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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2008년 6월 1일 주일낮예배/환경주일<br>본문: 창 3:1-21<br>제목: 자연과 사람</p>
<!-- paragraph:p0002 -->
<p>[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0]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p>
<!-- paragraph:p0003 -->
<p>먹지말라고 했던 과일 하나 따 먹었을 뿐인데, 하나님이 아담에게 벌 주신 것은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닙니까? 선악과가 그렇게도 위험하고 중요한 것이었다면 동산 중앙에 두시지 말고 동산 가에나 두실 것이고, 혹 중앙에 두시더라도 그 둘레로 철조망이라도 치셨어야 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인간의 타락 과정도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들어있는 것이라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죄값을 받아야 하지 않느냐는 의문입니다. </p>
<!-- paragraph:p0004 -->
<p>죄는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입니다. 살인죄든 과일 하나 먹은 죄든 그 죄는 치명적입니다. 마치 청산가리처럼 조금만 먹어도 죽습니다. 온 인류를 저주와 허무와 죽음에로 내몰만큼 죄는 무서운 것입니다. 선악과가 동산 중앙에 있었다는 사실도 유혹과 시험은 언제나 우리의 삶의 장 한복판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늘 오가는 바로 그곳에 유혹과 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는 피할 수 없고 맞서서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과를 범하지 않게도 하실 수 있었습니다만, 하나님은 애시당초 우리를 로봇으로 만들지 않고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판단과 선택과 결단은 자유의지를 가진 우리가 해야 합니다. 그 선택과 결단에 대한 책임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그래서 훗날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섭니다. </p>
<!-- paragraph:p0005 -->
<p>우리는 하나님의 예정을 기계적으로, 도식적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내가 예배드릴 때 몇째 줄에 앉을 것인가는 하나님의 예정 속에 없습니다. 이것은 내가 선택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마저 하나님의 예정 속에 있다면 우리는 기계일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격체이지 로봇이나 기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로 마음대로 선택하고 결단할 수 있지만, 그 책임을 하나님이 물으시기에 신중하게 선택하고, 바른쪽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책임적인 주체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최초에 자유의지를 주시며 창조하셨다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정은 큰 틀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 틀 안에서 우리는 책임적인 주체로, 자유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서로 충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총론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각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분과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십니다. 그 안에서 우리가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큰 틀거리요 우리는 그 안에서 책임적인 주체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에 대한 결산은 하나님 앞에서 엄중하게 하는 것입니다. 레일 위에서는 빨리 갈수도, 늦을 수도, 설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 레일이 하나님의 예정입니다만, 완급의 조절은 우리의 자유의지의 기능입니다. </p>
<!-- paragraph:p0006 -->
<p>물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타락할 줄도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에 우리가 선악과를 따먹을 줄 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미리 그렇게 정해 놓으신 것은 아닙니다. 따먹을 것이냐 말 것이냐는 우리 자유의지의 몫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가 타락할 줄은 아신 것입니다. 막지 않으신 것입니다. 훗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셨는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나의 몫입니다.</p>
<!-- paragraph:p0007 -->
<p>어쨌든 인간은 하나님의 사전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녕 죽는다’는 경고가 있었음에도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습니다. 그런데 그 경고대로 아담과 하와가 죽었습니까? 죽기는 커녕 선악과를 범한 이후에도 천수를 다했습니다. 창세기 5장 4-5절입니다: “[4]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5] 그가 구백삼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는다’는 말씀은 대체 무슨 뜻입니까? 단순한 하나님의 협박입니까? 이것은 영적인 죽음을 뜻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단절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3장 8절입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기에 중요한 동사 두 개가 나옵니다. “피했다”와 “숨었다”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뻐하지 않고 피하고 숨은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끝났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에 파국이 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무서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피하고 숨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속 찾고 부르시는데,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피하고 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된 숨고 도망하는 역사는 오늘날까지 계속됩니다. 이제는 사람이 어디서부터 도망왔는지 모릅니다. 또 어디로, 왜 도망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사람은 숨가쁘게 도망가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너무도 까마득하고 낯선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디서부터 왔냐?’고 물으면 ‘글쎄요’하고 대답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영적 죽음을 뜻합니다. 죄는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적으로 망가뜨립니다. 이것이 진정한 죽음입니다.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대로 가차없이 죽었습니다. </p>
