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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가을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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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span class="s1"><span>우리는 요즘 기도를 잊어버렸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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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02 -->
<p class="p2"><span class="s1"><span>기도가 많이 낯설어 졌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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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03 -->
<p class="p2"><span class="s1"><span>바쁜 일상 때문이기도 하고, 그저 어려울 때만 절실해지는 탓에 기도가 정말 생소해졌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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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04 -->
<p class="p2"><span class="s1"><span>믿는 자는 곧 기도하는 사람들이고, 교회는 기도하는 공동체, 만인이 기도하는 집인데 이제는 교회에서 기도가 거의 실종되다시피 했습니다. 갈수록 기도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착각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현실이 쓸쓸하기 그지 없습니다.</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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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 class="s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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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 class="s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a href="http://thegreen.or.kr/files/attach/images/64/547/055/475b2f9ce379e3cf63ebf6f065a38aac.jpg" class="image-placeholder">gebet.jpg</a>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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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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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span><br></span></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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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 class="s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br></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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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span class="s1">&lt;주여, 때가 왔습니다 /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십시오&gt;</span><span class="s2"><span> 하고 시작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lt;가을날&gt;도 실은 &lt;가을 기도&gt;였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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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12 -->
<p class="p2"><span class="s1"><span>뜨거웠던 지난 여름을 회고하며 잘 익은 바람의 향기와 함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 겁니다. 이렇듯 수도사와도 같은 청빈한 영혼으로 자신을 비우며 마치 긴 편지를 쓰듯 맑고 깨끗한 기도를 드리면 우리의 영성도 가을 하늘빛처럼 투명해지고 더욱 깊어집니다. 릴케의 이 &lt;가을날&gt;은 그가 체코의 프라하 대학에서 독일의 뮌헨 대학 문학부로 옮긴 후 낸 생애 첫 시집인 &lt;기도 시집, 1905&gt;에 실린 시로 자신의 간절한 염원을 시적 언어로 옮긴 &lt;기도문&gt;이자 하나님을 향한 치열한 날갯짓에 다름 아니었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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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13 -->
<p class="p4"><span class="s1">&lt;남은 과일들이 무르익게 하시고 / 이틀만 더 햇빛을 주사 / 그것들이 다 제 맛을 내게 하시고 / 진한 포도주의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gt;</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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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14 -->
<p class="p2"><span class="s1">시인은 가을 햇볕 속에서 익어가는 과일들의 완숙을 기다리며 주님의 은총과 축복을 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lt;가을 기도&gt;가 소중한 것은 과일 내음 그윽한 잘 익은 신앙의 열매, 성령의 열매 때문입니다. 주님은 &lt;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gt;(요 15:8)고 하셨습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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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15 -->
<p class="p2"><span class="s1"><span>릴케는 가을날 느끼는 서정에 열매와 결실을 더해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삶의 깊이를 근원적으로 성찰한 고독과 우수의 시인이었습니다. 이렇듯 &lt;가을 기도&gt;는 자신의 삶에 충실하며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만이 가꿀 수 있는 겸허함이자 경건함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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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16 -->
<p class="p4"><span class="s1">&lt;이제 곧 겨울이 올 것입니다 /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을 것입니다 /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 /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쓰며 /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 일 것입니다&gt;</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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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17 -->
<p class="p2"><span class="s1"><span>릴케의 운명의 겨울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습니다. 흔히 그가 장미 가시에 찔려 사망했다고 하지만 실은 백혈병으로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1926년 12월 29일 새벽 5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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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18 -->
<p class="p2"><span class="s1"><span>시신은 그의 유언대로 스위스 라롱의 교회 묘지에 안장되었고, 묘비 역시 그가 유언장에 남긴 그대로 옮겼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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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19 -->
<p class="p4"><span class="s1">&lt;장미여,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며,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그 누구의 잠도 아닌 잠이여!&gt;</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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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20 -->
<p class="p2"><span class="s1">언제 닥칠지 모르는 자신의 운명의 겨울을 준비하는 엄숙함이 바로 오늘 우리의 진정한 &lt;가을 기도&gt;입니다.</span></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