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4m] 코로나와 신정론(神正論) (마 13: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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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4m
마 13:24-30
코로나와 신정론(神正論)
(마 13:24-30, 개정)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가끔 여러분은 의문이 안 생기십니까? 선하신 하나님, 절대적으로 선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왜 이렇게 악이 차고도 넘칠까요? 구약 하박국서의 문제제기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공평하고 공정하신 분이시고, 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통치하고 계신데, 어째서 세상은 모순투성이고 불의가 넘쳐나고 악이 판을 칩니까? 어째서 남을 속이거나 등치는 나쁜 사람들이 더 잘 되고,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은 고난을 겪고 불이익을 당하며 살아야 합니까? 왜 하나님은 부조리한 세상을 심판하시지 않고 지켜만 보고 계십니까? 분통이 터져 살 수가 없다는 것이 하박국의 하소연입니다. 욥기도 마찬가집니다. 그의 아내가 남편에게 선하신 하나님이라고? 웃기시네.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자타가 동방의 의인이라고 공인하는 사람, 하나님조차도 의인이라고 하는 당신이 어째서 이런 일을 당하느냐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 욥은 대단한 부자였습니다. 짐승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당시로서는 재벌이었습니다. 갈대아 사람들이 쳐들어와 하루아침에 재산을 다 빼앗아갔습니다. 자녀들도 한자리에 10명이 죽습니다. 욥 자신도 머리에서 발바닥까지 종기가 생겨 질그릇 조각으로 피부를 긁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아내가 절규하며 하나님은 절대 선한 분이 아니고 무자비한 신이니까 이제라도 그분을 욕하고 저주하고 죽으라고 한 것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그리스도인에게 수수께끼입니다. 그동안 철학과 신학이 수없이 제기해온 문제입니다. 그 답을 찾기에 수많은 노력을 기울인 고전적인 주제입니다. 이 문제는 비극적인 자연재해나 코로나 같은 치명적 전염병 재앙이 닥칠 때는 더욱 예리하고 집중적으로 제기된 문제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며, 왜 이런 비극을 보고만 계시냐는 겁니다.
신학적으로 이 문제를 신정론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독일말로는 테오디체(Theodizee, 영. theodicy)라고 합니다. 헬라어에서 하나님을 뜻하는 데오스와 의로움을 뜻하는 디케가 합성된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변증하는 것이 테오디체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27절입니다.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농장 주인이 밭을 갈고 좋은 씨를 사다가 뿌렸습니다. 하지만 가라지도 함께 자랐습니다. 가라지는 벼와 함께 자라는 피나 밭에서 보리와 함께 자라는 깜부기 같은 것입니다. 종들이 주인에게 당장 가라지들을 뽑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인은 둘 다 추수 때까지 가만 두라고 합니다. 추수 때에 가서 가라지는 불사르게 하고 곡식은 곡간에 넣겠다고 합니다.
본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36절 이하를 보시면, 제자들이 주님께 가라지 비유를 풀어서 설명해 달라고 합니다. 좋은 씨를 뿌린 분은 주님 자신이고, 밭은 천국이고, 알곡은 천국의 아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 추수 때는 세상 끝날, 추수꾼은 천사들이라고 합니다. 41절 이하입니다.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그러니까 가라지와 알곡의 운명이 추수 때에 극명하게 갈린다는 겁니다.
여기서 신정론과 관련하여 몇 가지 중요한 수수께끼를 짚어보겠습니다.
우선, 왜 밭에는 심지도 않은 가라지가 나고, 세상에 악이 득세하는 것일까요? 실제 밭에서 작물을 재배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만, 심지도 않은 잡초들 때문에 농사짓기가 쉽지 않습니다. 농사는 그야말로 잡초들과의 전쟁입니다. 잡초들이 심고 가꾸는 작물보다 훨씬 더 잘 자라고 뿌리도 더 깊고 넓게 뻗습니다. 잡초들의 생명력은 무서울 정도입니다. 세상도 마찬가집니다. 얼마나 악이 파괴적이고 공격적입니까? 끔찍한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집니다. 지금도 황당하고 말도 안 되는 부조리가 끊임이 없습니다. 자연재해 때문에 우리가 좌절하고 낙담하고 회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인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짜 하나님이 계실까? 그분이 계시다면 왜 이 상황을 보고만 계실까? 하나님은 정말 선하고 의로우신가? 그분은 공명정대하시고 공평무사하신가? 세상이 부조리하고 불합리하니까 자꾸만 회의가 드는 겁니다. 어떤 분은 평생 예수를 잘 믿고 살던 장모님이 주방 봉사한다고 교회 가시다가 뺑소니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며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며 매번 감탄하셨습니다. 세상은 본래 그렇게 아름답고 조화롭고 선했다는 겁니다. 본문을 보면 주인이 분명 좋은 씨만 뿌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뿌리지 않은 가라지가 나느냐는 겁니다. 뿌리지도 않은 독하고 악한 잡초가 나느냐는 겁니다.
