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080601n: 자연과 말씀(시 19:1-14)

2008년 6월 1일 주일찬양예배
본문: 시 19:1-14
제목: 자연과 말씀

[1]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5]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11]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13]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편 제19편의 주제는 말씀과 자연입니다. 자연과 말씀은 우리에게 대단히 의미가 깊습니다. 어떤 뜻에서 그러냐면 하나님이 인생에게 가장 큰 은혜요 축복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자연과 말씀을 다른 말로하면 계시입니다. 그래서 시편 19편은 교리적으로는 그 주제가 일반계시와 특별계시입니다. 일반계시는 자연이고 특별계시는 말씀입니다. 자연은 하나님의 보편계시오, 말씀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입니다.

계시는 하나님이 당신을 우리 인생들에게 드러내시는 수단이나 방편을 가리킵니다. 자연이 하나님의 보편계시오 일반계시라 할 때, 이 말은 자연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가장 일반적인 도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우주에는 하나님의 기운, 숨결이 있습니다. 자연을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살피면, 거기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이 일반계시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무한한 은총입니다. 자연은 그저 자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을 우리에게 계시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문단을 나눈다면 19편은 1-6절까지가 자연에 대한 예찬입니다. 일반계시에 관한 말씀입니다. 7-10절까지는 특별계시에 대한 찬사 곧 말씀에 대한 예찬입니다. 11-14절은 자연과 말씀에 대한 다윗의 응답입니다.

그럼 일반계시부분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 20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우주 안에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깃들어있기 때문에 자연이 있는 한, 이 우주 속에서 사는 한, 누구도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가르치는 위대한 교사라고 합니다. 본문 1절 이하입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궁창은 하늘입니다. 우주 세계에 하나님이 하신 일들이 꽉차 있다는 말입니다. 언어도 소리도 없지만 자연은 그 자체가 하나님을 가리키는 위대한 언어라는 이야기입니다. 6절 하반절입니다: “......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우리는 한 줄기 햇볕에서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주의 신비와 조화와 아름다움을 통해 하나님의 오묘하신 능력을 선포합니다. 자연의 그 넉넉함과 풍성함은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가리킵니다. 귀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자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일찍부터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인식하고 증명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 하나가 바로 우주론적 신증명입니다. 자연은 그게 무기물이든 유기물이든 끊임없이 운동합니다. 그런데 자연을 연쇄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원인자는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수백 만개의 도미노가 넘어지는 것도 한 개를 넘어뜨리는 그 원인이 있어야 합니다. 목적론적 증명은 그 어느 것도 목적이 있는데, 그 목적을 부여한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겁니다. 존재론적 신증명은 만물을 정교히 설계하고 조화롭게 하신 분이 있다는 겁니다. 우주의 신비를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방대한 우주가 우연히 있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자연은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한계가 있습니다. 일반계시가 갖는 한계는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과 존재와 위대하심은 일반계시가 우리에게 잘 증거해 주고 있지만 자연이 우리에게 구속의 은총은 계시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십자가의 도리를 우리가 자연을 통해 체득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그 한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에 이 말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닫는 데는 일반계시가 도움을 주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는 말씀계시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의 실체는 성경입니다. 성경은 언어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설교는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할 때 우리는 이 세 가지를 다 꼽아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다 특별계시입니다. 따라서 성경도 열심히 봐야 하고, 선포되는 말씀인 설교도 열심히 들어야 하고,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를 열심히 좇아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도 입체적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본문 7-10절입니다: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이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금보다 더 소중합니다. 왜냐면 우리의 영혼을 소성케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구속의 은총을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는 표현도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다윗은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앞에서 두 가지를 맹세합니다.

첫째, 고범죄를 짓지 않겠다고 합니다. 고범죄는 고의로 범하는 죄입니다. 다른 말로는 짐짓 죄입니다. 다윗이 왜 일반계시와 특수계시 앞에서 고범죄 얘기를 하냐면, 일반계시와 특별계시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한,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가 짓는 죄는 다 고범죄입니다. 왜냐면 우주 곧 자연이 하나님을 마음껏 계시하고 있고, 말씀이라는 특별계시가 하나님에 관해 다 알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몰라서 짓는 죄는 없다는 겁니다. 몰라서 짓는 죄는 정상참작이 되지만, 고범죄는 아닙니다. 그래서 다윗이 고범죄를 짓지 않게 해달라고 비는 겁니다.

둘째,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묵상이 하나님께 열납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해달라는 것보다 더 적극적입니다.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살게 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우리에게는 일반계시인 자연 곧 우주가 주어져 있습니다. 또한 특별계시인 말씀이 주어져 있습니다. 기록되고, 선포되고,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고범죄를 짓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고, 늘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 미디어: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