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17n: 바울의 최후 당부(딤후 2: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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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17일 주일오후예배
본문: 딤후 2:14-26
제목: 바울의 최후 당부
[14]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24]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26]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디모데후서는 AD 66년경에 쓴 것입니다. 바울이 마지막에 쓴 편지입니다. 바울이 자기의 죽음을 예감하면서 지난 30년간의 선교사역을 마감하는 뜻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믿음의 아들이요 사역의 후계자인 디모데가 지금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데 그를 향해, 또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향해 최후의 당부를 하고 있다, 유언을 남기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다른 서신보다 비장합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남기고 그 다음해에 순교를 합니다. 순교를 눈앞에 둔 노 사도의 간곡한 당부의 말씀을 몇 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그는 디모데와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일꾼이 되라고 합니다. 15절입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부끄러움이 없는 일꾼은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는 자입니다. 자기의 존재와 생애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헌신하는 자가 부끄러움이 없는 일꾼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이란 말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인데, 하나님 앞에 자기를 기꺼이 드리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부끄러움 없는 일꾼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들입니다. 내 생업이 있다 하더라도 그 생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끄러움 없는 일꾼이 되어야 할 터인데, 그는 바로 헌신하는 자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일만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이 주신 겁니다. 그래서 천직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게 하나님의 소명입니다. 그래서 독일말로 직업과 소명은 같은 말입니다. 베루프(Beruf) 라고 합니다. 사실 믿는 자에게는 휴가나 방학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로서 긴장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휴가를 떠난다 할지라도 긴장을 풀면 안 되고 항상 5분 대기조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즉각 출동할 태세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이게 부끄러움이 없는 일꾼의 모습입니다. 이런 자세가 근신입니다.
본문을 보면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악성 종양 같은 사람입니다. 후메네오와 빌레도입니다. 바울이 특정인을 거명하면서 흉보는 예는 거의 없습니다만, 바울은 그들을 향해 악성 종양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은 안 하고 남의 흉이나 보고 욕하며 다녔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과 그 태도를 훤히 꿰고 계십니다. 바울 사도의 최후 당부를 귀담아 들으셔서 무더위에도, 휴가철과 방학이지만, 끝까지 부끄럼 없는 일꾼으로 생활하시길 바랍니다.
바울은 귀히 쓰는 그릇이 되라고 합니다. 21절 하반절입니다.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맞습니다. 우리는 다 그릇입니다. 흔히 사람을 그릇에 비유합니다. 큰 인물은 큰 그릇, 작은 인물은 작은 그릇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그릇들입니다. 어떤 그릇입니까? 어떤 사람은 금 그릇, 은 그릇, 질 그릇, 나무 그릇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재질이냐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그릇이든 주님으로부터 요긴하게 쓰임을 받느냐는 것입니다. 얼마나 주님 쓰시기에 합당하고 편리한 그릇이냐가 중요합니다. 21절 상반절입니다.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이라고 합니다. 그릇이 비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금 그릇이 아니어도 됩니다. 보석으로 장식된 그릇이 아니어도 상관 없습니다. 주님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이어야 합니다. 그런 그릇이 바로 비어 있는 그릇이라는 겁니다. 잡다한 것, 지저분한 것으로 채워져 있으면 안 됩니다. 22절을 보면 바울은 깨끗하게 비어 있는 그릇을 ‘주를 깨끗한 맘으로 부르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이야말로 자기를 충분히 비운 그릇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그릇이기에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담아야 합니다. 내가 내 임의로 탐욕을 발동해 탐욕스런 것을 담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욕심을 비워야 합니다. 하여간 우리의 탐욕은 하늘을 찌릅니다. 우리는 다 욕심 때문에 망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는 것은 진리 중 진리입니다. 욕심과 탐욕은 주님이 보시기에 다 지저분한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다 비워야 합니다. 자신을 깨끗하게 비워야 비로소 주님이 당신의 것을 담으십니다. 그런 사람이 주님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입니다. 이 여름에 다 비우십시오. 좀 더 자신을 깨끗하게 관리하십시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쓰시기를 바라십니다. 다만 쓸 그릇이 없는 게 문제입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온유한 일꾼(종)이 되라고 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남긴 최후의 유언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종이란 말은 헬라말로 둘로스인데, 직역하면 노예라는 뜻입니다. 일꾼, 그릇이니 하는 말보다 종은 훨씬 더 강한 말입니다. 바울 시대 때는 노예가 제도화 되어 있던 시대입니다. 당시 에베소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표현이 충격적이었을 겁니다. 바울은 편지마다 그 서두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 된 나 바울은…’이라고 썼습니다. ‘노예 된 바울’이라는 뜻입니다. 노예는 인격이 없습니다. 노예는 주인의 재산입니다. 죽으라면 죽어야 하고, 노예가 말 안 들으면 팔아 치워야 합니다. 부디 다투지 마십시오. 노예가 다투면 안 됩니다. 관대하셔야 합니다. 노예들끼리 의좋게 지내야 합니다. 노예는 주체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노예는 주님의 소유일 뿐입니다. 우리 끼리 아무리 키를 재봐야 다 고만고만합니다. 다시 한 번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확실한 인식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기대하시는 일꾼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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