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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8m] 마른 뼈들아, 말씀을 들을지어다! (겔 37:1-10)

201911208m

겔 37:1-10


(겔 37:1-10, 개정) [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7]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어떤 목사님이 매주 나름 열심히 준비해서 설교하는데, 늘 앞자리에 앉는 연세 많은 권사님 한 분이 예배 때마다 졸았습니다. 목사님은 그 권사님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서 작정하고 예배 시간에 공개적으로 물었습니다. “왜 설교 때마다 조십니까?” 권사님이 대뜸 “여기 앉아서 그 설교 한번 들어보세요. 안 졸고 배기나?” 오늘이 성서주일이어서 설교와 관련된 예화를 하나 말씀드렸습니다. 성서주일은 매년 12월 둘째주일입니다. 전 세계 교회가 함께 지킵니다. 한국 교회도 성서주일을 100년 이상 지켰습니다. 한국에 영국 성서공회의 도움으로 대한성서공회가 창립되었으니 유수한 전통입니다. 세계 교회가 성서주일을 지키는 이유는 성경의 소중함을 새롭게 인식하고, 각자가 열심히 보고 들을 뿐 아니라, 널리 성경을 보급하고 반포하자는 취지입니다. 


성경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책입니다. 지금도 연간 6억 권 이상 제작되어 반포됩니다. 불후의 스테디셀러입니다. 그런데도 성서만큼 사람들이 읽지 않는 책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보지도 않는데 왜 그렇게 많이 보급되고, 비싼 돈을 주고 삽니까? 성경에 대한 인식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성경을 읽는 책이 아니라, 그저 교회 올 때 들고 다니는 책으로, 기독교 신자라면 갖추어야 할 구색 정도로, 액세서리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평생 들고 다녀도 마태복음이나 창세기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열에 아홉입니다. 성경은 보고 공부해야 내 삶의 양식이 되지, 아무리 심장 가까이 들고 다녀도 효험이 없습니다. 그저 2000, 3000년 전에 기록된 고전일 뿐이고, 잘 제본된 책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왜 말씀이 중요할까요? 왜 우리가 성경을 반드시 열심히 보고 듣고 공부해야 할까요? 호세아 6장을 보면 충격적인 말씀이 나옵니다. 3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왜 그렇습니까? 6절입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은 우리가 제사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먼저 알고 나서 예배하기를 바라십니다. 기독교는 말씀에 대한 순종과 결단이지 맹목적인 제사 행위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의식의 종교가 아니라 말씀의 종교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알고 나서 믿고, 제사도 번제도 하나님을 알고 나서 드리는 게 순서입니다.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하나님은 제사보다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의식이나 형식, 제사를 훨씬 더 좋아합니다. 성경은 안 보면서,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알 생각은 안 하면서, 주일에 교회에 나와 1시간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때우려고 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를 데리고 어느 골짜기로 가셨습니다. 에스겔이 깜짝 놀랍니다. 그 깊은 골짜기가 온통 사람의 마른 뼈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 하반절 이하입니다.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당시 에스겔이 환상 가운데 본 마른 뼈들은 누구입니까? 본문에 이어지는 11절입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골짜기의 가득한 뼈들은 당시 바벨론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당시 그들은 정말 영락없는 마른 뼈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무 희망도 기대도 내일도 없는 그야말로 골짜기의 마른 뼈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런 현장에서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절입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얗게 마른 백골들이 어떻게 다시 살 수 있습니까? 에스겔은 딱히 할 말이 없어 주께서 아신다고 답합니다. 주님은 처방을 내리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산다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골짜기의 마른 뼈들도 얼마든지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살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런지는 7절 이하에 나옵니다. “[7]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이것이 하나님 말씀의 위력입니다. 말씀이 마른 뼈들을 능히 소생하게 만듭니다. 실제 주님은 죽어 무덤에 장사된 나사로도 말씀으로 불러내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그렇게 주님이 외치자 죽어 이미 부패되던 시신이 걸어 나왔습니다. 말씀을 들으면 시체도 일어나고, 백골도 짜 맞춰져 거기에 힘줄이 오르고 가죽이 덮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원래 하나님은 이 우주를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 분이 말씀으로 죽은 자를 살리지 못하시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본문에 “너희가 살리라”는 말씀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의사나 정치인들이 마른 뼈들로 가득한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가 누구든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이 그 안에 들어가야 비로소 뼈들이 움직이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입니다. 18세기 영국 사회는 한마디로 희망이 없었습니다. 온 나라가 도박꾼, 깡패, 아편쟁이들로 득실득실했습니다. 그때 나타난 사람이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자, 당장 놀라운 변화가 나타납니다. 술집이 하나둘 사라지고, 마약 중독자나 깡패가 앞 다투어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30년 만에 영국이 완전히 새로워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말라비틀어진 영국을 살린 겁니다. 미국도 마찬가집니다. 구두수선공에 불과한 무디가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무디의 복음운동이 미국을 거듭나게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정도 마찬가집니다. 여러분은 희망이 보이십니까? 지금 우리는 70년간 바벨론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만큼이나 모든 면에서 힘들고 어렵기 짝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골짜기에 흩어진 마른 뼈들처럼 모든 것이 암담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다시 삽니다. 그 길 외에는 없습니다. 에스겔 37장 12절 하반절도 보십시오.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면, 결단하면 무덤 속에서 나오게 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마른 뼈가 다시 살아나 힘 있는 하나님의 군사요 군대가 되기 위해서는 중요한 필요요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기입니다. 5절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생기는 히브리말로 <루아흐>입니다. 성령입니다. 14절에 나오는 <내 영>이라는 말과 같은 어휘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골짜기 가득 흩어진 마른 뼈들도 큰 군대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생기이기에, 성령이 충만하면 마른 뼈들도 막강한 하나님의 군대가 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말씀을 듣고 되살아날 뿐만 아니라, 성령을 듣고 충만하면, 마른 뼈들이 무적의 여호와의 군대로 재편됩니다. 늘 생기발랄하고 용감하게 살아가고 싶으십니까? 그리스도의 군사로, 여호와의 정예군으로 담대하게 살아가고 싶으십니까? 말씀으로, 성령으로 무장하십시오. 우리 사회와 대한민국이 새로워지기를 바라십니까? 대한민국이 한반도라는 골짜기에 가득 찬 마른 뼈들이 살아나 힘 있는 군대가 되기를 원한다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호세아는 하나님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이 해법입니다. 말씀과 성령이 우리 사회와 나라를 새롭게 하고 살리는 처방입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면 우리 모두가 용감하고 씩씩한 하나님의 군사, 군대가 됩니다. 누가 감히 여호와의 군대를 넘볼 수 있겠습니까? 다시 한 번 10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부디 말씀과 성령으로 이 땅 가득한 모든 마른 뼈가 살아나 하나님의 군대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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