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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20200927m</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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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요 5:1-9</span></p>
<!-- paragraph:p0003 -->
<p class="p1"><span>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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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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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요 5:1-9, 개정)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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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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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주님이 어느 날 예루살렘의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간 투병해온 중풍병자 한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당시 이 연못가에는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그게 사실이었는지, 아니면 민간에 퍼진 속설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연못에 가끔 천사들이 내려와 물을 움직이는데 그때 맨 먼저 들어간 병자는 어떤 병이든 낫는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연못가에는 많은 병자들이 물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주님이 어느 날 그 현장에 나타나 38년 된 병자를 찾아가 고쳐주셨다는 것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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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주님이 그 환자에게 찾아간 과정을 보면 마치 사전에 약속한 듯이 그를 콕 집어 찾아가셨습니다. 그 병자가 환자들의 대표였을까요? 아니면 여러 병자들 가운데 그가 가장 딱해서였을까요? 그 사람은 지난 38년간 누워있었지만, 단 한 번도 자기 삶을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절대 낫고자 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주님이 그를 찾아가실 때까지도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그의 조건이나 환경은 가장 열악하고 경쟁력 제로인데, 그런 절망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체념하지 않았습니다. 7절입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그는 자기를 도와줄 가족도 친척도 없고, 친구도 다 떠났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생의 집념이 누구보다 그는 강합니다. 그는 자기 스스로 움직일 수 없으니 물에 들어갈 수 없어 안타깝다고 주님께 자신의 처지를 말합니다. 주님은 그 병자가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집요하게 콜을 했기에 불려가셨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주님을 베데스다 연못가로 강제로 오게 한 사건이 오늘 본문입니다. 절망적인 상태에 방치된 그 병자의 불굴의 믿음이 주님으로 하여금 그를 콕 집어 찾아가게 하셨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11 -->
<p class="p2"><br></p>
<!-- paragraph:p0012 -->
<p class="p1"><span>여러분, 믿음의 기 싸움은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결국 주님이 져주십니다. 내가 누워 있는 베데스다 연못가로 주님이 오셔서 절망적인 사태를 급반전시켜주십니다. 이 병자를 보십시오. 아무 보장도 누구도 그의 입수를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희망을 접지 않았기에 비록 누웠으니 주님을 그 현장으로 소환했습니다. 주님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가라”고 그에게 구원을 선언하십니다. 그 병자가 주님의 선언을 이끌어 낸 것입니다.</span></p>
<!-- paragraph:p0013 -->
<p class="p2"><br></p>
<!-- paragraph:p0014 -->
<p class="p1"><span>마태복음 15장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도 마찬가집니다. 주님을 따라가며 처절하게 딸을 고쳐달라고 외치자 주님은 들은 채도 하지 않으셨고, 제자들은 그 여인을 꾸짖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더 소리를 높였습니다. 주님이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부르십니다. 그러고서는 주님이 기껏 하신 말씀은 ‘자녀의 떡을 취해 개에게 던지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자녀는 이스라엘이고, 개는 이방인입니다. 너 같은 이방인에게는 떡을 못 주겠다는 것입니다. 적선을 안 할 거면 쪽박은 깨지 말라고 했는데, 도와주지 않으실 것이라면 개라는 모욕은 하지 않아야 맞지 않습니까? 이런 원색적인 인종차별도 없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여인이 모욕감을 느끼고 포기하고 돌아갔습니까? 그 여인은 ‘옳습니다. 개도 주인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즉각 ‘딸아 네 믿음대로 되라’고 항복하십니다. 만일 가나안 여인이 주님의 모욕적 언사에 시험에 들어 그냥 가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거기서 그대로 끝났을 겁니다. 그녀가 거기서 포기했다면 아무 반전도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희망의 끈을 필사적으로 붙잡았기에 마침내 주님이 그녀에게 투항하셨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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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6 -->
