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기드온의 칼 (삿 7:9-14)

기드온의 칼

삿 7:9-14


<...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느니라>(14절).

미디안 진영의 한 병사가 친구의 꿈을 해몽하며 한 말입니다. 즉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렸다>(13절)는 꿈 얘기를 듣고 한 말입니다. 꿈에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장막을 쳐서 무너뜨렸다는 보리떡 한 덩어리가 곧 <기드온의 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미디안을 기드온의 손에 넘기셨다고 해몽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에도 주님의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칼을 주러왔노라>(34절). 너무도 뜻밖의 말씀이어서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도대체 <주님과 칼>은 서로 어울리지도 않고, 또 <평화가 아니라 칼>이라는 말씀도 섬뜩할 만큼 과격하여 잘 납득이 안 될 지경입니다. 


그러나 그 옛날 <기드온의 칼>이나 <주님의 칼>은 겹겹이 우리의 양심을 둘러싸고 있는 허위와 위선의 철책을 해체하는 신검입니다. 언제나 상대의 진영에 비집고 들어가 그에 맞서려는 자와 그 앞에서 모든 불의의 무리를 베겠다는 자로 그 집단을 갈라놓습니다. 한 개인의 영혼도 마찬가집니다. 누구나 <주님의 칼>을 경험하면 태평하게 살던 삶에 분열을 겪게 됩니다. 주님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저항할 것인가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드온의 칼>처럼 항상 <주님의 칼>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그게 없이는 굳어 버린 양심과 냉혹한 이 시대를 찌르지 못하고 생명을 구하기 위한 해체와 대수술에도 참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의 칼이 미디안의 장막을 무너뜨렸듯이 주님의 칼에 찔림 없이 옛 존재의 껍질을 깰 수는 없고, 또 그 칼에 찔리는 아픔 없이 새 살이 돋는 법은 없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적용>

-본문 13절은 왜 기드온을 <보리떡 한 덩어리>로 상징했을까요?

-본문 10절에 나오는 기드온의 <두려움>이란 어떤 것이었을까요?

-당신이 경험한 <주님의 칼> 얘기가 있다면 적어 보십시오.


<기도>

주님, 기드온은 자원한 장정들을 다 돌려보내고 겨우 3백 명만을 남기자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적들을 생각할 때 크게 두렵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용기와 확신을 주시기 위해 기드온으로 하여금 적의 진지를 정탐하게 하셨고, 거기서 한 미디안 군사의 꿈 얘기를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접하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대 저희들도 누구나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적들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칼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부디 기드온처럼 그렇게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 쓰시기에 합당한 칼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적의 장막을 쓰러뜨리는 <하나님의 칼>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