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03m: 원초적 감사(살후 2:13-17) 맥추감사주일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2011년 7월 3일 주일낮예배/맥추감사주일
본문: 살후 2:13-17
제목: 원초적 감사
[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14]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5]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17]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이하를 보면 바울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실성이 있습니까? 오늘은 맥추감사절이고 가을에는 추수감사절을 지키는데 1년에 한 두 차례 감사하는 정도야 가능하겠으나, 어떻게 날마다 순간마다 일마다 사건마다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전반기를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만사형통하셨습니까? 이 말씀은 무엇을 뜻할까요? 터무니없는 바울의 이상주의요 낙관주의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범사에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은 왜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지가 나옵니다. 첫째, 처음부터 우리가 택함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능히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13절입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우리는 남보다 착하거나 잘 나서, 남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고 믿어서, 내가 남보다 기도를 더 한 결과 하나님이 나를 택하신 게 아닙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처음은 언제입니까? 태초입니다. 아니 태초 이전을 말합니다. 창세 이전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 이하를 보면, 창세 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했다고 합니다. 창세 이전은 무슨 뜻입니까? 처음부터 우리를 택하셨다는 말씀은 우리의 믿음 이전에, 기도 이전에, 기독교로 개종 이전에, 회개 이전에, 충성 이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셔서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원초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명명백백한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에는 어떤 전제도 없습니다. 어떤 자격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요, 주권 행위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은 100% 은혜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99%, 우리가 1% 투자해서 얻은 결과가 아닙니다.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여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것은 하나님만의 작품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할 일이 있다면 오직 한 가지 감사입니다. 내가 한 게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복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어떤 처지와 조건에서도 원초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입니다.
둘째,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원초적인 근거는 성령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13).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성령으로써 관리하십니다. 어떻게 관리하십니까? 거룩하게 하십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교리적인 용어로 성화(聖化)라고 합니다. 성화는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여러분, 성화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하나님이 빨리 우리를 데려가지 않으시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성화되기 위한 말미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지상 목표는 성화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성화되어야 할 이유는 천국이 거룩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에는 거룩한 것만 있습니다. 천국은 거룩해야 살 수 있는 세계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거룩해야 훗날 천국 갔을 때 문화적인 충격이 적고, 천국 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습니다. 다 거룩한데 나 혼자 거룩하지 않다면 얼마나 거북하고 적응하기 힘들겠습니까? 저는 79년 10월 1일에 독일에 갔습니다. 독일이나 한국이 다 지구촌인데, 그럼에도 그때 받은 문화적인 충격은 참으로 컸습니다. 하물며 천국이야 어떻겠습니까?
최근 어떤 분이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 공개 질의를 했습니다. 질문 내용은 이런 겁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죽으면 천국 갈 텐데 왜 믿는 사람조차도 이 땅에서 오래 살려고 버티느냐는 겁니다. 질문 자체가 원색적이고 단도직입적이긴 해도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다 천국 가기를 원하고, 천국이 이 세상보다 더 좋은 곳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당장 죽어서 천국 가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어떻게라도 이 세상에서 하루라도 더 살고 가기를 원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겁니다. 삶의 본능적인 욕구나 막연한 이 세상의 미련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준비가 덜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당장 죽어 천국 심판대 앞에 서기가 부끄럽다는 사실입니다. 언제 죽어도 떳떳이 주님 앞에 설만큼 성화가 안 되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아직도 이 땅에서 사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성화가 더 되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40년간 광야를 돌아다닌 이유는 애굽에서 입은 400년의 때를 벗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의적으로 광야를 헤매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탈출 1세대는 성화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 도태된 겁니다. 1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이미 창세 전에 이루어진 우리의 선택은 그 주체가 전적으로 하나님입니다. 선택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그런데 성화의 주체는 나, 우리입니다. 내가 의지를 발동해야 하고, 내가 기도하고, 헌신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선택은 하나님의 은혜 맞습니다. 성화는 내 신앙생활의 산물입니다. 내가 애써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화는 절대로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이렇지만, 실제로는 성화도 성령의 도움 없이는 안 됩니다. 그래서 지금 본문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시면서 내게 끊임없이 역사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게 기도하고 싶은 충동, 말씀을 가까이 하고 싶은 욕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래 내 안에 계신 성령의 고유한 역할은 소위 견인(牽引)입니다. 우리를 무작정 천국으로 데려가는 게 아니라 성화되게 하여 데려가신다는 것입니다. 내 몫인 성화까지도 성령이 역사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은 보혜사입니다. 분명 성화의 주체는 나지만, 성령이 나를 가까이에서 돕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위로 때문입니다. 본문 16절 하반절입니다.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이 세상도 우리에게 위로를 주나 그것은 순간적인 것이요 기만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는 소망이 됩니다.
올해 반년을 되돌아보십시오. 얼마나 자주 절망감과 좌절감에 흔들렸습니까? 강한 척해도, 아무 일 없는 척해도 우리가 속으로는 얼마나 자주 울었습니까? 전반기를 살고 다시 후반기를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로하신 겁니다. 성령께서 필사적으로 우리를 붙잡고 여기까지 오신 것입니다. 그 은혜를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은혜에 배은망덕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우리 안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이 후반기에 더욱 신나서 우리를 이끄십니다. 부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십시다. 시편에도 모세의 시가 있다는 사실 아시지요? 시편 90편입니다. 6절 이하입니다. “[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7]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8]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1]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모세가 숱한 시련을 겪으며 깨달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인생은 무상하다는 겁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둘 때 의미있는 인생이라는 게 모세의 고백이요 결론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실망하게 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영원한 소망을 갖게 하십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무너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능히 이 세상을 승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세 가지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께 원초적인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비록 소출이 없고, 외양간의 송아지가 없어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게 옳다는 것이 바울의 역설입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 미디어: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