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에르케고르와 레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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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장마는 참 지리했습니다. 음습한 공기와 쾨쾨한 곰팡내도 힘들었지만 폭우가 내리는 밤이면 혹 주차장에 빗물이 넘쳐 교회로 닥치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 때문에 잠을 설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겐 이렇게 비오는 7월이면 꼭 생각나는 추억 하나가 있습니다. 독일 유학 시절인 1985년 7월 2일 아침부터 주룩주룩 비가 내렸는데 뮌헨 공항을 거쳐 난생 처음 덴마크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같은 기숙사의 덴마크인 친구 베르겐이 방학을 맞아 고향인 코펜하겐으로 간다며 3일 동안은 재워주고 먹여 줄 수 있다는 말에 옳다구나 하고 따라나선 것입니다. 사실 제가 덴마크 여행을 원했던 것은 순전히 키에르케고르 때문이었습니다. 신학도라면 누구나 20세기 초중반을 풍미한 <변증법적 신학>에 큰 영향을 미친 (특히 칼 바르트에게) 키에르케고르에 한 번쯤 매료되게 마련인데 저 역시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의 실존을 위한 진지한 성찰과 진리를 위한 치열한 싸움에서 신선한 감동과 도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본 대학 시절부터 그에 관한 책들을 눈에 띄는 대로 사 모았습니다. 지금도 제 책장에 꽂혀 있는 <불안의 개념>, <공포와 전율>, <죽음에 이르는 병>, <이것이냐 저것이냐: 삶의 단상>, <반복>, <철학적 단편> 그 외에도 키에르케고르 연구의 권위자인 독일의 히르쉬(Hirsch) 교수의 책이라든가 코펜하겐 대학의 가이스마르(E. Geismar) 교수의 책들이 다 그 시절 점심을 굶어가며 샀던 책들입니다.
코펜하겐에 도착한 저는 맨 먼저 도시 북서쪽 외곽 아시스텐스 공동묘지에 있는 그의 무덤부터 찾았습니다. 의외로 무덤은 초라했고 아버지, 형과 함께 누워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두고 간 시든 꽃다발 하나만 덩그러니 놓였을 뿐 아무런 꾸밈도 장식도 없는 무덤 앞에서 저는 잠시 그의 짧고 고뇌에 찬 생애를 회상해 본 후 거기서 다시 약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레기네의 무덤도 찾았습니다. 코펜하겐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던 키에르케고르가 열 살 연하의 레기네를 만나 사랑에 빠진 건 그녀의 나이 열여섯 살 때였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 목사시험에 합격한 키에르케고르는 전격 레기네와 약혼을 합니다. 그러나 곧 파혼을 선언하는데 그것은 태생적으로 우울하고 사색적인 그가 순결하고 명랑한 레기네를 도저히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어서라고 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파혼한 사이지만 레기네는 키에르케고르가 일생을 두고 사랑했던 유일한 여인이었습니다. 키에르케고르의 초라한 무덤과는 대조적으로 그녀의 무덤은 퍽 웅장했고, 비석에는 <레기네 슐레만>이라고 적혀 있었으며 남편과 함께 누워 있었습니다. 살아서도 이루지 못한 사랑이었는데 죽어서도 다른 남자와 나란히 묻혀있는 모습이 퍽 쓸쓸해 보였습니다. 평생을 우수, 불안, 절망, 죄의식 속에서 헤어나기 위해 몸부림하며 순수한 절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고독한 단독자 키에르케고르, 그는 실존주의와 함께 유명해졌지만 또 실존주의가 비판을 받으면서 도매금으로 처리된 듯한 느낌이 있어 늘 안타까운 사람입니다. 그는 레기네와의 파혼 이후 평생을 사색과 집필과 덴마크 국교회와의 투쟁으로 보냈습니다. 이성과 합리적 철학으로는 체계화할 수 없는 인간 실존의 모습을 부각시키며 헤겔 철학을 비판하는 한편 사회적 조직으로 굳어져 버린 덴마크 국교회에 맞서 진정한 신앙의 본질을 알리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필생의 소명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혹독한 신앙 훈련 덕분에 대단히 경건한 사람이요 목사요 실존주의의 대가였으나 당시 덴마크 국교회에 대해서는 몹시 비판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기독교 정신을 상실하고 단지 습관과 제도로만 존재하는 현실 교회의 문제점과 신학적 오류들을 특유의 철학적, 인간학적, 심리학적 필치로 저술해 출판하는 일에 온 정력과 전 재산을 다 쏟아 부었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조직 교회와의 과도한 투쟁은 결국 그를 지치게 했고 마침내는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1855년 10월 어느 날 그는 산책길에 쓰러졌고, 그로부터 한 달 뒤 4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출간한 잡지 <순간> 제10호의 서문에는 이런 그의 최후 일갈이 나옵니다. <조직과 제도로서의 교회나 부와 권력으로 유지되는 교회에는 더 이상 생명이신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왜 이 나라 국교회는 모른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