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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장미의 월요일]과 [재의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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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span class="s1"><span>내일이 &lt;장미의 월요일&gt;(Rosenmontag), 모래는 &lt;제비꽃 화요일&gt;(Veilichendienstag), 그리고 이어지는 수요일이 바로 올 사순절이 시작되는 &lt;재의 수요일&gt;(Aschermittwoch)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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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 class="s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br></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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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 class="s1"><span>&lt;장미의 월요일&gt;이란 사순절 기간 동안 고기와의 이별이 아쉬워 벌이는 사육제(카니발)가 최절정에 이르는 날을 뜻합니다. 그래서 &lt;장미의 월요일&gt;에 벌이는 카니발 퍼레이드가 언제나 그 해 카니발 축제의 피날레가 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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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 class="s1"><span><br></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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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 class="s1"><span>그리고 다음 날인 &lt;제비꽃 화요일&gt;에는 그동안 무질서와 광란에 빠졌던 축제를 마무리하며, 특히 축제에 동원했던 크고 작은 인형들을 불태우는데 이 퍼포먼스를 &lt;누벨 화형식&gt;(Nubbel Verbrennung)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카니발 기간 동안 저지른 죄와 방탕을 회개하는 의미로 인형을 대신 사르는 의식이어서 보통은 사제가 집례합니다. 그리고 맞이하는 수요일이 바로 A.D. 325년 니케아 회의 때부터 지켜 온 &lt;재의 수요일&gt;인데, 이 날이 바로 머리에 검불을 쓰고 재 위에 앉아 회개하는 날로 부활절 전 40일간의 고난기간인 사순절이 시작되는 첫날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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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 class="s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a href="http://thegreen.or.kr/files/attach/images/64/979/055/2a24defe6fd8b7ba63513b3c0d04ca7d.jpg" class="image-placeholder">Aschermittwoch.jpg</a>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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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 class="s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br></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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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 class="s1">구약 사사기에는 전설적인 거인 삼손의 얘기가 나옵니다. 블레셋의 창녀 들릴라의 거듭된 유혹에 넘어간 삼손이 결국 자신의 힘의 비밀인 머리털을 깎이고 두 눈마저 뽑힌 채 감옥에 갇혀 짐승처럼 연자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됩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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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 class="s1"><span><br></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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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 class="s1"><span>그러던 어느 날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신 다곤의 신전에 모여 축제를 벌이다 삼손을 희롱하기 위해 끌어낸 자리에서 삼손이 엄숙한 최후의 기도를 드립니다. &lt;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강하게 하사 원수를 갚게 하옵소서&gt;(삿 16:28)하며 힘을 다해 자신이 묶인 신전 중앙의 기둥을 부러뜨려 거기 모인 3천 명의 적들과 장렬한 최후를 마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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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 class="s1"><span><br></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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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 class="s1"><span>희랍신화에도 이와 비슷한 거인 프로메테우스 얘기가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신만이 독점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줌으로써 인간편에 섭니다. 그러나 그 일로 제우스의 진노를 사 코카서스 바위에 결박당한 채 계속 독수리에게 간을 뜯기다 최후를 맞습니다. 그래도 프로메테우스는 삼손보다 낫습니다. 삼손은 그 최후가 복수인데 반해 프로메테우스는 끝까지 인간을 배려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를 배신한 것처럼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 역시 형을 배신하고 &lt;판도라의 상자&gt;를 열므로 결국은 제우스와 인간 사이의 불화를 더욱 악화시켰을 뿐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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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 class="s1"><span><br></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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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 class="s1"><span>그런데 복음서에 나타난 주님의 최후는 또 다른 차원을 전합니다. 삼손이 기둥에 묶이고, 프로메테우스가 바위에 결박당했듯 주님도 그렇게 십자가 형틀에 달려 최후를 맞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절망과 고통 속에서 드린 마지막 기도는 &lt;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gt;였습니다. 주님의 그 마지막 절규는 복수나 배신이 아니라 오히려 원수까지도 용서하신 사랑의 철저화이자 이쪽과 저쪽의 불화 사이에서 자신을 화해의 제물로 바치고자 하신 중보의 탄원이었습니다. 의절한 아버지와 아들, 갈라선 아들과 며느리의 두 손을 함께 잡고 숨을 거둔 어느 어머니의 최후와도 같은 것이고, 원수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바쳐진 화해의 향불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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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 class="s1"><span><br></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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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 class="s1"><span>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우리 민족의 3.1운동도 일본에 대한 보복행위가 아니었습니다.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못가진 자에게 넘겨주고자 한 프로메테우스적 거사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원수된 두 나라 사이에 자신들을 화해의 제물로 바치고자 한 충정이었을 뿐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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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 class="s1"><br></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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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 class="s1">부디 보복이나 배신이 아닌 용서와 사랑의 화신들이 되십시오. 그게 바로 고난의 절기인 이 사순절에 우리가 묵상해야 할 진정한 십자가 정신이며, 주님의 그런 화해의 죽음이 마침내 부활사건을 가져왔음을 깊이 깨달을 일입니다.</span></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