<!-- paragraph:p0008 -->
<p>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인간의 지적인 타락을 불러왔습니다. 7절을 보면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그들은 벗은 줄을 몰랐습니다. 입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죄를 짓자 새삼 부끄러워 치부를 가리고 감추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벗은 것과 입은 것이 대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무화과 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은 것입니다. 안다는 것은 무섭습니다. 도박을 모르는 사람은 도박도 하지 않습니다. 도박이 주는 일확천금을 아는 사람이 도박하는 것입니다. 담배 맛을 모르는 사람은 안 합니다. 마약의 맛을 모르는 사람은 안 합니다. 이것이 곧 파멸이요 죽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알면 안 하고는 못배깁니다. 그래서 금단의 열매를 범한 사람은 계속 범해야 합니다. 유럽에 가면 FKT 라는 곳이 있습니다. 유럽 사람이라고 해서 아무데서나 옷을 벗지 않습니다. 법적으로 지정된 곳이 있습니다. 제가 있었던 뮌헨 대학 뒤쪽에 엥글리쉬 가르텐이 있는데 거기서는 마음껏 옷을 벗어도 좋습니다. 독일은 볕이 많지 않아서, 볕이 난다고 하면 사람들이 다 그 볕에 나가 선탠하고 볕을 쪼입니다. 학교에서 강의를 듣다가도 바깥에 볕이 났다하면 살금살금 다 기어나갑니다. 그 엥글리쉬 가르텐에 가서 남녀구분 없이 볕을 쪼입니다. 참으로 진풍경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범죄하기 전에는 그랬습니다. 옷이 다 벗은 공원에서는 옷 입은 것이 이방인입니다. 범죄하면서 인간의 복식문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최초의 옷은 무화과 나무 잎사귀이고, 그게 곧 마르니까 하나님이 가죽으로 아담과 하와의 치마를 지어주셨습니다. 따라서 모피의 역사도 유구합니다. </p>
<!-- paragraph:p0009 -->
<p>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사회적 관계의 타락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추궁하시자 아담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여자가 주어서 먹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책임을 묻고, 여자를 향한 원망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자를 안 주셨으면 내가 안 먹었을텐데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아담과 하와의 관계도 끝난 것입니다. 처음에 아담이 하와를 봤을 때, ‘내 살 중의 살, 내 뼈 중의 뼈’라는 최고의 찬사를 보냈습니만, 선악과를 먹고나자 그 둘 사이의 관계가 ‘저 여자 때문에’, ‘하나님이 저 여자를 주셔서’ 라면서 변질되고 맙니다. 그 다음 대에 가서는 형 가인과 동생 아벨을 죽이는 인류 최초의 살인극이 벌어집니다. 이것이 다 죄의 값입니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탄나고, 부부 사이에 파국이 일어나고, 형제 사이에 살인이 생긴 것, 이 모든 것이 죄로 인해 온 것들입니다.</p>
<!-- paragraph:p0010 -->
<p>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자연의 저주까지 가져왔습니다. ‘땅이 저주를 받고 가시와 엉겅퀴를 낸다’고 합니다. 인간의 타락이 생태학적 파국을 가져왔습니다. 자연이 약육강식의 살벌한 장이 된 것입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땅이 저주받았다는 것을 우리는 요즘 실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연의 천적이 되었습니다. 자연을 무자비하게 파괴한 나머지 자연이 반격에 나선 것입니다. 미얀마의 싸이클론, 중국의 대지진, 조류독감, 광우병 같은 것들은 모두 자연의 반격입니다. 천재가 아니라 인재가 맞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자연을 파괴한 결과입니다. 자연은 인간 생존의 요람이 아니라,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책이 없습니다. 바울은 일찍이 ‘모든 피조물이 신음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고 했습니다. 땅의 저주가 인간의 타락으로부터 왔다면, 그 회복도 인간의 회복으로부터 연원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의 지위를 제대로 회복할 때만 땅도 회복됩니다. 그러므로 자연회복은 인간회복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인간이 먼저 죄를 회개하고 죄를 멀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파괴된 자연이 회복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이, 피조물들이 신음하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며 기대하고 있습니다. 인간회복 없는 자연회복은 없습니다. </p>
<!-- paragraph:p0011 -->
<p>이렇게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과의 파탄, 사람 사이의 파탄, 자연의 파탄등 총체적인 파국을 불러들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오늘날도 우리에게 금단의 열매가 있습니다. 도처에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열매들이 있습니다. 마귀의 유혹이 아무리 집요해도 거기에 속아서 하나님이 금하신 실과를 따 먹으면 정녕 죽습니다. 금단의 열매가 무엇이며, 그것을 범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깊이 생각하십시다. 특히 피조물들이 기대하고 고대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다 새로워지는 역사가 있기를 빕니다. <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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