주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25절입니다.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8절에서도 원수라고 합니다. 가라지를 뿌리는 원수는 39절을 보면 마귀라고 합니다. 마귀가 주인의 아름다운 밭을 유린하는 주범입니다. 마귀가 좋은 씨만 뿌린 밭에 가라지를 뿌리며 불신과 아픔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알곡을 뿌리셨듯이 마귀도 주인 밭에 가라지를 뿌립니다. 왜 심지도 않은 가리지, 코로나 같은 잡초와 독초가 나는 것은 모두 마귀의 짓입니다. 마귀가 알곡들을 해치고 자기 세력을 확장하려 말도 안 되는 부조리와 모순의 씨앗을 기회 있을 때마다 심습니다. 이것이 세상 악과 코로나 사태의 비밀입니다.
그러면 가라지에 대한 주인의 처분과 대응을 보겠습니다. 종들이 당장 저 가라지들을 다 뽑아버리겠다고 하자, 주인은 둘 다 추수 때까지 가만 두라고 합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추수 때, 즉 세상 끝 날까지 두라고 합니다. 실은 이것이 우리를 답답하게 만들고 이해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당장에 뽑아버려도 시원찮은데 추수 때까지 알곡과 함께 자라게 두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29절 하반절입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여러분, 주인이 가라지를 그냥 두라는 것은 가라지에 대한 배려나 호의가 아니라 알곡을 위해서입니다. 주인인들 당장 이 세상의 악을 몽땅 소탕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가라지의 뿌리는 훨씬 깊고 넓게 퍼져 있기에 자칫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을 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알곡을 위해서 가라지에 대한 심판을 추수 때까지 유보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쉽게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궁극적으로 주인은 알곡을 지키기 위해 추수 때까지 가라지가 알곡과 함께 가도록 조치하셨습니다. 우리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주인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30절을 보십시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이것이 주님의 판단입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가라지를 뽑아버리고 싶지만, 주인은 다르게 판단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가라지의 운명, 이 세상의 재앙은 이미 판결이 났습니다. 그들은 어차피 추수 때까지 시한부입니다. 그러므로 추수 때까지는 누구도 가라지를 피할 수 없습니다. 마귀의 자식들과 함께, 온갖 부조리와 모순과 함께,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과 함께 부대끼고 갈등하며 때로는 피 흘리며 같이 가야 합니다. 이것이 알곡의 숙명입니다. 아무튼 이것이 우리를 위한 절대 선하신 하나님의 깊은 뜻입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역설적 뜻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어쨌든 그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한 조치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라지와 추수 때까지 피할 수 없이 함께 가야 한다면,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어떻게 우리 자신을 지키며 살 수 있을까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원수가 사람들이 잘 때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고 합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잘 때 마귀가 몰래 우리 사회에 악을 뿌립니다. 성도들이 잘 때 마귀가 교회에 와서 가라지를 뿌립니다. 가족들이 깊은 잠에 떨어졌을 때 마귀가 우리 가정에 몰래 와서 독한 가라지를 뿌립니다. 그러므로 신앙적으로 깨어 있어야 당하지 않습니다. 근신해야 합니다. 졸거나 자다가는 마귀에게 우리는 무방비로 당합니다. 도적들은 사람들이 잘 때 침입합니다. 마귀가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그렇게 마귀가 우리의 영혼을 도적질해 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깨어 있으면, 성령 충만하면, 근신하며 기도하고 있으면, 우리가 강해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강하시기에 마귀는 우리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우리 속에 가라지를 뿌리지 못합니다.
마귀의 목표는 어떻게든 알곡들을 넘어뜨리는 데 있습니다. 41절을 보면, 마귀의 역사는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귀는 알곡을 가라지 되게는 못합니다만, 넘어지게 만듭니다. 알곡들을 치명적 재앙으로 불행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 부부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되었습니다. 21세기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도 방심하면 당합니다. 미국에 없는 무기가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그것들로는 마귀의 공격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귀를 깨어 있어야 막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알곡이라는 사실로 안도할 수는 없습니다. 혹 우리가 잘 때 마귀가 와서 가라지를 뿌리고 가지 않을까 경계하며, 자신을 관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차피 추수 때, 곧 이 세상 종말 때까지는 가라지와 함께 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영적 긴장을 늦추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추수 때가 지나고 더는 그 어떤 모순, 부조리, 아픔, 갈등, 재앙, 감염병 없는 아버지 집에서 영원히 해 같이 빛나며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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