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24m] 성탄을 거부한 사람들 (마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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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4m
마 2:1-12
성탄을 거부한 사람들
(마 2:1-12, 개정)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2]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요즘은 성탄 시즌이 되면 지구촌 어디서나 요란합니다. 화려한 장식과 캐롤이 넘칩니다. 장사하는 사람에게는 대목입니다. 2000년 전 첫 성탄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쓸쓸했고 적막했고 초라했습니다. 그야말로 요한복음 1장 10절 이하의 말씀 그대로 였습니다.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은 왜 그랬을까요?
우선 정치인들 권력가들은 주님의 성탄을 반기지 않았습니다. 본문 1절 이하입니다.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은 주님 성탄 때 유대 왕이었습니다. 어느 날 동방박사들이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왕이 나신 곳을 묻자 헤롯은 기절초풍했습니다. 자기가 유대 왕인데 왕이 났다고 하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7절 이하입니다. “[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헤롯은 큰 관심을 보입니다만, 그것은 주님을 경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 확인되면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헤롯이 두 살 이하 영아들을 다 살해한 것입니다. 헤롯은 주님을 없애기 위해 수많은 영아를 살해했습니다.
어느 시대나 정치가나 권력가들은 주님의 존재를 환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자기들 권력에 위협이 된다고 느낍니다. 그들은 일단 경계하고 적대하지 경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때도 로마 황제와 권력의 이름으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죄패를 다는데 “유대인의 왕”입니다. 주님은 정치범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것은 마지막까지 당시 권력이 주님을 자신들의 권력을 위협하는 적대자로 봤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정치 권력가들에게 주님은 천적이었습니다. 헤롯은 말로는 주님께 가서 경배한다고 하지만 그 속내는 주님을 해치려고 합니다. 헤롯이야말로 모든 시대의 정치 권력가들의 상징입니다.
다음은 제사장과 서기관들입니다. 그들은 직업적 종교인들입니다. 주님이 성탄하신다면 가장 앞장서서 환영하고 반겨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렇게 방해합니다. 4절 이하입니다.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그들은 머뭇거리지 않고 미가서 5장에 이렇게 생생하고도 구체적으로 예언되어 있다고 보고하며 정답을 이야기합니다. 참으로 성경박사답습니다. 그들은 정확히 주님의 탄생지를 맞추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누구보다 먼저 베들레헴으로 달려갔습니까? 한 사람도 달려간 사람은 없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남에게는 그리스도의 탄생지가 베들레헴이라고 족집게처럼 알려줬지만, 정작 그들은 베들레헴에 가서 경배할 마음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직업적 종교인들의 모순이고 한계입니다. 종교적 기득권에 안주해 살다 보면 마침내 자기도 모르게 주님 성탄에 무심해지거나 주님을 적대하는 세력으로 전락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저명한 종교지도자면 무엇합니까, 아무리 성경에 박식하면 무엇합니까? 교만하다 못해 오히려 성탄하신 주님을 배척한 사람이 되면 무엇하겠습니까? 그들은 끝까지 주님을 배척했습니다. 그들은 외세에 결탁해 기어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사실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반대하며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십자가는 직업적 종교인과 정치권력이 야합해 만든 합작품입니다. 주님의 첫 성탄은 가장 앞장서서 환영해야 할 종교인들로부터도 배척 받은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다음은 여관집 주인입니다. 누가복음 2장 7절입니다.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마리아가 외양간에서 아기 예수를 낳아 말구유에 뉘었다는 건데,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여관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방이 다 찼다기보다는 방값이 없었거나 웃돈을 얹어줄 여유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시즌 때는 방이 없습니다. 권력가나 재물가가 와서 방을 내달라고 했다면 방이 없었겠습니까? 여관집 주인은 돈벌이에 급급해 아기 예수를 홀대해서 외양간으로 내몰고 만 것입니다. 여관 주인은 모든 시대의 장사하는 사람들을 대표합니다. 요즘도 마찬가집니다. 너무 돈벌이에만 연연하고, 자기 이익에만 몰두하면 결국 찾아오신 주님도 내쫓고 맙니다. 사실 첫 성탄 때 가장 주님 가까이에 있던 사람은 여관 주인이었지만 그는 주님을 외양간을 내쫓고 말았습니다. 그도 알고서야 그랬겠습니까? 밤낮 사업에 몰두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눈이 멀어 성탄하신 주님께 방 한 칸 내드리지 못하는 야박한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장사하는 사람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이야기입니다.
다음은 예루살렘 시민들입니다. 본문 1절 이하를 다시 보십시오.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다고 합니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당도해 곧장 헤롯을 찾아간 게 아니고, 처음에는 예루살렘 거리를 다니며 탐문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 소동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 중 누구 하나 불과 7km도 안 되는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주님 성탄을 확인하고 경배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방인들인 동방박사들은 저 먼 페르시아에서 2년간이나 순례해서 예루살렘까지 왔는데 메시아를 손꼽아 기다린다는 예루살렘 사람들은 그들 코앞에서 이뤄진 주님 성탄에 대해 그토록 무심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동방박사들이 처음 별을 발견한 때가 2년 전입니다. 두 살 이하를 다 죽였다는 뜻이 바로 그겁니다. 동방박사들이 처음 별을 발견하고 2년간 예루살렘으로 온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사람들은 불과 7km 떨어진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은 그야말로 맹목적인 대중이었습니다. 소동은 벌였지만 개념은 없었습니다. 이것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집니다. 요즘도 보십시오. 성탄절이 다가오거나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지구촌이 한바탕 소동을 벌입니다. 그러나 저 많은 사람 가운데 몇 명이나 성탄하신 주님을 가슴에 안을까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주님과는 전혀 상관없이 소동을 벌입니다. 결코 맹목적인 소동에 휘둘리지 맙시다. 그들의 소동은 주님의 성탄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2017년 전 첫 성탄 때는 정치가 종교가 상인 예루살렘 시민들이 주님 성탄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이었습니다. 얼마 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며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나 성서적으로 볼 때 그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목요일 UN 총회는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것을 거부한다며 압도적다수로 결의했습니다. 지금의 예루살렘의 수도는 텔아비브입니다. 텔아비브는 예루살렘으로 지중해 쪽인 북서쪽으로 약 60km 떨어진 도시입니다. 예루살렘은 다윗이 시온산 위에 건설한 도시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재건되면서 예루살렘이 아니라 텔아비브를 수도로 삼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불과 7km 떨어진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주님이 성탄하신 지 2000년이 지났는데도 예루살렘은 여러 정치세력과 그들을 지지하는 대중으로 말미암아 그 사정이 옛날보다 더 어렵게 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평화가 아니라 반목하고 불화하는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는데 그 현장이 지구상에서 가장 첨예한 불화의 장이 된 것입니다. 2000년 전 주님 시대나 지금이나 아무 변화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와중에도 우리는 정신을 차립시다. 더욱 겸허하게 자신을 내려놓으며 주님을 맞을 채비를 합시다. 올해도 성탄의 기쁨과 보람과 따뜻한 은혜가 여러분과 가정마다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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