<p class="p1"><span>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가나 혼인잔치 이야기도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마리아가 잔치집인 이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이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이는 주님 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주님은 ‘여자여, 내 때가 안 이르렀고, 이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반응합니다. 주님은 내 시간도 아니고, 나와 상관도 없다고 심각하게 거부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어머니에게 ‘여자여’라고까지 말하며 거부했음에도, 어머니 마리아는 민망함에 포기하지 않고 주님에 대한 신뢰를 끝까지 관철합니다. 마리아는 종들에게 주님이 말하는 대로 시행하라고 합니다. 주님이 비록 저렇게 말하지만, 끝내 선을 이루실 것을 마리아는 확신했습니다. 마침내 여섯 물항아리의 물이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주님은 전혀 의지 없었는데, 기적을 행할 때가 아니었는데, 모친 마리아가 포기하지 않았기에 본의 아니게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마리아의 믿음과 신뢰에 주님이 굴복하신 사건이 가나 혼인잔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희망을 접지 않으면 주님이 우리에게 항복하십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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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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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마가복음 2장에도 중풍병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네 사람이 친구 중풍병자를 주님께 데리고 왔지만 인산인해로 인해 도저히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라면 이때 어떻게 했을까요? 아쉽지만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좋은 일 하겠다고 네 사람이 의기투합해 환자 한 사람을 메고 왔지만 주님 앞으로 갈 수가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다음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네 사람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자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유대인들의 집 지붕은 평평합니다. 거기로 올라가서 그들은 지붕을 뜯었습니다. 주님은 집안에 계시고 방안에 사람들이 가득한데 그들은 지붕을 뜯었습니다. 그들은 작은 구멍이 아니라 들것을 내릴 만큼 큰 구멍을 뚫었습니다. 이 얼마나 도발적이고 그 발상 자체가 얼마나 기상천외합니까? 이 황당한 모험을 통해 그들이 환자의 들것을 내리자, 주님은 그들을 나무라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감동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네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그 환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절대 포기하거나 체념하지도 끝까지 접지 않는 믿음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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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20 -->
<p class="p1"><span>여러분, 사방이 막혔다고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절망하지 맙시다. 서둘러 체념하거나 포기하지만 않으면 길은 분명히 있습니다. 함부로 희망의 끈을 놓지 맙시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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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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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영원한 희망의 아이콘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려했다는 이야기보다 더 황당한 사건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잡아 바치라고 명합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아브라함의 태도입니다. 그는 한 마디의 불평도 없이 이삭을 잡겠다며 아들 목에 칼을 댔습니다. 저는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아브라함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위엄에 눌려 모든 것을 체념한 상태에서 아들을 잡으려 했거나, 아니면 너무 큰 충격 때문에 실성해서 아들을 잡으려 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장을 읽다가 저는 놀랐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체념이나 실성한 게 아니라, 더 큰 기대와 확신을 가지고서 능동적으로 아들을 잡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도 아들을 살려줄 것이라는 믿음’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아들 목에 칼을 댔다는 것입니다. 정작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아들의 목을 따려고 하면서도 절망하거나 정신줄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비록 아들이 죽는다 하여도 하나님이 능히 다시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접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더 당황하십니다. 급히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하나님을 이삭 대신 숫양을 내주십니다. 여기서 여호와 이레 신앙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바다의 모래, 하늘의 별과 같은 자손의 복을 빌어주십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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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24 -->
<p class="p1"><span>우리 사정이 요즘 많이 어렵습니다. 아무리 어렵다한들 100세에 얻은 아들의 목에 칼을 대야하는 아브라함만 하겠습니까? 아브라함을 생각하며 절망하지 맙시다. 마리아를 생각하고, 수로보니게 여인을 생각하며 체념하지 맙시다.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생각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맙시다. 여러분 모두가 주님의 구원의 은혜로 말미암아 지금의 위기가 평정되고 반전되는 복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5 -->
<p class="p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br></span></p>
<!-- paragraph:p0026 -->
<p class="p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br></span></p>
<!-- paragraph:p0027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uNOtpkQ9TJc"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