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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10717m: 왜 에서가 아니고 야곱인가?(롬 9: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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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2011년 7월 17일 주일낮예배</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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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본문: 롬 9:7-16</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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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제목: 왜 에서가 아니고 야곱인가?</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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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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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10]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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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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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이삭은 누구의 아들입니까?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의 장남입니까? 차남입니까? 독자(獨子)입니까? 성경은 독자라고 합니다. 사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보다 먼저 얻은 아들이 있습니다. 이스마엘입니다. 비록 첩일망정 하갈에게서 얻은 자식이 이스마엘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이삭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쫓으라고 하셨으나, 정작 아브라함은 가슴이 아팠다고 합니다. 왜요? 자기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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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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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그렇다면 아브라함은 그렇지 않은데 왜 하나님은 이렇게 이스마엘과 이삭을 구분하시고, 형인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을 통해 당신의 기업을 잇게 하겠다고 하신 것입니까? 이스마엘은 첩의 아들이고, 이삭은 정실의 아들이어서 그렇습니까? 그러면 이삭의 두 아들인 에서와 야곱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씨도 같고, 배도 같고, 태어난 시간도 같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에서는 미워하시고 동생 야곱은 사랑하셨다고 합니까? 본문을 보면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고 합니다(13절). 에서가 첩의 아들도 아니지 않습니까?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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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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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그러므로 이스마엘은 첩의 아들이어서 버림을 받고, 이삭은 본처의 아들이어서 택함을 받았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솔로몬은 첩의 아들입니다. 그런데도 구속사의 당당한 주자가 되었습니다. 본문 8절입니다.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정실의 아들이냐 첩의 아들이냐가 아니고, 육신의 자녀냐 약속의 자녀냐가 그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육신의 자녀는 택함을 받지 못한 자식이고, 약속의 자녀는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자녀를 말합니다. 아버지도 같고 어머니도 같고 생일도 같은 쌍둥이인데 하나님이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신 것은 야곱이 예쁜 짓만 하고 에서는 미운 짓만 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겁니다. 본문 11절 이하입니다.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이게 무슨 뜻입니까? 에서와 야곱 두 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선과 악의 일을 행하기도 전에 하나님이 야곱을 택하셔서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셨다는 겁니다. 한 배와 한 씨의 형제라고 해서 그 운명이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약속의 아들이냐 아니냐가 그의 영원한 운명을 가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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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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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하지만 우리는 거꾸로 생각합니다. 비록 차남이지만 무서운 집념으로 형의 장자권을 빼앗고 아버지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훔치고, 필사적으로 씨름하여 하나님을 이겼기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복을 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것도 맞지만 이것은 초급입니다. 중급은 이미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기에 그렇게 치열하게 살면서 형의 지위를 빼앗고 하나님의 복을 훔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우리가 믿어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구원받은 게 아닙니다. 창세 전에 이미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기에 우리가 지금 예수를 믿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가운데 즐거운 마음으로 신앙 생활하는 분 있으십니까? 대부분이 죽지 못해 예수를 믿습니다. 신앙을 버릴 수 없습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죽지 못해 믿는 신앙이지만 이것은 우리의 숙명입니다. 나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좀 더 행복하려면 하나님께 순종하셔야 합니다. 개 끌리듯 신앙생활하시면 우리만 피곤해 집니다. 포기하시면 우리의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어차피 포기할 수도 없는 운명이라면, 순종하시라는 겁니다. 야곱이 치열하게 살아서 장자가 되었다는 것은 틀린 해석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셔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았던 겁니다. 아직 나지도 않고 선과 악을 행하기도 전인데 하나님이 주권을 발동하셔서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택하셨다고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남보다 나를 예쁘게 보셔서, 내가 남보다 선하고 착해서 택하여 당신의 자녀 삼으신 것은 아닙니다. 나는 남보다 더 잘난 부분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하신 겁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마음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5절 이하를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 하나님이 바울을 택했기에 억지로 회심했다는 겁니다. 