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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영혼을 사랑하는 자(잠 19:8-16)

자기의 영혼을 사랑하는 자
잠 19:8-16
2011.07.08

자신의 육체를 미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해 환자가 아닌 한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육체를 위하고 꾸미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요즘 거세게 불고 있는 다이어트 열풍이나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며 너도나도 찾는 성형외과 역시도 다 자기 육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결과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기의 영혼을 사랑하고 영혼을 위해 애쓰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실은 영혼이 건강해야 그게 진정한 행복인데도 사람들은 다 이 점을 놓치며 살아갑니다. 

지혜와 명철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8절).
여기서 말씀하는 <지혜>와 <명철>이란 당연히 거룩한 지식, 하나님의 뜻에 대한 신령한 통찰력을 가리킵니다. 이런 지혜와 명철이야 말로 자신의 영혼에 가장 유익한 건강이자 부요, 존귀함이기 때문에 곧 최상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결코 무공해 웰빙식이나 온갖 건강보조제 혹은 다이어트나 성형수술로 건강해지거나 아름다워 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참된 지식과 계시에 대한 바른 통찰을 가져야 비로소 건강하고 투명해집니다. 이 영적인 지혜와 명철이 빈곤하면 그 영혼은 필연적으로 시들고 남루해집니다. 당신의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하십니까? 
육체 이상으로 영혼의 건강과 아름다움이 소중하다고 믿으십니까? 진심으로 맑고 투명한 영성을 바라십니까? 지혜와 명철을 구하시고,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에 대한 깊은 지식과 혜안을 사모하십시오. 

더디 노함과 용서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11절).
자신의 영혼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자는 결코 성급하게 노하거나 남을 끝까지 미워하거나 증오하지 않습니다. 왜요? 분노와 증오야 말로 내 영혼에 가장 치명적인 해악이 되기 때문입니다. 분노와 증오는 남을 해치기 전에 자신의 영혼을 먼저 해칩니다. 따라서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는 자는 필히 더디 노해야 하고 또 해가 지도록 오래 노를 품지 말아야(엡 4:26) 합니다. 뿐만 아니라 남의 허물도  관대하게 용서해 줄줄 알아야 합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 분노와 증오는 자신의 영혼을 해치는 최악의 자해요, 더디 노함과 용서는 내 영혼의 <영광>이자 <슬기>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계명과 행실
<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거니와 자기의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으리라>(16절). 지혜와 명철, 즉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계시에 대한 통찰은 언제나 내 행실을 통해 육화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지혜와 명철이 아닌 바에는 반드시 실천을 통한 삶의 열매가 담보되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자신의 영혼을 위한 양약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엔 우리 한국교회는 아직도 이 점이 가장 약한 것 같습니다. 신학도 있고, 교리도 있고, 교회마다 성경공부 프로그램도 넘치는데 그 모든 것의 삶을 통한 검증이 없어 아직은 지식 따로, 삶 따로의 분열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최근 세상 사람들의 교회 불신과 <개독교>라는 모욕은 우리 스스로 자초한 불행에 다름 아닙니다. 우리에게 복음에 걸 맞는 삶이 없었기에 세상 사람들이 실망하여 등을 돌린 것입니다. 따라서 남을 탓하기 전에 우리 자신의 깊은 자성과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혼이 새로워지고 한국 교회가 새로워집니다.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히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눅 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