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할지라도(잠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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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할지라도
잠19:1-7
2011.07.07
가난한 사람은 자칫 남에게 멸시를 받고 소외를 당하기 쉽습니다. 가진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요즘은 더 더욱 그렇습니다. 식당을 가도 외제차를 타야 대접을 받고, 어느 모임을 가도 명품 한두 점은 지녀야 알아준다는 세상이 됐습니다. 청년실업이 갈수록 심각하다는데도 20대 명품 족은 도리어 는다니 이해할 수 없습니다. 형편이나 분수에 맞지도 않으면서 굳이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니는 <된장녀>들의 심사가 궁금합니다. 결국 허세와 과시욕에 약한 이 세태의 딸들 아니겠습니까?
성실하면
<가난해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리라>(1절).
현자는 가난해도 성실하면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리며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사람>보다 백번 낫다고 합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살아도 불행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부자들일 수록 정신과적 질환이 더 많으며 술과 마약에 절어 사는 사람들도 적지않습니다. 자살자 가운데는 부와 명예가 아니었던들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 사람도 분명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해도 성실하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 복되고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가난함에도 게으르거나 나태하면 평생 고생이지만 비록 가진 것은 없어도 성실하면 얼마든지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가난하십니까?
더욱 성실하십시오. 패역한 부자들을 부러워 마십시오. 그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지식이 있으면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2절).
또 시편은 <명철이 없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49:20)고도 했습니다.
<지식이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다>는 것은 참된 지식이 없는 한 바른 분별이 없으므로 그 소원이 필연적으로 악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가난하더라도 지식이 있으면 그는 결코 불행하지 않으며 누구보다도 값진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내가 진정으로 추구하고 바라며 기도해야할 바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살아가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은 부를 가져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바를 깨닫지 못하고 삶의 참된 목표를 놓치고 산다면 그 사람은 그야말로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옛날 우리나라의 선비들은 가난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지식을 습득하고 실천하며 산다는 자부심과 보람으로 청빈을 도리어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으로 충만하십시오. 그것만으로도 배부름을 누리며 넉넉한 행복감을 느끼십시오.
감사하면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 하느니라>(3절).
가난한 자들이 흔히 범하는 두 가지 미련한 짓은 스스로 자신을 궁지와 곤경에 몰아넣는 것과 매사에 하나님을 탓하고 원망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두 가지가 늘 그로 하여금 실패하고 좌절하게 하는데 그건 자신의 어리석음의 대가이므로 어쩔 수 없습니다. 특히 하나님에 대한 원망은 반드시 징벌과 저주를 부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을 보십시오. 가장 많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그들의 원망과 불평, 불만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러나 비록 가난할지라도 자족하며 감사하며 살면 하나님이 반드시 축복하시고 응답하십니다. 더구나 매사에 선재적으로 감사드리면 더욱 큰 은혜를 베푸십니다. 따라서 감사하는 자에게는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늘 가난이 문제가 아니라 감사가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