바울이 회심 해서 택하신 게 아니라는 겁니다. 예레미야 1장 5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예레미야가 남다른 면이 있어서 그를 선지자로 세우신 게 아니라, 모태에서 이미 성별하셨다는 겁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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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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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야곱이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장자권을 훔쳤다고 하는데, 정말로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인 것입니까? 이삭이 야곱을 속인 겁니까? 야곱이 이삭을 속였다고 생각하시면 초급입니다. 이삭이 야곱을 속인 겁니다. 야곱은 아직도 자기가 아버지를 속였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삭이 야곱과 에서를 낳은 때가 그의 나이 60세 되던 때입니다. 주전 2006년 경입니다. 야곱이 자기 아버지를 속인 때가 야곱의 나이 20세 전후쯤 됩니다. 그러면 이삭의 나이 80세입니다. 이삭은 몇 세에 죽었습니까? 180세에 헤브론에서 죽었습니다. 즉 야곱이 이삭을 속였다고 하는 때부터 이삭은 100세를 더 살고 죽었습니다. 그러니 야곱이 이삭을 어떻게 속였을 것 같습니까? 형 에서는 몸에 털이 많았고, 야곱은 민둥이였습니다. 그래서 쇼를 한 겁니다. 염소를 잡아 팔과 목에 가죽을 두르고, 연세가 높아 눈이 먼 아버지에게 들어갔습니다. 아버지가 만져 보고 목소리는 야곱인데, 어떻게 몸은 에서냐? 하고 한 마디 했습니다. 이삭이 그때 아무리 늙었다 해도 그렇게 감각이 없겠습니까? 저처럼 무딘 사람도 세례식 할 때 손을 얹어 보면 가발인지 아닌지 압니다. 여러분, 멧돼지 고기와 제주 흙돼지가 구분 안 되십니까? 꿩고기와 닭고기가 구분 안 되십니까? 이삭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에서가 아니라 야곱이 하나님의 복을 승계할 약속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알고도 야곱에게 장자에게 내리는 축복을 유감없이 빌어준 겁니다. 절대 야곱이 이삭을 속인 게 아니라, 이삭이 야곱을 속인 겁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말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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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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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얍복 강가의 씨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이긴 겁니까? 하나님이 야곱에게 져주신 겁니까? 하나님이 져주신 겁니다. 세상에서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길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구속사를 위해 져주신 겁니다. 그래서 낙심천만한 야곱을 새 출발하게 하셨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새 이름입니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 라고 하나님이 리브가에게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이 각본을 하나님이 연출하신 겁니다. 동생이 형을 추월한다는 것은 동생 야곱의 집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선택, 각본, 연출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이 중요합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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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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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우리는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특별히 잘난 게 아니라면 왜 하나님은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택하셨을까요? 서자여서가 아니라면 왜 하나님이 이스마엘을 버리고 이삭을 택하셨을까요? 왜 하나님은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일까요? 왜 하나님은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일까요?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왜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매너가 좋고 잘 사는데 미신에 절어 살까?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인간적으로 보면 에서가 훨씬 더 매력이 있습니다. 야곱은 부엌에서 팥죽만 쒔습니다. 그래서 리브가가 야곱을 좋아했고, 에서는 남자답고 멋있습니다. 그런데 야비한 야곱을 왜 하나님이 사랑하고 택하셨을까요?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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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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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이것은 정말 수수께끼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비밀입니다. 본문 14절 이하를 보십시오.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무슨 뜻입니까? 내가 누구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것인가는 하나님의 고유한 주권행위라는 것입니다. 누가 내게 불의가 있다고 하느냐? 그것은 내 마음이요 내 뜻이라는 겁니다. 왜 에서 말고 야곱이냐고 우리는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하나님 마음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권한이라는 겁니다. 이어지는 20-21절을 보십시오.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충분한 해답이 되십니까? 토기장이가 흙 한 덩이로 무슨 그릇을 만들든 그것은 토기장이 마음이고, 엿 장수가 1분에 가위를 몇 번 치든 그것은 엿 장수 마음 아니냐는 겁니다. 토기장이는 흙 한 덩이로 뚝배기를 만들 수도 있고, 백자나 청자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토기장이 마음입니다. 나는 왜 요강이냐? 나는 왜 개 밥그릇이냐?고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는 것, 이삭을 택하고 이스마엘을 버린 것, 지지리도 못난 우리나라 사람을 약속의 자녀로 삼으시고 세련된 일본 사람을 육신의 자녀로 버려두시는 것은 그 누구도 간섭해서는 안 되는 하나님의 고유한 주권 영역입니다. 우리가 할 일이 있다면 오직 감사일뿐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결단만 남습니다. 부디 하나님의 이 절대 주권과 고유한 선택의 권한을 누구보다 깊이 존중하며 감사하며 우리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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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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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설교영상 보기: <a href="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Osn21MSOz34$">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Osn21MSOz34$</a></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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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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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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