우리가 밤낮으로 뛰고 물불 안 가리며 돈을 버는 이유가 부자처럼 성공하고 편안히 즐기기 위해서이지 않습니까? 이 부자야말로 우리의 꿈을 한 발 앞서 이룬 우리의 롤 모델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하나님은 그를 어리석은 자라고 하십니까? 


이 부자야말로 존재형이 아니라 소유형의 전형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자였기 때문에 그가 소유형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는 소유가 자기 삶을 보장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형적인 소유형 인간입니다. 그는 곳간을 넓히고 재물을 쌓아두는 데서 인생의 보람을 느낍니다. 소유가 그의 절대적 목표요, 그것이 자기 삶을 보장한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기대와 계획대로 곳간에 쌓아둔 부가 그의 미래를 보장했습니까? 부자가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날 밤입니다. 20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소유형 인간의 정곡을 찌른 비수 같은 말씀입니다. 소유가 결코 나의 미래와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확실히 알려주는 말씀은 없습니다.  모두가 여러 해 쓸 물건을 잔뜩 쌓아두고 먹고 마시고 즐기자는 소유형 인간이지만, 누구 맘대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소유는 사람들을 어리석게 만들고 터무니 없는 자기 기만에 빠지게 만듭니다. 이건희 회장은 돈이 없어서 78세로 세상을 떠났습니까?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삼성병원의 의사가 부족해 요즘 세상에 80세도 못 살고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까? 오늘날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집니다. 모두가 돈을 좇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지금도 고기 낚을 생각만 합니다. 이 시대는 소유형의 인간들뿐입니다. 어디를 봐도 곳간을 헐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곡식을 쌓겠다는 사람들뿐입니다. 부디 더 늦기 전에 우리의 가치관을 재고합시다. 본문 21절 말씀처럼 하나님에 대해 더 부요한 사람들이 됩시다. 


이 부자가 소유형이었다는 것은 자기 밖에 모르는 지독한 이기주의의 화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등장인물이 부자 한 사람뿐입니다. 완전히 모노드라마입니다. 이 부자의 안중에는 하나님도 이웃도 없고, 심지어 아내도 자식도 없다는 듯 끝까지 자기 자신뿐입니다. ‘내 영혼, 내 곳간, 내 곡식’만 나옵니다. 헬라어로 본문을 보면 이런 말이 14번이나 나옵니다. 그는 오직 자기만의 향락을 추구한 지독한 개인주의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리석습니다. 물론 이 부자가 남의 것을 부당하게 갈취했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그는 자기가 벌어 자기가 즐기겠다는 것이 왜 나쁘냐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비록 그것이 정당한 부라도 자기 혼자 즐기면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실은 하나도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내 영혼도 내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그 영혼을 회수하겠다고 하시면, 우리는 오늘 밤이라도 이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왜냐하면 내 삶이, 내 영혼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에 아무리 아쉽고 안타까워도 하나님이 도로 찾으시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내 영혼, 내 자식, 내 아내, 내 재물, 18조원이나 되는 내 주식도 다 놔두고 빈 몸으로 떠나야 합니다. 우리나라 최고 부자 이건희 회장도 공수래공수거 했습니다. 


최희준 씨의 하숙생 2절입니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왜 인생이 벌거숭이일까요? 왜 인생은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야 할까요? 다 내 것이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착각에 빠져 내 수중의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내 수고의 대가요 능력의 보상이요 내 운의 결과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곳간의 곡식을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해 쓰려고 합니다. 주님은 바로 이것이 잘못 되었다고 하십니다. 어리석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절대 주인이 아닙니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인의 재산을 맡아 일정 기간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뜻에 합당하게 모든 것을 집행하는 종일뿐입니다. 올해도 착하고 신실한 청지가가 될 지언정, 본문의 부자 같은 어리석은 인생은 되지 맙시다. 주인의 것을 제 것인양 맘대로 쓰는 소유형의 인간은 되지 맙시다.


이 부자는 자기 영혼의 진정한 필요를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 또한 그가 어리석은 인간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19). 은행에 쌓아 둔 돈으로 편하게 먹고 쉬고 즐거워할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일수록 영적으로 더욱 빈곤할 확률이 높습니다. 사회보장이 잘 된 나라일수록 정신병자나 자살자 지수가 더 높은 이유는 한마디로 부나 소유가 우리 영혼을 다 채우지 못한다는 방증입니다. 소유의 넉넉함이 그의 영혼을 만족케 하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 못 살 때는 자살자가 오늘날보다 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나라가 10년이 넘도록 자살지수가 가장 높습니다. 오늘도 전국 어디에선가 47명이 자살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 3;17). 이 얼마나 정곡을 찌르는 말씀입니까! 주님 눈에는 부자들이 더 가련하고 벌거벗은 모습으로 비쳤습니다. 왜냐면 마태복음 4장 4절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절대 떡만으로는 안 됩니다. 사람의 영혼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본문의 부자처럼 소유로 우리 영혼의 필요를 대신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수많은 영혼들이 말씀이 빈곤해서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가 아니라 재물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십시다. 그렇게 해야 우리 영혼이 평안히 쉴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소유형이 아니라 진정한 존재형의 인간이 됩시다. 그래서 보다 바르고 건강하게 행복하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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